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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비문화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점원과의 대면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키오스크의 증가다.


외식과 금융, 의료, 편의시설 등에서 키오스크가 늘어가는 만큼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이 많다. 지난 5월 16일 서울디지털재단이 발표한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45.8%만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55세 미만에서 같은 답변이 94.1%였던 것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사용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라는 답변이 33.8%로 가장 많았다.

 

첫 번째 난관 │너무 빽빽한 정보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 마주하는 첫 난관은 화면을 빽빽하게 채운 정보다. 실제로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 화면에서 보여지는 음식 메뉴의 종류는 6개부터 12개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메뉴 카테고리와 결제 버튼까지 더하면 한 화면에서 보이는 정보는 20개에 육박할 정도다. 빈 공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보를 가득 담은 화면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층에게는 괜찮지만 고령층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다.


권오상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시각, 인지 기능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며 “그중 하나는 시각정보가 좁은 공간에 여러 개 있을 때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비주얼 크라우딩(시각적 혼잡)’”이라고 말했다.


미국 앨라배마대 연구팀에 따르면 고령층이 짧은 문장을 읽어내는 속도는 젊은층보다 약 30% 느리다. 글자를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자간도 31% 넓어야 한다. 고령층은 정보를 읽어내는 속도가 느리고, 밀집된 정보를 해석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doi: 10.1038/s41598-017-08652-0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는 더 큰 비주얼 크라우딩이 나타난다. 화면의 크기는 작으면서도 많은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글자 크기는 작고 자간은 좁아 화면을 읽어내는 데 느끼는 어려움은 더 커진다.

 두 번째 난관 │고객을 돕지 않는 기계


익숙하지 않은 주문 절차도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유승헌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는 “키오스크 사용에 익숙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 점원과 키오스크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는 절차는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점원에게 음식을 주문할 때는 우선 한발짝 떨어져 메뉴를 고른 후, 점원에게 다가가 메뉴와 개수를 말한다. 이후에는 점원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사항들을 고객에게 물어보고 결제하는 순서다.
반면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는 메뉴를 고르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작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화면에 소개된 음식을 하나씩 보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메뉴를 담을 때마다 추가 사항들을 선택해야 한다. 이를 다 마친 이후에 비로소 결제를 하게 된다. 결국 점원과 키오스크를 통하는 것은 음식을 주문한다는 목적만 같을 뿐 절차로서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여기에 더해 대부분 키오스크는 사용할 때 점원을 통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많은 절차를 거치도록 설계됐다. 미국의 인지심리학자 조지 밀러에 따르면 사람이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정보는 평균 7개, 개인에 따른 편차를 고려해도 5~9개다(밀러의 법칙). 하지만 이 능력도 노화에 따라서 자연히 감소하게 된다. 유 교수는 “밀러의 법칙은 화면에 있는 정보량을 정할 때도 중요하지만, 사용 절차를 설계할 때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난관 │결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젊은층은 느끼지 못하는 고령층의 불편함은 결제 방법에서도 나타난다. 양영애 인제대 작업치료학과 교수는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어르신들은 공통적으로 결제에 대한 부분을 지적한다”고 말했다.


키오스크 화면은 사용 절차를 기반으로 정보를 배치한다. 일반적으로 정보를 읽는 방향인 위에서 아래 또는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를 따라가며 사용하도록 디자인한다. 마지막 결제 버튼은 대부분 아래 끝 또는 오른쪽 끝에 있다. 이런 화면 배치는 사용자가 무의식 중에 결제 버튼을 누르는 행동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도록 한다.


하지만 실제 키오스크에서 결제 버튼을 누르면 결제 방법을 선택하는 또 다른 화면이 등장한다. 키오스크 제조사와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달라 이들을 함께 구성하기 어려운 탓이다. 유 교수는 “젊은이는 이런 화면 전환이 전혀 불편하지 않지만, 어르신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절차에 당황할 수 있다”며 “결제 방법을 사용자가 직접 입력하는 것도 점원에게 카드나 현금을 주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는 점”이라고 말했다.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위해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각 지자체와 기관 등에서는 고령층을 위한 키오스크 사용방법을 교육하거나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제조사마다 다른 화면 구성과 이용 절차를 통일하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도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고령층과 더불어 장애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 단말기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홍경순 NIA 정보접근성팀 수석은 “현재 보급된 키오스크는 사용환경이 너무 다양하고, 노약자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며 “내년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들어 민간에 보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오스크의 디자인과 화면을 고령층이 사용하기 쉽도록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용자의 연령과 신체 조건에 관계 없이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고도 새로운 환경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범용) 디자인’의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대표적인 시설은 엘리베이터를 꼽을 수 있다. 유 교수는 “일반인은 느끼지 못하지만, 장애인용 버튼을 눌렀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도록 설계된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소하지만 간단한 부분들이 사용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키오스크 설치는 늘어날 전망이다. 인건비를 줄여 매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키오스크의 장점은 사용자가 아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사업주가 누려왔다. 전문가들은 이제 키오스크의 혜택을 사용자들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할 시기라고 말한다. 홍 수석은 “어르신과 장애인, 어린이 등 생각보다 많은 계층에서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며 “이들이 쉽게 키오스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노력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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