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SF) 영화에 너무 자주 등장해서일까. ‘투명망토’ ‘투명우주선’의 핵심 소재인 메타물질은 과학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에겐 꽤 익숙한 물질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음의 굴절률을 가진 물질이 빛을 휘돌아나가게 한다’는 그럴듯한 설명도 있다. 하지만 메타물질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굴절률이 양수일 수도 있고, 빛을 아예 투과시키는 메타물질도 존재한다. 물속에서 작동하는 수중 메타물질은 들어봤는가. 메타물질의 A부터 Z까지 수식으로 정복해보자.
메타물질이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물성을 갖도록 인위적으로 구조를 설계한 물질을 말한다. ‘메타(meta)’는 희랍어로 ‘범위나 한계를 넘어서다’라는 뜻이다. 적절히 설계된 메타물질은 전자기파(빛) 혹은 음파(소리)를 반사시키지 않고 투과시킨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나오는 투명망토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메타물질 기술의 핵심은 빛 또는 소리의 굴절률을 제어하는 것이다. 입자를 여러 개 반복적으로 배치해 파동이 차례로 산란되게 하는 ‘다중 산란(multiple scattering)’ 현상을 이용하거나, 특정 주파수에 공진하는 특정 구조를 만드는 ‘국부 공진(local resonance)’ 현상 등을 이용한다.
빛·소리의 굴절률을 결정하는 변수들
메타물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자기파가 매질에서 전파되는 특성을 알아야 한다. 빛의 전파 특성에는 위상속도(일정한 위상에 대응하는 파면의 진행속도)와 위상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굴절률 등이 있다.
전자기파의 위상속도 cEMM는 c2EMM= 1/(εμ) 라는 식으로 나타낸다. ε는 외부에서 전기장을 가했을 때 전하가 얼마나 편극되는지를 나타내는 유전율(permittivity)을, μ는 어떤 매질이 주어진 자기장에 대해 얼마나 자화하는지를 나타내는 투자율(permeability)을 나타낸다. 전자기파의 굴절률(n)은 위상속도의 역수에 비례한 n=cref/cEMM이다. 어떤 물질의 위상속도 cEMM가 기준물질의 위상속도 cref 보다 클수록 굴절률이 작아지고 빛이 조금 꺾이게 된다.
메타물질의 특성은 이런 매개변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먼저 유전율과 투자율이 모두 양수이면 전자기파의 위상속도가 양의 값을 갖고, 굴절률 또한 양수다. 일반적으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들이 이 분류에 속한다. 그리고 이에 속하는 메타물질은 빛이 오른쪽 그림 1처럼 전파된다. 메타물질이 무조건 ‘음의 굴절률’은 아닌 셈이다.
두 번째로 유전율과 투자율이 모두 음수이면 위상속도와 굴절률이 음의 값을 가지게 된다. 이때는 빛이 오른쪽 그림 2처럼 진행한다. 초고해상도 현미경 등에 쓰이는 ‘슈퍼 레졸루션(super-resolution)’ 기술이 바로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입력한 파장보다 작은 형상을 구분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유전율과 투자율 중 한 가지 매개변수만 음수인 경우 위상속도가 허수(imaginary number)가 된다. 이때는 아래의 그림 3처럼, 빛이 전파되지 못하는 구간(bandgap)이 특정 주파수 영역에 형성된다.
마지막으로 유전율 또는 투자율이 0인 경우, 굴절률은 아래의 그림 4와 같이 0의 굴절률을 갖게 된다. 이때에는 위상속도가 무한대다. 이론적으로는 입력된 파장이 동일한 위상으로 물질의 끝단에서 방사된다. 뒤에서 설명할 새로운 콘셉트의 투명망토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했다.
최초의 메타물질은 실린더형
과학자들은 물질의 특성에 따라 빛의 전파 특성이 다양하게 바뀌는 원리를 이용해 메타물질을 개발해왔다. 음의 굴절률을 가진 메타물질에 대한 개념은 1967년 빅토르 베셀라고 러시아 모스크바물리기술대(MIPT) 교수가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물질의 굴절률이 항상 양의 값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1987년 당시 미국 벨 통신회사가 설립한 연구소인 벨코어 소속이던 엘리 야블로노비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팀이 다중 산란 현상을 이용해 음의 굴절률을 가진 메타물질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연구팀은 1989년 이것을 실물로 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다중 산란 현상을 이용한 메타물질은 제작이 용이한 대신, 단위구조(unit cell)의 크기가 빛의 파장(λ)과 유사하거나 조금 작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λ<;단위구조의 크기<;1λ). 파장이 긴 빛을 투과하는 투명망토를 제작하기 위해 눈에 확연히 보이는 커다란 단위구조를 가진 메타물질을 만들어야 하는 모순이 존재했다.
반면 국부 공진 현상을 이용한 메타물질은 파장보다 매우 작은 크기(단위구조 크기<;<; λ)로 설계가 가능했다. 1996년 존 펜드리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교수는 국부 공진 현상을 이용해 양의 굴절률을 가진 메타물질을 처음 설계했고, 2001년 데이비드 스미스 미국 듀크대 교수가 이를 실물로 제작했다. 연구팀은 너비가 5cm, 높이가 1cm인 작은 구리관 주변에 10장의 메타물질 고리를 성벽처럼 겹겹이 세워 8.5GHz(기가헤르츠)의 전자기파가 구리관 주변으로 휘돌아 나가게 하는 데 성공했다. 2006년 펜드리 교수가 이것을 투명망토 콘셉트로 대중화시켰다.
메타물질을 물속에서 구현하다
과학자들은 메타물질을 빛의 영역에서 소리의 영역으로도 확장했다. 빛의 굴절을 제어해 망토가 투명해졌듯, 음향의 굴절률을 제어한다면 음파로 탐지하는 수중에서 스텔스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음파의 위상속도 cAMM 역시 전자기파의 위상속도와 유사한 식 c2AMM=B/ρ로 표현된다. 이때 B는 부피탄성계수, 그리고 ρ는 밀도를 의미한다. 음파의 굴절률(n)은 전자기파와 동일하게 n=cref/cAMM으로 나타낸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음향 메타물질을 연구했다. 그중에는 음향 양자결정(phononic crystal) 메타물질도 있었다. 1993년 프랑스와 멕시코 연구팀은 2가지 단위 구조를 주기적으로 반복 배치해 음파가 다중 산란 현상이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0의 굴절률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숨기고 싶은 물체 주변으로 빛을 휘돌아 나가게 만드는 기존 투명망토 콘셉트와는 다르다. 0의 굴절률을 가진 물질 내에서는 위상속도가 무한대이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은 마치 크기가 0인 하나의 점처럼 거동한다. 숨기고 싶은 물체를 이 공간 안에 두면 음파가 물질을 투과해 진행하게 된다. 즉 물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중 음향의 0의 굴절률은 그동안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실험으로만 보고돼왔다. 수중에 있는 물질(산란체)이 물보다 음향의 전달속도가 느려야만 굴절률 제어가 가능하다는 ‘느린 물질 가설’ 때문이었다. 이 가설대로라면 물속에 공기처럼 소리 전달속도가 느린 물질을 배치해 음파를 산란시켜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참고로 물 속 음파의 속도는 초속 1500m이고, 공기는 초속 340m다.
필자가 속한 연구팀은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음파 전달속도가 물보다 빠른 물질을 산란체로 사용해 0의 굴절률을 구현하기로 한 것이다. 독자 개발한 알고리즘을 컴퓨터로 돌려서 음파 전달속도가 초속 4600m로 물보다 세 배 이상 빠른 구리를 규칙적으로 물속에 배치하면 구리가 음파를 산란시켜 0의 굴절률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실제 실험에 돌입했다. 먼저 인터넷 쇼핑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용접봉을 특수 제작한 알루미늄 가공 틀에 넣어 메타물질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600mm, 1250mm, 850mm인 수조에 넣고 음파가 메타물질 구조를 지날 때 전파 특성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측정했다.
그 결과 초음파가 원래는 곡면파로 나와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메타물질 구조 끝단의 모양과 평행한 파동의 형태로 빠져나왔다. 끝단의 형태를 바꾸면 음파가 한 곳에 모이게 할 수도, 넓게 퍼져 나가게 할 수도 있었다. doi:10.1038/s41598-018-25696-y
군수, 건축 분야 활용 기대
0의 굴절률을 가진 음향 메타물질은 군수 분야에서 스텔스 잠수함을 설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수중에서는 음향을 이용해 어류나 잠수함 등의 위치를 탐지하는데, 메타물질로 만들면 음향이 잠수함 표면에서 반사되지 않고 투과된다.
또한 진동이나 소음을 원하는 방향으로 우회시키는 방법 으로 층간소음이나 기계소음을 저감할 수도 있다. 메타물질을 이용해 건축, 기계 구조물을 만들면 진동과 음파를 한 곳으로 수집해 에너지를 얻어내는 효과도 낼 수 있을 것이다.
메타물질은 지난 수십 년 간 매우 다양한 형태로 연구가 이뤄져왔다.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것에 비해 실용화가 늦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기존 물질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신 반대급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한계점이 적용할 수 있는 주파수 범위가 좁거나, 전자기파(또는 음파)가 투과될 수 있는 방향이 좁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은 관점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주파수에만 적용되는 필터를 만들거나, 단일 방향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음파 수집기 등을 만들 수 있다. 메타물질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관련 제품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확신한다.
최원재. 고려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음향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에서 초음파를 이용한 비파괴검사에 관한 연구를 했다. 현재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초음파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w.choi@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