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5일 초유의 수능 연기 사태를 야기한 포항지진이 자연지진이 아닌 인근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촉발한 ‘촉발지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3월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강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장(대한지질학회장)은 “지열발전소 부지에서 반경 5km 이내, 진원 깊이 10km 지점을 기준으로 98개 지진 목록을 분석했다”며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수백 건의 미소지진(작은 지진)을 유발했고, 이 미소지진으로 쌓인 응력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을 활성화시켜 규모 5.4의 포항지진을 일으킨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지열발전은 지하 4km 이상 깊이에 구멍을 뚫어 고압의 물을 주입해 지열로 데운 다음 여기서 나온 수증기를 빼내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 같은 지열발전 방식이 포항지진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지난해 4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포항지진 관련 논문 두 편이 규명하지 못했던 논란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당시 두 논문은 지진계 데이터를 근거로 포항지진의 진앙을 4.5km 깊이로 분석했고, 진앙의 깊이가 지열발전을 위해 삽입한 지열정의 깊이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또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2015년까지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없었는데, 물 주입이 시작된 뒤 2016년 초부터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4차례나 일어났다며 조심스럽게 유발지진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정부조사연구단은 포항지진이 유발지진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유발지진은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지질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줘 지진이 일어났다는 개념이다. 반면 촉발지진은 물 주입과 같은 인위적인 영향이 지진의 최초 원인이기는 하지만 이것 자체가 지진을 일으킨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규모 5.4의 지진이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에 의해 직접 발생한 것이 아니라 물 주입이 미소지진을 촉발했고, 이에 따라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이 활성화돼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지진 위험이 있던 지각에 쌓여있던 응력이 지열발전뿐만 아니라 동일본대지진과 경주지진이 만든 에너지 등 여러 요인으로 분출된 것”이라며 “결국 물 주입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지진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