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중 1명. 통계청의 ‘2018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등학생의 약 25%가 우울감(최근 12개월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로 인해 매년 2만 여 명의 청소년이 병원을 찾고 있으며, 이 중 36%는 자살 시도로 이어지곤 합니다. 2007~2016년 청소년(9~24세)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이유입니다.
‘중2병’은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비교적 흔한 질환이지만, 방치했을 경우 자살이나 자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병입니다. 우울증은 말 그대로 우울한 기분이 계속되는 증상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쳤거나 친구랑 싸웠을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우울한 기분은 우울증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울한 기분이 하루 종일, 적어도 2주 이상 계속 나타나는 경우에는 우울증이라고 정의합니다.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유전적 원인(우울증 가족력), 생물학적 원인(뇌 신경전달물질 부조화, 갑상선기능저하 등) 등에 의해서도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과는 증상이 조금 다릅니다. 쉽게 말해 성인 우울증을 대변하는 감정이 ‘우울한 기분’이라면,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짜증’입니다. 성인우울증은 대체적으로 절망감, 공허감, 의욕과 식욕 저하, 그리고 주의집중력 저하 등 주로 기분이 가라앉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반면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여기에 더해 공격성 증가, 예민함, 인내심 저하 등의 증상이 추가로 나타나죠. 이런 이유로 소아청소년 우울증을 사춘기 증상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중2병’ ‘고3병’ 등으로 불리는 사춘기 증상이 사실 알고 보면 우울증일 수 있습니다.
성인 우울증 치료제, 10대가 먹어도 된다?
소아청소년 우울증 치료에는 정신과적 치료와 약물 치료가 있습니다. 우선 정신과적 치료인 상담 및 인지행동치료 등이 이뤄집니다. 정신과적 치료로 충분하지 않은 중등도 이상 우울증의 경우에는 약물 치료가 추가됩니다.
대표적인 소아청소년 우울증 치료제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계열의 플루옥세틴(Fluoxetine)입니다. SSRI 약물들에는 플루옥세틴 외에도 파록세틴, 시탈로프람, 설트랄린, 에스시탈로프람 등 다양한 약물들이 있는데, 성인에게는 이들 모두 효과가 있습니다. 반면 소아청소년 우울증에는 플루옥세틴만 유의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다른 성인 우울증 치료제인 삼환계 항우울제(TCA·Tricyclic Antidepressant) 역시 성인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이는 청소년과 성인의 신체 차이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신체 발달이 끝난 성인과 달리, 청소년은 아직 신체가 발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과 성인의 약물 반응에 차이가 생기고, 같은 약물이라도 다르게 반응하거나 부작용이 더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아청소년 우울증에 효과적인 플루옥세틴은 뇌의 세로토닌 양을 증가시켜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세로토닌은 기분 조절, 수면, 근 수축, 식욕, 기억력, 혈액 응고반응 등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전달물질로, 우울증 환자의 뇌에는 이런 세로토닌의 양이 적습니다.
플루옥세틴은 뇌의 시냅스전 세포(presynaptic cell)에서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해 시냅스의 세로토닌 농도를 높여 시냅스후 수용체(postsynaptic receptor)에 결합하게 함으로써 우울증을 감소시켜 줍니다(위 그림).
우울증 치료제가 자살 부추긴다?
플루옥세틴은 비교적 안전한 항우울제 중 하나로, 부작용이 메스꺼움, 변비, 두통, 어지러움, 입 마름 등으로 경미하고 시간이 지나면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안전하다고 알려진 플루옥세틴도 주의사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요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과적 질환을 가진 24세 이하의 환자에 대한 단기간의 연구에서 위약과 비교하여 항우울제가 자살 충동과 행동의 위험도를 증가시킨다는 보고가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언뜻 보면 이 약이 오히려 자살을 부추긴다고 인식돼, 일부 환자들은 이를 보고 항우울제 복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우울증 치료제와 자살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던 환자의 자살이 우울증 때문인지, 아니면 우울증 치료제 때문인지 그 원인을 정확히 밝히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주의사항은 가족이나 보호자가 환자의 자살 충동이나 평소 행동을 더욱 주의 깊게 살피고 약물 치료를 모니터링 하라는 뜻이지, 무턱대고 약을 복용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doi:10.4103/0973-1229.87287 실제로는 이런 두려움 때문에 항우울제 처방이 줄어들어 오히려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우울증은 빨리 발견해서 치료할수록 좋습니다. 10대 후반에 발현한 우울증을 방치했다가는 성인이 돼서도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고, 자해나 자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우울증으로 의심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병원에 방문해 진단을 받고, 의사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울증은 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