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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오빠 논문연구소] 빅뱅의 산물, 수소와 헬륨

통합과학: 우주의 시작과 원소의 생성

 

인간을 포함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생명체, 손에 닿지 않는 우주의 모든 것까지, 물리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극도로 응축된 한 점에서 갑자기 팽창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얼핏 황당할 수도 있는 이 생각의 출발점이 지금은 널리 알려진 ‘빅뱅(Big Bang·대폭발)’ 우주론입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근원이 되는 원소들 중 수소와 헬륨 두 원소는 빅뱅 직후 5분 만에 현재와 같은 비율로 대부분 생성됐으며, 이후 별이 생성되면서 무거운 원소들이 우주에 등장하게 됐습니다.

 

빅뱅 우주론은 어떻게 나왔을까?


과거에는 우주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관측기술로는 우주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랜 기간 사람들의 뇌리에 정적인 우주관이 자리 잡았던 이유입니다. 시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하는 우주라니. 이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정적인 우주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1920년대 들어서입니다. 당시 러시아 물리학자인 알렉산드르 프리드만과 벨기에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는 각각 독립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해 우주에 대한 중력방정식을 풀었고, 두 사람 모두 시간에 따라 우주가 진화한다는 수학적 결과를 얻었습니다.
물질들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는 우주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 당겨 언젠가 우주가 수축할 것이기 때문에 우주는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를 도입해 우주가 수축하지 않도록 만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리드만이나 르메트르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 우주상수가 필요 없는 우주 팽창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리 은하 바깥에 있는 외부 은하들이 모두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현상을 발견하면서 우주 팽창은 사실로 증명됐습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거꾸로 생각하면 과거의 우주는 현재보다 더 작았다는 뜻입니다.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어떨까요? 아주 작은 점의 상태로 존재하는 우주를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시작된 빅뱅 우주론은 현재는 우주 초창기 모습을 설명하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화학원소의 기원’이라는 이 논문에는 빅뱅 우주론으로 현재와 같은 우주의 물질 구성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데 핵심이 되는 연구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앨퍼, 베테, 가모프 등 저자 세 명의 이름에서 첫 알파벳만 따서 ‘알파베타감마 논문’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빅뱅 직후 원소의 핵합성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현재 우주에서 관측되는 수소와 헬륨의 구성비를 설명했습니다. 
앨퍼는 추가 연구를 통해 빅뱅 후 초기 우주의 모습도 정확히 예측해냈습니다. 이 초기 우주는 매우 뜨거운 플라스마 상태의 물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이온상태의 플라스마는 초기의 빛들이 자유롭게 진행하지 못하도록 가두는 역할을 했습니다. 
앨퍼는 우주가 차츰 식어 빅뱅 후 30만 년 뒤에 플라스마가 결합해 중성상태의 원자를 이루면서 빛들이 자유롭게 탈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앨퍼는 이때 퍼진 빛의 메아리가 마이크로파 형태로 현재 관측될 수 있다고 예견했고,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964년 실제로 마이크로파 대역의 전파(우주배경복사)가 발견돼 그 예견이 입증됐습니다.

 

 

빅뱅 이후 원소는 어떻게 생성됐을까?


그렇다면 알파베타감마 논문은 빅뱅 우주론의 증거로 현재의 원소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일반 물질은 수소(73.89%)와 헬륨(24%) 등 두 원소로 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원소가 약 2%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개수로 환산하면 수소 원자 12개 당 평균 1개의 헬륨 원자가 존재합니다.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가벼운 헬륨, 그 외 무거운 원소 순으로 개수가 급격히 감소합니다. 1940년대까지는 왜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들이 이런 분포를 가지고 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1940년대 가모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 개발과 맞물려 발전하던 핵물리학을 이용해 이들 원소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때는 알파베타감마 논문의 공저자인 베테가 태양의 에너지 생성 원리인 핵융합 과정을 물리적으로 규명한 시기였습니다.   
핵융합은 가벼운 원소의 원자핵이 서로 결합해 무거운 원소의 원자핵을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가모프는 핵융합의 관점에서 원시 우주가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의 원자핵만 있는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가정했습니다. 가벼운 원소가 핵융합을 통해 무거운 원소로 변환돼 지금의 원소 구성을 갖게 된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작용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전기적으로 양성인 원자핵들이 서로간의 반발력을 거슬러 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약 1000만 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원자핵들이 빠르게 움직여야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별의 내부에서 수소가 핵융합을 통해 헬륨으로 전환되는 양을 계산해보니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와 헬륨의 비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가모프는 별의 내부와 같이 뜨거운 온도와 압력으로 핵융합이 가능한 곳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가설로만 있던 빅뱅 우주론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빅뱅 우주론에서는 초기 우주에 모든 물질들이 아주 작은 공간에 뭉쳐 있어 온도가 굉장히 높았을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가모프는 앨퍼와 함께 단위 시간 동안 양성자가 중성자와 결합해 핵융합하는 양을 중성자의 충돌 단면적을 이용해 계산했습니다. 핵융합을 통한 원소 핵합성은 온도가 적당히 높아야 하며 자유 중성자를 필요로 하는데,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가 점차 식어가고 자유 중성자도 양성자와 전자로 붕괴하기 때문에 핵합성은 짧은 시간동안 이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고려해 시간에 따라 변하는 각 원소의 양을 구했고, 그 결과 현재 관측되는 수소와 헬륨의 개수 비(12대 1)를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가모프와 앨퍼는 수소와 헬륨이 빅뱅 이후 뜨거운 초기 우주에서 약 5분간 핵합성을 통해 대부분 만들어졌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핵융합의 영감을 준 베테를 논문의 공저자로 넣어 1948년 2월 ‘피지컬 리뷰 레터스’를 통해 이 논문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빅뱅 이후 우주는 어떻게 연구되고 있을까?


빅뱅 이후 별과 은하의 생성과 진화, 생물의 출현 등을 이해하는 일은 우주의 진화라는 퍼즐을 푸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는 빅뱅 직후 38만 년이 지났을 때 빛이 퍼져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약 1억 년 정도가 지난 뒤 물질들이 식고 뭉치면서 최초의 별과 은하가 만들어졌고, 또 약 100억 년이 더 흘러 지금의 태양계가 생성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최초의 별과 은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됐는지, 그들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는지, 태양계의 생성 과정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필자가 속한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캐스케이드(CAS
CADE) 연구실은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초기 우주의 가스 구름에서 성단이라고 하는 별의 집단이 형성되는 과정이나 이때 은하의 성질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연구는 최근 활발히 진행되는 분야입니다. 관측을 통해 얻은 물리적 관계를 수치 모델에 대입해, 별들이 만들어지는 가스 구름, 은하, 은하단 또는 은하 수십에서 수만 개를 포함한 작은 우주를 재현하고, 거기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과학적 사실을 유추하는 것입니다. 
우리 연구실은 해외 연구진과 함께 스핑크스 (SPH
INX) 시뮬레이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약 1억 광년의 크기의 공간에서 수천 개의 은하들이 우주의 재이온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재현하는 작업입니다. 재이온화란 우주배경복사나 초신성 관측을 통해 얻어진 우주팽창속도, 우주의 물질 구성 분포 등 우주론적 변수들을 시뮬레이션의 초기 값으로 넣으면 중력에 의해 물질들이 수축해 별과 은하가 형성되고, 여기서 나오는 복사에너지가 우주공간에 이온화되는 현상입니다. 
초기 우주에 대한 물리적 모델을 재현하고 수정하면서 더 정확하게 옛 우주를 설명하는 연구를 하는 셈입니다. 빅뱅 우주론으로 설명되는 우주의 과거 모습이 온전히 밝혀질 날을 기대해 봅니다. 

201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유태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석사과정 연구원
  • 에디터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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