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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첫 직관, 여전히 궁금한 5가지!

[뉴스해설] 세기의 관측 블랙홀 첫 직관

올해 4월 10일 오후 10시 7분(한국 시간) 블랙홀의 그림자 사진이 최초로 공개됐다. ‘사건지평선망원경(EHT)’ 프로젝트에 참여한 각국의 연구팀은 자국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진을 공개했다.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는 이날 특별판을 내고 이 내용을 담은 논문 6편을 게재했다. 이 사진은 인류가 처음으로 블랙홀을 직접 관측했다는 점에서 ‘세기의 관측’으로 불리며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Q. 어떻게 ‘직관’했다는 건가?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해 전 지구가 달려들었다. 국내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과학자 8명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과학자 200여 명은 2000년대 초부터 사전 준비를 시작했고, 2017년 4월 역사적인 첫 관측을 실시했다. 이번에 발표된 사진은 이때의 관측 결과로부터 얻었다. 


여기에는 전파망원경 총 8대가 동원됐다. 미국, 칠레, 남극 등 세계 전역에 설치된 전파망원경 8대는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라는 기술을 통해 지구만한 크기의 구경을 가진 초대형 망원경 하나처럼 사용됐다. 블랙홀에서 방출된 1.3밀리미터파 대역의 전파가 5500만 광년을 날아와 지구를 스쳐 지나갈 때 이 초대형 망원경이 신호를 잡아냈다. 


안타깝게도 1년 중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지구에서 우주의 천체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날씨가 맑아야 하는데, 블랙홀 관측에는 전파망원경 8대가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만큼 이들이 설치된 지역의 날씨가 모두 맑아야 했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그룹장은 “내가 담당하는 전파망원경 부근이 다음날 쾌청할 것으로 예보된다고 하더라도 관측 여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며 “여덟 군데 중 단 한 곳이라도 기상 상태가 안 좋으면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7년 4월 블랙홀 관측을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전파망원경 8대가 놓인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기상 상황 때문에 10일 중 5일만 관측이 이뤄졌다(2018년에도 관측을 진행했지만 3일도 채 관측하지 못했다).


단 5일 동안의 관측이었지만, 4PB(페타바이트·1PB는 100만GB)가 넘는 데이터가 쏟아졌다. 이는 HD급 영화 200만 편, MP3 음악은 8000년 동안 들을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이만큼의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전송하면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기디스크에 담아 분석을 위해 직접 연구소로 가져왔다. 그 탓에 관측은 4월에 이뤄졌지만, 남극에 있는 전파망원경이 수집한 데이터는 남극의 겨울이 지난 뒤인 10월에야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비로소 한곳에 모인 전파망원경 8대의 데이터는 슈퍼컴퓨터에서 합쳐졌다. 전파망원경을 8대나 동원했지만, 여기서 얻은 방대한 데이터로도 블랙홀의 온전한 이미지를 얻을 수는 없었다. 데이터로 완성한 블랙홀의 이미지는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미처 얻지 못한 빈틈은 메워야 했다. 
관측 데이터가 겨우 모였을 때쯤 케이티 바우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과학및인공지능연구실 박사과정 연구원은 빈틈을 복원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바우먼 연구원은 이 과정을 “건반이 빠진 피아노로 연주하더라도 어떤 곡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부족한 관측 데이터로도 전체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2017년 전파망원경 8대에서 얻은 데이터는 영상 복원 과정을 거쳤고 올해 4월이 돼서야 최초의 블랙홀 이미지로 탄생했다. 

 

 

Q. 이 사진이 블랙홀인지 어떻게 확신하나?


이번에 관측한 대상은 처녀자리 A은하의 중심에 있는 블랙홀 M87*이다. 블랙홀 M87*의 존재 자체는 알려진지 꽤 오래됐다. 1781년 프랑스 천문학자인 샤를 메시에는 혜성을 관측하던 중 혜성과 혼동하기 쉬운 천체들을 따로 목록으로 만들었는데, 여기서 87번째 천체가 M87*이었다. 그 뒤에도 M87*은 천문학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관측됐고, 대부분 일반적인 성운과는 다르다는 내용으로 기록됐다. 


그러다가 1978년 M87*이 태양의 50배에 이르는 초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 제기됐다. 1990년대 초 우주에 설치된 허블우주망원경을 통해 M87*은 점점 더 확실하게 윤곽을 드러냈고, 질량, 크기, 주변 빛의 속도와 밝기 등 M87*의 성질이 하나씩 알려졌다.


허블우주망원경보다 약 2000배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EHT는 아예 M87* 관측에 최적화돼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은 “과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추정한 M87*의 질량으로 사건지평선 크기와 블랙홀의 그림자 크기를 알 수 있다”며 “블랙홀의 강한 중력장으로 주변의 빛이 왜곡되는 현상을 관측할 수 있도록 전파망원경의 분해능과 주파수를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관측을 통해 EHT 프로젝트 팀은 M87*의 질량이 태양의 65억 배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 값은 35억~66억 배라는 최근의 연구 결과에도 들어맞는다. 


EHT 프로젝트 팀은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과학자들을 네 팀으로 나눠 데이터 분석과 영상화를 각각 진행했다. 각 팀은 서로 다른 방식을 이용해 데이터를 분석한 뒤 M87*의 이미지를 얻었고, 네 팀의 결과가 일치한 경우에만 최종 결과물로 인정했다. 조일제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연구생은 “신뢰도가 높은 최종 결과물을 얻기 위한 일종의 검증 과정”이라며 “이 과정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 결과, M87*의 사건지평선의 크기가 약 400억km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지평선을 감싸고 있는 그림자는 약 1000억km에 걸쳐 드리워져 있는데, 사건지평선보다 2.5배가량 컸다. 그동안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는 블랙홀의 그림자가 사건지평선의 1~5배로 예측값이 다양했다. 
블랙홀 주변의 가스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회전하며 10억 도가 넘는 뜨거운 빛을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확인했다. 또 공개된 이미지에서 아랫부분은 밝고 윗부분은 어두운데, 아랫부분이 관측자인 지구로 향하는 빛이고, 윗부분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빛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스가 회전한 탓에 도플러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다.


광속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속도로 회전하는 주변 가스, 그 가운데 질량은 거대하나 크기는 작은 하나의 검은 천체. 이는 블랙홀로 밖에 설명되지 못한다.


Q.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무슨 관계인가?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어떤 물체가 존재하면 그 주변의 시공간은 물체의 질량에 영향을 받아 휘어지게 되는데, 질량이 클수록 주변 시공간이 더 많이 휘어져 더 큰 곡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9년 5월, 이를 증명하기 위한 첫 관측이 이뤄졌다. 당시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과 두 탐험대가 개기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아프리카 해안의 프린시페섬과 브라질의 소브랄로 원정을 떠났다. 에딩턴은 개기일식 때 태양 주변 빛이 1.61각초 휘어지는 현상을 관측했고, 이로써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할 수 있었다. 

 

 

 

EHT를 이용해 일반상대성이론을 다시 한 번 검증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을 세계 각지의 가장 높고 고립된 전파망원경으로 향했다. EHT 과학이사회 위원장인 하이노 팔케 네덜란드 래드버드대 천문물리학과 교수는 “만약 블랙홀이 밝게 빛나는 가스로 이뤄진 원반 형태라면, 블랙홀은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지역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측했다”며 “이 현상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되지만 우리가 이전에는 한 번도 직접 관측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태현 그룹장은 “태양보다 65억 배나 무거운 M87*은 주변 빛을 휘게 하는 것을 넘어 아예 고리 형상을 만들 정도로 강한 중력 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반상대성 이론을 극단적이고 궁극적으로 증명해준 사례”라며“블랙홀이 크기는 작지만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우주 연구에 많은 정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Q. 이미지가 다소 실망스러운데?


희미한 검은색 동그라미, 그리고 뿌연 빨간색 테두리. 누군가에겐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블랙홀의 모습일 수 있다. 지금까지 블랙홀 ‘그림’을 수없이 봐온 탓일까.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블랙홀처럼 그간 우리 눈에 익숙한 블랙홀은 훨씬 정교하고 멋지며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미학적인 관점에서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지만, 오롯이 인간의 힘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리를 관측한 블랙홀 M87*의 실제 모습이라는 점에서 감탄을 자아낼만하다. 지구에서 M87*까지의 거리는 5500만 광년. km로 환산하면 5해2034경192조km에 이른다.

EHT 프로젝트 팀은 이를 “파리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보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아무리 초대질량 블랙홀일지라도 가늠조차 어려운 거리의 천체를 봤다는 것 자체가 실로 큰 업적이다.


그렇다고 천문학자들이 여기에 만족하고 멈추는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 관측 기술을 개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선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주변 가스의 회전을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 예정이다. 현재 이를 동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한 알고리즘이 개발돼 테스트 중에 있어 머지않아 공개될 예정이다. 


2020년부터는 전파망원경이 최소 3대가 추가돼 총 11대의 전파망원경이 블랙홀을 관측한다. 전파망원경의 수가 늘어나면 이후 분석 작업에서 알고리즘으로 메워야 하는 빈 부분이 줄어든다. 이미지에서는 노이즈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한국천문연구원과 서울대가 운용 중인 전파망원경도 2020년부터 블랙홀 관측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미지의 분해능, 즉 전체적인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구상에서 전파망원경의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궁극적으로는 우주 공간에 전파망원경을 설치하는 게 가장 좋다. 정태현 그룹장은 “전파망원경을 허블우주망원경처럼 우주 공간에 설치하는 계획이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Q. 가까운 우리 은하의 블랙홀 대신 다른 은하의 블랙홀 관측결과가 먼저 나온 이유는?


사실 EHT는 M87* 외에 또 하나의 블랙홀을 관측했다. 바로 우리 은하 처녀자리에 있는 블랙홀 Sgr A*다. 하지만 이번에 Sgr A*의 이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손봉원 책임연구원은 “Sgr A*는 지구와 가까이 있지만 블랙홀 관측과 데이터 분석 모두 M87*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우선 관측이 어려운 건 Sgr A*의 질량이 작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관측하는 블랙홀의 사건지평선 크기는 블랙홀의 질량에 정비례한다. 즉, 태양 질량의 65억 배인 M87*은 사건지평선 크기가 약 400억km인데 반해, 그보다 가벼운 Sgr A*는 태양 질량의 400만 배로 사건지평선 크기가 약 2500만km에 그친다. 1600배 작은 셈이다. 


이렇게 블랙홀의 크기가 작으면, 블랙홀 주변을 회전하는 빛이 굉장히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블랙홀 주변에서 빛을 내며 회전하는 가스는 블랙홀이 크든 작든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손 책임연구원은 “M87*과 Sgr A* 주변을 회전하는 가스가 모두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가정하면, 지름이 큰 M87*을 한 바퀴 도는 데 4.7일, 그보다 지름이 작은 Sgr A*를 한 바퀴 도는 데는 단 4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를 지구에서 관측한다면 블랙홀 아랫부분에서 나타난 빛이 반 바퀴를 돌아 위쪽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M87*에서는 2.4일에 걸쳐서 볼 수 있지만, Sgr A*는 2분밖에 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구에서는 M87* 주변의 빛이 훨씬 더 천천히 블랙홀 윗부분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기를 조금이라도 만져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의 움직이는 속도는 카메라의 노출 시간과 관련이 깊다. 노출 시간은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 구경이 열려 있는 시간을 말한다. 카메라가 ‘찰칵’ 하는지, ‘차아아아알칵’ 하는지의 차이다. 


노출 시간을 길게 하면 더 많은 빛을 받아 사진이 밝게 나오지만, 만약 그 사이에 물체가 움직였다면 움직이는 과정이 모두 한 장의 사진에 담겨 마치 물체가 길게 늘어진 것처럼 나온다. 그래서 노출 시간이 긴 카메라로 물체를 촬영할 경우 물체가 정지 상태에 있거나 천천히 움직여야 사진이 또렷하게 나온다.


EHT의 전파망원경을 카메라에 비유하면 노출 시간이 긴 카메라다. 동쪽 끝에 있는 스페인 전파망원경(IRAM 30m)부터 서쪽 끝에 있는 미국 하와이 전파망원경(SMA/JCMT)까지 하나의 블랙홀을 보기 위해서는, 지구가 자전해 모든 전파망원경이 블랙홀을 관측할 때까지 촬영해야 한다. EHT의 이런 특성 때문에 빛이 더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M87* 관측이 더 쉽다.


Sgr A*는 관측도 어렵지만, 관측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Sgr A*는 우리 은하 중심부에 있는데, 그 주변이 뜨거운 플라스마로 이뤄진 두꺼운 구름층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손 책임연구원은 “지구에서 보면 마치 뿌연 유리창, 그것도 계속해서 변하는 유리창 너머로 촬영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블랙홀 전파가 두꺼운 구름층을 지나오면서 데이터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뿌연 유리창의 성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최신 영상 복원 기술을 통해 Sgr A*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아직 두꺼운 구름층에 대해 계속 이해하고 있는 중이며, 국내에 있는 3대의 전파망원경(한국우주전파관측망)이 여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손 책임연구원은 “Sgr A*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현재 많은 부분을 해결했으며 머지않아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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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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