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전기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어두운 곳을 밝히는 조명부터 스마트폰, 주방가전, 그리고 이제는 도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전기자동차까지. 전기는 인간 사회 전체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는 대체로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가끔 부주의나 관리 소홀로 사고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고가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직도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사형 집행에 전기의자를 사용하고 있을 만큼 전기는 편리하지만 위험하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검시관이 사건 현장에서 만난 전기의 모습은 어떨까. 2018년 8월 18일 발생한 사건을 들여다보자.
사건 접수 주택 옥상 텃밭에서 사망자 발견
지난해 여름은 지구의 미래가 걱정될 만큼 연일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고 있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매일 시원한 커피로 배를 채우곤 했다.
한낮 가장 더운 시간, 경북 경주에서 주택 옥상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구조대가 도착하자마자 변사자를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우선 전체적인 현장을 찬찬히 살펴봤다. 단층 주택 옥상에는 텃밭이 있었고, 그 옆으로 양철 지붕이 있었다.
이번에는 남자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살폈다. 텃밭 바깥에 변사자가 신었던 것으로 보이는 슬리퍼가 놓여있었다. 텃밭에는 물을 뿌리는 호스와 채소, 축축하게 젖은 흙과 발자국이 확인됐다. 무더위에 텃밭의 채소가 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주면서 맨발로 더위를 식히다가 쓰러진 것처럼 보였다. 날씨와 땅의 상태, 신고자의 진술 등을 고려할 때 사건 발생 시각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신고자인 유족은 변사자에게 급격히 사망에 이를 만한 과거 병력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사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까. 현장에서 그 해답이 될 만한 단서를 찾아야 했다. 그때 양철 지붕 위의 굵은 전선이 눈에 띄었다. 전선은 중간에 절연테이프로 감겨 다리처럼 연결돼 있었다. 또 변사자의 머리가 닿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양철 지붕에서 짧은 머리카락과 함께 기름 같은 액체가 묻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퍼즐을 맞추기 위해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지붕 위 전선을 살폈다. 전선은 피복이 일부 벗겨진 상태였다. 그다음 변사자의 지붕과 옆집 지붕이 맞닿은 곳을 유심히 살폈다. 도체와 도체가 맞닿은 곳을 통해 전기가 흐르면 그 접촉면에서 전기 저항이 생기는데, 이를 접촉 저항이라고 한다.
접촉 저항이 생기면 접촉 부위의 전압은 떨어지고 온도는 상승한다. 그러면 열이 발생해 접촉 부위에 열성 변화가 생길 수 있고, 심하면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조사 결과 양쪽 지붕이 맞닿은 접촉면에서 전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열성 변화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전기 감전에 의한 사망 가능성이 커졌다.
수사 시작 피부 젖으면 저항 급격히 낮아져
수사팀은 검시에 앞서 감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했다. 생명체에 전기로 인한 손상이 발생하려면 먼저 전기 회로 안에 신체가 포함돼야 한다. 신체가 전기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보통 교류전압에서는 1000V(볼트) 이상을 고전압, 그 이하를 저전압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전기 감전은 저전압에서 발생하지만 고전압 감전 사례도 적지는 않다. 전기로 인한 상해 정도는 감전 회로의 유형과 통전 시간, 조직 저항, 전압, 전류의 세기, 통전 경로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제 시신이 말해주는 사망 원인을 확인할 차례다. 전기가 사람의 몸을 통과할 때 첫 번째 장벽은 피부다. 저항이 높으면 전류가 잘 흐르지 못하고, 저항이 낮으면 전류가 쉽게 흐른다. 물에 젖어 저항이 줄어든 변사자의 발은 매우 훌륭한 전도체 역할을 했을 것이다.
현장 조사에서 전기 감전에 의한 사망이 의심되면, 검시조사관은 변사자 신체에 전류반의 존재 여부를 신중하게 살핀다. 전류반은 작은 반점이나 피부 까짐 등으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전기저항은 자유전자의 이동을 방해해 열을 일으킨다. 초전도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물체에는 저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류가 흐를 때 이로 인해 일정한 열이 발생한다. 게다가 건조한 손바닥 피부는 저항이 약 100만Ω(옴)에 이를 만큼 매우 크다. 여기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전류반과 전기 화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40V 전기가 흐르는 평평한 금속판에 손이 닿아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금속판과 접촉한 피부의 아래 조직은 25초 안에 50도까지 올라간다. 또한 95도까지 쉽게 도달해 열에 의한 조직 손상을 초래한다.
전류가 흐르는 피부의 저항이 높으면 열에 의해 조직액이 가열되면서 증기가 나오는데, 이 때문에 표피 또는 표피와 진피 사이 접합부에 물집이 생긴다. 전류가 지속적으로 흐르거나 전류가 흐른 부위가 상대적으로 큰 경우에는 전류가 중단된 뒤 수포가 냉각돼 터진 형태의 회색 물집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전류반의 형태는 가장자리가 볼록하게 솟아오른 모양이다. 또 둥근 점 모양의 전류반도 있는데, 전기가 좁은 틈 사이로 공기를 가로질러 이동하면서 피부와 도체 사이에 전기 불꽃이 튀면서 만들어진다. 이런 형태는 주로 도체와 직접 접촉이 없는 감전 사고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피부에 물기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손바닥이 젖으면 피부저항이 1200Ω 수준으로 현저히 떨어진다. 이렇게 신체에 물이 묻어 저항이 낮아진 상태이거나 낮은 전압이 흐른 경우, 또 전기 유입 부위가 넓은 경우는 전류반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전류가 표피를 뚫고 진피 안으로 들어가면 전류가 쉽게 흐른다. 내부 조직은 반유동성의 세포질, 특히 혈관의 경우 전해액이 풍부한 액체로 채워져 있어 피부보다 저항이 훨씬 낮다. 그래서 땀이나 물에 젖은 손으로 전자기기를 조작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신체 내로 들어온 전기는 가장 짧은 길, 다시 말해 저항이 가장 작은 조직을 따라 흐른다. 보통은 전해질 액체로 채워진 혈관과 신경을 타고 흐르는데, 그중 전류가 심장이나 뇌를 지날 때 매우 위험하다. 쇼크로 인한 추락사와 화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감전사는 심장 부정맥과 심실세동 등 심장 이상이나 뇌의 중추신경 손상으로 인한 호흡 기능 정지, 흉부근육 수축에 의한 질식으로 발생한다. 다만 전류가 생명과 관계없는 부위를 지나는 경우 수만V에 감전돼도 목숨을 건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의복과 신발을 살피는 일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의복을 통해 전기가 들어오는 경우 의복이 타거나 녹아내린 흔적이 생기며 고압 전류의 경우 신발에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이는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수사 결과 물에 젖은 손발 통해 최초 감전
수사팀은 검시를 통해 변사자가 어떻게 감전됐는지 파악했다. 시체의 오른손과 양발에 전류반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물을 통해 피부의 저항이 낮아진 상태에서 감전돼 생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왼손 검지부터 약지까지 손가락 3개에는 날카롭게 베인 것처럼 찢어진 상처가 관찰됐다. 현장에서 손가락을 베일 만한 구조물은 양철 지붕의 단면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에 생긴 세 상처는 일직선상에 위치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미뤄볼 때 왼손으로 전기가 빠져나가면서 터진 상처로 추정됐다.
다음으로 머리를 살펴봤다. 정수리 부위에 전류반이 형성돼 있었다. 양철 지붕 끄트머리의 단면 모양으로 손상이 됐고, 가장자리에는 물집이 있었다.
시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볼 때 변사자의 감전 과정은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변사자가 최초 감전될 때는 전기가 물에 젖은 손발을 통해 저항이 낮아진 상태로 유입되면서 전류반이 형성되지 않았고, 유입된 전기가 왼손으로 빠져나가면서 날카롭게 베인 것처럼 터진 상처가 생겼다.
쓰러진 뒤에는 물이 묻지 않은 머리가 양철 지붕에 닿았고 전류가 지속적으로 흐르면서 전류반이 형성됐다. 당시 지붕을 지나는 전선의 전압은 가정용 전압보다 조금 높은 380V였는데, 조건에 따라서는 가정용 전압인 220V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채소에 물을 주면서 더위를 조금 식히고 싶었던 변사자는 사고 당시의 위험한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건과 사고 현장을 접하지만, 감전 사고처럼 예측하기 힘든 사고나 사소한 부주의에 의한 사건은 참으로 안타깝다. 누구나 그 위험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전선 상태와 누전 여부를 미리 점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