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오늘날 현미경은 과학 연구의 필수 도구가 됐다. 물리학자는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 화학자와 광물학자는 결정의 형태와 성장을 관찰하기 위해서, 공학자는 사용할 재료의 강도와 내구성 따위를 조사하기 위해 현미경을 쓴다. 생물학과 의학에서는 현미경이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총에 견줄만하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레우벤후크는 현미경을 갖고 최초로 미생물을 관찰했다. 당시 과학자들이 현미경에 거는 기대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 그들의 믿고 있던 기계적 철학이 제시하는 미시세계를 현미경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현미경을 단순한 관찰 도구를 넘어 인식론적 근거를 찾는 열쇠로 여겼다. 마치 요즘 입자물리학자들이 가속기를 갖고 아원자의 세계를 탐구해 물질 구성의 근본 원리를 밝혀보려는 것과 같다. 레우벤후크에게 현미경은 최첨단 기구였다. 그리고 그의 현미경 기술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미생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레우벤후크는^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시에서 태어났다.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길게 잡아도 5년이 안됐다. 짧은 학교생활 이후 포목상의 도제로 들어가 의복상인 길드 시험에 합격했고, 고향에 포목상점을 열어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런 그가 현미경 연구를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 이후였다. 렌즈로 옷감의 질을 검사하면서 현미경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차츰 그의 관찰 폭은 넓어져 혈구, 효모, 오줌에서부터 진디, 벼룩의 기관, 말파리의 기생물, 후추즙 속의 미생물에까지 현미경을 들이댔다.


우선 그의 현미경은 경이로울 정도로 배율이 높았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영국의 후크가 ‘마이크로그라피아’에 남긴 현미경 관찰 그림을 보면 그의 현미경은 20~30배의 배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레우벤후크는 300배가 넘는 배율로 관찰하기도 했다. 레우벤후크의 현미경은 관찰 범위도 넓었다. 동시대 현미경들이 대체로 관찰 범위가 1/2인치였던데 반해 그의 현미경은 2인치나 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레우벤후크가 렌즈가 하나 뿐인 돋보기 같은 단순현미경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렌즈가 2개 이상인 복합현미경을 썼다. 단순현미경으로 배율을 높이려면 곡률 반경을 줄여야 하고 그렇게 되면 두가지 기술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초점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에 시료와 렌즈, 관찰자의 눈이 거의 붙을 정도로 가까워야 돼서 관찰이 매우 불편하다. 레우벤후크는 나사를 이용해 시료를 움직이는 장치를 만들어서 초점을 쉽게 맞춤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장치는 간단하지만 현미경의 역사에서는 100년 후에나 다시 등장하는 어려운 기술이었다. 또 단순현미경은 렌즈가 작아질수록 통과하는 빛의 양이 줄기 때문에 선명도가 떨어졌다.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구경을 줄여서 선명도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사용했고 직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빛을 조절하는 아주 현대적인 방법까지 동원했다.

처음에 레우벤후크는 후크의 마이크로그라피아를 참고해 관찰을 시작했다. 마이크로그라피아에는 갑사, 얼룩무늬 천, 물결무늬 비단 등 직물를 관찰한 결과가 실려 있어 직물을 검사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을 포목상 레우벤후크에게는 당연히 관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레우벤후크는 관찰할 대상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그는 액체를 관찰하는데 흥미를 가져 유리관 속에 액체를 채워서 이를 관찰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 기구로 우유, 피, 뇌조직을 연구했다. 액체를 관찰하는 방법을 개선시켜 가다가 그는 결국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미생물을 관찰하게 된다.

레우벤후크가 처음 미생물을 관찰했다는 사실을 왕립학회에 보고한 것은 1674년 9월 7일이었다. 호수에서 물을 떠서 현미경으로 관찰을 하던 레우벤후크는 그 속에서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나선형을 이루고 있는 녹조류를 발견했다.

그는 계속해서 현미경으로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1683년에는 부인과 딸, 그리고 태어나서 한번도 이를 닦지 않은 노인 2명의 치태를 긁어 관찰했는데, 그 속에서 “놀랍게도 수많은 작은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그는 노인들의 치태에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작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데 어떤 것들은 힘차게 유영을 했고 어떤 것들은 몸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고 썼다. 1702년에 원생생물을 관찰한 보고를 보면 “종 모양의 작은 동물이 긴 꼬리를 서로 대고 부드럽게 움직였다”며 운동을 자세히 기록하기도 했다.

레우벤후크가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한 실험 자체는 매우 단순했지만 실험을 하는 장소와 관찰을 함께 한 사람들, 그리고 관찰 절차는 그의 실험의 한 부분으로 아주 중요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직접 실험을 보여주고 자신의 실험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는 길드홀이나 클럽 같은 열린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현미경 관찰을 한 후 참관한 사람들에게 관찰의 기회를 주고 그들의 확인서를 받았다. 왕립학회에 관찰결과를 보고할 때는 그때 받은 확인서를 첨부했는데 그 사람들의 직업은 목사, 회계사, 법률가, 의대학생, 의학 박사, 클럽 주인 등 매우 다양했다. 이처럼 믿을 만한 사람들의 확인을 받았기 때문에 왕립학회는 레우벤후크의 관찰을 신뢰할 수 있었다. 만약 레우벤후크가 골방에서 혼자 관찰을 하고 그 결과를 왕립학회에 보냈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레우벤후크의 작업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당대에 레우벤후크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자였던 하트수커나 조직학의 창시자였던 프랑스의 비샤는 아예 현미경의 유용성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었다. 현미경은 심심풀이 놀이기구일 뿐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귀한 천체를 보는 망원경과는 달리 하찮은 사물을 관찰하는 현미경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 때문에 훌륭한 현미경학자들은 고통을 겪었다. 곤충과 현미경 연구에 열정을 쏟았던 곤충학의 원조인 네덜란드의 스밤메르담은 결국 자신의 수집품을 헐값에 팔아넘겼고, 말피기소체를 발견한 이탈리아의 말피기는 반대파들이 그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레우벤후크는 꿋꿋이 자신의 관찰을 계속했다. 스스로 표현했듯이 “관찰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서 그는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누워서도 친구에게 자신의 마지막 관찰결과를 왕립학회에 보내도록 했을 정도였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오래 산 덕분에 1723년 91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40여년을 현미경 연구에 바칠 수 있었다. 인간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작은 세상을 우리의 눈앞에 열어준 레우벤후크의 연구는 애초에 기대했던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원리까지 밝히지는 못했지만 미생물학, 병리학, 세균학, 조직학 등 많은 수의 새로운 학문을 열고 세우는 토대가 됐다. 레우벤후크 이후 한동안 발전이 없었던 현미경은 1830년 리스터가 색지움 렌즈를 발명하면서 관찰하기에 더 편리한 복합현미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전됐고 단순현미경은 자취를 감췄다.
 

레우벤후크의 현미경^레우벤후크의 현미경은 손바닥으로 감싸 쥘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았다. 렌즈를 눈에 가까이 대고 렌즈 반대편에 있는 핀에 시료를 끼워 관찰했다.


| 재현 실험 |

1674년 레우벤후크는 왕립학회에 자신의 관찰을 기록한 편지를 보내면서 시료도 함께 동봉해 보냈다. 하지만 그 시료들은 1981년 레우벤후크의 전집을 발간하려고 준비하던 학자들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왕립학회의 고문서 더미 속에 300년 넘게 묻혀 있었다.

레우벤후크의 시료는 1/50mm의 두께로 가지런히 준비돼 있었는데, 오늘날 현미경 시료를 준비할 때도 이 정도의 정확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아 학자들은 매우 놀랐다.

전자현미경을 동원해서 정밀하게 시료를 조사하고 레우벤후크의 관찰기록과 대조해 본 결과 그의 관찰이 놀랍도록 정확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10개의 현미경 중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박물관에 있는 것의 배율은 300배였다. 지금의 기술로도 300배 배율을 보이는 단일렌즈를 깎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고운 모래에 손으로 직접 유리를 갈아서 고배율의 렌즈를 만든 레우벤후크의 기술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더구나 고용된 화가가 레우벤후크의 관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남긴 그림들의 놀라운 정확도는 또 하나의 불가사의라고 할만 하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주일우 연구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물리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