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회생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오명 신임 과학기술부 장관이 취임한 이래 이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과기부 장관의 지위를 과학기술부총리로 격상하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그동안 고질적 병폐였던 과학기술정책을 둘러싼 관련 부처간 갈등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공계 위기’라는 말이 익숙해진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짊어진 과학기술부의 위상도 동반 추락한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선정된 ‘신성장동력 10대 산업’ 가운데 과기부가 1개 산업만을 담당하게 되면서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산업자원부가 5개, 정보통신부가 4개를 맡으면서 부처간 갈등도 심화됐다.
노 대통령의 엄호 속에 취임한 오명 장관은 “과학기술부는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지주회사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과거와는 다른 길을 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오 장관의 최근 행보에는 거시경제는 경제부총리가, 산업계는 기술부총리가 맡아 국가경제를 끌고 가야 한다는 대통령의 구상이 반영돼 있다.
1월 7일 있었던 2004년 과학기술인 신년 인사회에는 노 대통령이 참석, 이공계 살리기를 비롯한 과학기술 육성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를 보여줬다. 이날 대통령은 “과기부가 과학기술정책과 산업정책, 과학기술인재 양성을 총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과기부 위주로 개편하고 과기부 장관 몫의 부위원장 자리가 신설된다. 한편 ‘신성장동력 특별위원회’의 위원장도 과기부 장관이 맡을 전망이다. 오 장관은 “10대 산업을 어느 부처가 맡느냐보다 세부항목의 추진주체를 명확히 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1월 15일에는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 장관이 관악산에 올라 술잔을 기울이며 협력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들 3명의 장관들은 조만간 합동기자회견을 열어 신성장동력 10대 산업을 둘러싼 부처간 갈등을 없애고 예산과 인력의 중복을 최소화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한편 오명 장관 개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오 장관이 부총리급이라지만 실제 과학기술부총리 제도를 포함한 정부조직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 장관의 권한이 법적으로 확립되지 않는 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편 3개부처 장관이 모두 전자공학과 출신이어서 기초과학이 소홀히 다뤄지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신임 장관이 활발히 움직이는 것은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다만 기술분야에 너무 치우치는 것같아 기초과학이 더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