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문화재 아름답게 노화시키는 보존법

흰개미 습격으로 고궁이 훼손된다

지난해 하반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국보 석탑이 기울었다는 지적과 함께 문화재 훼손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선조들의 소중한 자산인 우리의 문화재는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 것일까. 문화재의 잘못된 보수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와 대책을 알아보자.

지난해 하반기에 열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는 연일 문화재 훼손 사례가 터져 나왔다. 한 의원은 “국보 20호 다보탑, 국보 21호 석가탑, 국보 112호 감은사터 서탑이 0.6-1도 기울어져 상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고 다른 의원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돼 있는 조선왕조실록 밀랍본(蜜蠟本,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 용액에 담근 종이로 만든 책) 중 1백31권의 훼손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보도에 많은 사람들은 혹 한국의 대표적 석조문화재인 다보탑과 석가탑이 곧 무너져내리는 것이 아닐까,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석탑 기울기 문제는 바로 다음날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이 정도의 기울기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로, 석탑의 안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석조문화재 전문가는 “1도 이상 기울지 않은 석탑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라고 말해 기울기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석탑 기울기 문제가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우리가 소중한 문화재를 과연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경북 경주시 불국사 경내의 다보탑 모습.


1천여년 넘게 외부에 노출

문화재란 기본적으로 탄생하고 나서 수백년에서 수천년에 이를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문화재는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석조문화재의 경우 대부분 1천여년이 넘게 야외에 위치해 빗물이나 대기, 생물 등에 그대로 노출돼 왔기 때문에 이들에 의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석조문화재의 훼손 사례도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사실 다보탑, 석가탑, 감은사터 동·서탑(감은사터엔 동탑 서탑이 있고 이 두 탑 모두 국보 112호다)은 기울기보다 외부 노출로 인한 훼손이 심각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산성비와 바닷바람의 염분으로 인해 탑의 강도가 약해졌고, 탑 기단부에 이끼가 많이 끼었으며 빗물 등으로 인해 석재 곳곳이 균열되는 등 전체적으로 탑이 불안정하고 지지력이 약해졌다. 다보탑의 경우 빗물을 맞는 8각 난간 부분이 이완되고 강도가 떨어졌다. 석가탑은 표면의 석재가 벗겨지는 탈락(脫落) 현상까지 앓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2002년 8월엔 국보 48호인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 8각9층석탑의 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단부의 부재(탑을 받치고 있는 맨 아래 기단부의 석재) 일부에 금이 갔고 탑 전체에 16개의 크고 작은 균열이 발생했다. 또 국보 1호인 서울 숭례문 석축 홍예문(虹霓門, 무지개 모양의 문)의 석재 일부도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나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학적인 보존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잘못된 보수로 인해 오히려 훼손을 부채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천장 외부를 콘크리트로 덮는 오류

잘못된 보존 사례를 지적하기에 앞서 보존 처리 과정에서 문화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경우를 먼저 알아보자. 바로 경북 경주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주사위다. 현재 경주박물관에 안압지 주사위가 전시중이지만 그것은 복제품이다. 1975년 발굴 직후 보존처리 과정에서 전열기 과열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이다.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특수 제작한 오븐에 주사위를 넣고 수분을 제거하려 했다.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오븐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였다. 그러나 자동조절장치가 고장나는 바람에 그만 오븐이 과열됐고, 그래서 그 소중한 문화재가 불에 타버린 것이다. 어이없는 사고였다. 문화재 보존에 첨단 과학장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잘못된 보존 처리의 대표적인 경우는 국보 24호 경주 석굴암이다. 1964년 문화재 전문가들은 석굴암 보수공사를 하면서 석굴암 본존불 천장 외부를 콘크리트로 덮어 씌웠다. 방수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내부와 외부의 온도차가 커져 석굴암 내부에 습기가 더 많이 차고 이슬이 맺히는 결로(結露) 현상까지 발생했다. 급기야는 1966년 내부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에어콘을 설치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해야 했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분석과 대책을 마련한 뒤 보수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적당히 서둘러 보수공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더 큰 잘못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생명을 유지해온 석굴암에 콘크리트 같은 인공 재료를 사용하려 했던 안일한 발상이다. 콘크리트는 기본적으로 석굴암과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보존 작업을 해야 하지만 친환경적인 원래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태만함이 빚은 결과였다.

감은사터 동탑의 경우는 무리한 보수로 인해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경우다. 이 탑은 1996년 탑의 안전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해체한 뒤 다시 복원했다. 그러나 이후 탑 전체를 지탱하는 기단부 아래의 잡석(雜石)들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함몰하면서 탑 곳곳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잡석을 부실하게 채워 기단부가 불안전해졌기 때문이다.


잘못된 보존 처리의 대표적인 예는 국보 24호 경주 석굴암이다. 방수를 목적으로 본존불 천장외부를 콘크리트로 덮어 씌웠지만 이로 인해 이슬이 맺히는 현상이 발생했다.


해체 보수 작업은 신중하게

1995년 해체 복원한 경주 나원리 5층 석탑 역시 최근 기단부와 그 위의 석재 사이에 1-2cm 정도의 틈이 생겨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당시로서는 잘 해보겠다고 한 해체 복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보수였던 셈이다.

석탑의 해체 복원으로 인한 문제점은 사실 석조문화재 보수 작업에서 골치 아픈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냥 두자니 더 위험해질 것 같고, 그래서 해체 복원하니 또다른 문제가 발생해 오히려 훼손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그래도 필요할 경우엔 과감하게 해체 보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석탑의 특성상 돌의 표면 상태만으로는 돌의 내부와 석탑의 내부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고 따라서 해체를 해봐야 훼손 정도를 정밀 진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석탑을 포함해 모든 문화재의 보수 작업은 늘 신중해야 한다. 특히 탑을 해체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탑이 다소 기울거나 돌이 어긋났다고 해도 1천년 이상 안정적으로 버티어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안정감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 석조물을 해체한다는 것은 안정감을 깨고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 즉 긁어 부스럼 꼴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해체하지 않고 보존해야 한다는 말이다.

서울 탑골공원의 국보 2호 원각사터 탑 역시 잘못된 보존 처리 사례다. 이 경우는 좀 특이하다. 이 원각사터 탑은 약한 재질인 대리석 탑인데다 비바람과 비둘기 배설물 등으로 훼손이 가속화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서 서울시는 2000년 유리 보호각을 세워 탑을 통째로 덮어 씌웠다. 탑을 야외에 노출시키지 않고 유리막으로 모두 감싸버렸으니 어찌 보면 완벽한 보존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문화재 훼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리막으로 씌운 탑에서 어느 누가 문화재의 참 맛을 느낄 수 있겠는가. 원형 유지는 문화재 보존의 대원칙이다. 원각사터 탑의 경우는 훼손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탑의 원형을 훼손한 것이나 다름없다. 넌센스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탑의 숨통을 막고 있는 유리보호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보호각을 철거하면 훼손이 더욱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야외에 노출된 상태에서 과학적 보존처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목조문화재의 경우는 어떨까.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듯 국보 56호 전남 순천 송광사의 국사전과 보물 302호 송광사 약사전, 전남 나주 향교의 대성전 등은 방염제(防炎劑) 공사 이후 습기가 발생해 목재가 부식되고 있고 나아가 건물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경우다. 방염제에는 기본적으로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들어 있다. 따라서 주변이 다소 습하다면 방염제가 외부의 습기를 끌어들임으로써 건물의 목재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방염제 사용시엔 주변 습도에 대한 치밀하고 과학적인 분석이 선행됐어야 했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잘못된 보존처리는 보존처리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훼손이다.

목조문화재 훼손의 주범은 흰개미

문화재의 보존에는 주변 환경도 중요하다. 문화재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면 자칫 문화재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 흰개미로 인한 목조건축물 피해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흰개미 피해를 입은 목조건축물은 국보 14호 경북 영천 은해사 영산전을 비롯해 경남 양산 통도사 약사전 기둥, 경주 불국사 대웅전, 경남 합천 해인사 응향각, 서울 경복궁 근정전 행각과 종묘 등 부지기수다.

흰개미는 따뜻하고 습한 곳의 소나무를 좋아한다. 흰개미는 땅 속에 집단 서식하다가 일부가 지상으로 나와 소나무 목재를 공격한다. 우리 전통 건축물의 부재가 대부분 소나무라서 피해 우려가 높고 특히 따스한 남부지방에서 흰개미 피해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무분별하게 건축물 주변 환경을 바꿔 흰개미의 공격을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사찰의 무분별한 건물 개보수다. 사찰들은 건물을 개보수하면서 온돌을 모두 보일러로 바꾸고 있다. 보일러가 있는 목조 건축물은 흰개미의 표적이 된다. 온돌로 돼있는 전통 건축물의 경우, 연기 때문에 흰개미가 접근할 수 없었지만 보일러로 개보수하는 사례가 늘면서 흰개미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게 된 셈이다. 1999년 해인사 팔만대장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지 건물(해인사 주지스님의 숙소 건물) 응향각에 흰개미가 출현한 것도 보일러 시설 탓이었다. 영천 은해사 영산전에서도 건물 보수시 마루를 뜯어내고 비닐 매트를 깔아놓아 습기가 차면서 흰개미를 불러들인 꼴이 되고 말았다.

흰개미들이 목재 내부를 갉아먹기 때문에 겉으로는 표시가 잘 나지 않지만 지진 등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한 순간에 주저앉을 수도 있다. 흰개미 피해를 막기 위해 대체로 건축물의 피해 부분을 훈증(燻蒸)처리해 흰개미를 퇴치하고 있다. 훈증 처리는 유독가스 등을 발생시켜 살충 또는 살균하는 보존처리 방법이다.

하지만 훈증은 일시적인 효과 밖에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땅 속에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와 공격하는 흰개미는 전체의 20% 정도에 불과해 나머지 80%가 다시 공격을 해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좀더 근본적이고 과학적인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 피해 건물 부근에 살충제를 뿌린 소나무 말뚝을 설치해 흰개미를 유인한 다음, 이들이 살충제를 묻혀 다시 땅 속 서식지로 돌아가 다른 흰개미를 죽도록 하는 베이트(Bait)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주변 땅 속에 살충제를 넣는 방법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원형 유지의 원칙 지켜야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거론됐던 조선왕조실록 밀랍본은 아예 보존 방법을 찾지 못해 방치돼온 경우다. 이번에 훼손이 확인된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명종실록 밀랍본 가운데 1백31권. 훼손 사실을 처음 확인한 것은 1999년이었다. 종이가 변색되고 얼룩이 생겼으며 종이와 밀랍이 들러붙어 종이가 딱딱해지고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규장각은 “밀랍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재로선 개발된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이후 훼손이 계속 진행돼온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규장각은 종이류 보존과학 전문가뿐 아니라 화학, 생물학 등 광범위한 인접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책반을 구성해 보존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질소밀폐처리로 밀랍본의 산화를 막는 응급조치를 먼저 취하게 될 것이다. 질소밀폐처리는 종이류 문화재를 밀폐된 공간에 넣은 뒤 질소를 주입시켜 산소를 차단시키고 그것을 통해 유물의 산화를 막는 보존처리 방법이다. 불활성 기체인 질소는 그 자체로 안정적이며 외부 공기와 산소를 차단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산소를 제거해 산화로 인한 피해를 막고 또한 산소 차단을 통해 살균 살충까지 할 수 있어 종이류 문화재의 응급보존에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명쾌한 보존처리 방법을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당분간 해법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밀랍을 제거하겠다고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더 큰 훼손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에 손을 대는 보수 및 수리에는 지켜야 할 엄격한 원칙이 있다. 그 대표적인 원칙은 원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 아무리 문화재를 위한다고 해도 보존 처리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완벽한 보존처리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더 완벽한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미뤄야 한다. 자칫 서툰 보존 보수는 오히려 문화재를 더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후손에게 그 몫을 넘겨야 한다. 특히 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보존과학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원래의 사용 재료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재를 보수할 때, 새로운 재료를 과다하게 사용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과도하게 새로운 재질이 들어가면 그건 새 물건이지 오랜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문화재라고 보기 어렵다. 문화재엔 언제나 시간의 흔적이 배어있어야 한다. 또한 보수 후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다시 수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 보수 직전의 훼손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석탑 균열을 막기 위해 균열 부위를 합성수지 강화제로 처리했어도 그것을 다시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재에 보수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 후기 ‘팔도고지도’를 보수했다. 훈증을 해 세균을 소독하고, 구멍이 나고 떨어져나간 부분은 일일이 손으로 짜깁기해 넣었다. 그러나 원래 종이보다 약간 밝은 색의 종이를 사용했다. 보수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보수하는 사람에겐 보수 흔적을 남겨 이 문화재가 훼손됐던 것임을 후대에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금속에 생긴 녹은 꼭 닦아내지 않아도 된다. 국보 92호 고려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을 보면 표면 가득 녹이 끼어 있다. 그러나 그 푸른 녹은 지저분하지 않고 오히려 고풍스러운 세월의 흔적으로 더욱 아름답게 해준다.

사람들은 이처럼 문화재에서 아름다운 노화의 과정을 보고 싶어한다. 이는 문화재의 보존 보수가 원형(보존 직전의 상태)을 유지하는 최소한도에서 끝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문화재 보존의 어려움이자 매력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광표 기자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미술사학
  • 문화인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