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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PICK] ‘계란의 일생’ 알아야 핵심이 보인다

산란일자 의무 표시 논란

 

‘0223’.

 

2월 23일부터는 생산된 계란의 껍데기(난각)에 이렇게 날짜를 표기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 8월 살충제 계란 사태 이후 계란안전관리 대책으로 난각에 산란일자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는 ‘축산물의 표시기준’을 정했다. 그러나 양계농가들은 천막농성을 벌이며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계란의 품질을 산란일자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논란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란의 일생’을 알아야 한다.

 

● Scene #1 양계농장

 

새벽 5시. 전구에 환하게 불이 켜진다. 산란계들에게 산란자극을 주는 빛이다. 9층 아파트로 설계된 계사가 갑자기 분주해진다. 누군가는 머리를 내밀어 물과 사료를 먹고, 누군가는 시원하게 노폐물을 빼낸다. 그리고는 알을 낳기 시작한다. 25시간을 공들여 만든 오늘의 계란이다. 산란된 계란은 계사의 기울어진 바닥을 따라 컨베이어벨트까지 굴러간다. 벨트를 타고 최종적으로는 집하장에 모인다. 이런 상황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계사 밖으로 생중계된다.

 

1월 14일 기자가 방문한 경기 평택시의 한 양계농장은 반도체 공장을 연상시켰다. 들어가기 위해 샤워를 3번이나 해야 했고(한 번은 소독제, 한 번은 에어 샤워, 나머지 한 번은 샴푸로 머리를 감는 진짜 샤워였다!) 내부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 없도록 완전히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료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됐고, 산란계들이 낳은 알은 계사 앞쪽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집하장으로 모였다. 분변은 계사 뒤쪽 벨트를 타고 계분발효사로 이동했다.

 

총괄책임자인 이광제 청북농장 부장은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하게 차단한 덕분에 한 번도 닭진드기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농장은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1만9000제곱미터(m2) 면적에 48만 마리의 산란계 성계를 수용할 수 있었다. 1만6688칸이나 되는 계사가 9단으로 쌓여 있고, 계사 안에 산란계가 6~7마리씩 들어 있었다. 계사는 공기를 순환시키는 구조로, 실내온도를 산란에 최적인 22도로 유지시켰다. 직원들은 닭의 산란율과 폐사율, 섭취한 사료의 양, 심지어 마신 물의 양까지 매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전문화, 대형화된 앙계농가는 1990년대 이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05년에는 2301개의 농가가 평균 5만3391마리의 산란계를 사육했다면, 2013년에는 그 절반인 1230개 농가가 평균 5만8746마리의 산란계를 키운다. 이 중에는 기자가 찾아간 곳처럼 수십만 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농장도 여럿이다. 계란의 가격이 거의 30년째 개당 100원 수준으로 유지되는 비결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계란의 절반 이상은 이런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된다. 나머지는 소규모 양계농가에서 나온다. 소규모 양계농가는 운영 방식이나 규모, 관리 수준이 매우 다양하다. 닭의 동물 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개방형 계사를 운영하는 곳도 있고, 유정란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곳도 있다. 암탉과 수탉이 교미해 만들어진 유정란은 암탉 혼자서 만들어낸 무정란에 비해 가격이 높다. 

 

● Scene #2. 계란유통센터(Grading&Packing Center)

 

30개들이 판에 담긴 계란들이 차례로 선별 기계에 올라탄다. 45도 온수로 몸에 묻은 분변을 씻어내고 건조기에서 몸을 말린다. 지그재그 모양의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계란들은 한 방향으로 줄을 선다. 할로겐 조명을 비춰 비정상적인 계란은 자동으로 낙오시킨다. 살아남은 계란들은 잉크젯 마킹기를 통과하며 번호를 받는다. 생산자 고유번호와 사육환경 번호다. 2월 23일부터는 여기에 산란일자도 추가된다.

 

전국에서 생산된 계란의 약 56%는 GP센터(계란유통센터)를 거쳐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나머지 중 약 30%는 농가나 집하장에서 직접 판매한다. 식약처는 오는 4월 25일부터 모든 가정용 계란의 유통과 판매를 ‘계란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은 GP센터에서만 할 수 있도록 ‘축산물의 표시기준’을 개정했다. 양계농가들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식용란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은 GP센터가 전국에 50개 정도로 많이 부족합니다. 기계를 들이는 데만 수억 원이 드는데,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죠. 생산자의 가격 부담은 소비자에게도 일부 전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식용란선별포장업 허가를 받고 GP센터를 운영 중인 알로팜 사의 하영창 양성GP사업부 수석부장은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식용란선별포장업이란 계란을 선별, 세척, 건조, 살균, 검란, 포장하는 영업이다. 식용란선별포장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검란기, 파각 검출기, 중량 선별기 등 각종 장비를 갖춰야 하고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인 ‘해썹(HACCP)’ 인증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기존에는 해썹 인증을 자율적으로 적용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집판장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조류독감(AI)을 전염시킬 위험이 높았다.

 

1월 14일 방문한 경기 안성시 소재 알로팜의 GP센터에서는 30명의 직원들이 식용란을 선별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방진복으로 갈아입고 입구로 들어서자 찬 공기가 훅 몰려왔다. 계란의 신선도를 온도가 좌우하기 때문에 실내 온도를 10~15도로 낮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 달에 1800만 개, 하루에 약 40만~60만 개의 계란을 선별해 포장했다. 중간에 두 차례 사람이 투입돼 깨진 계란을 골라내는 공정도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전 과정이 자동화였다. 하 수석부장은 “시간당 6만 개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라며 “원란을 납품받을 때부터 살모넬라와 같은 미생물 검사, 항생제와 살충제 잔류물질 검사를 통과했는지 꼼꼼하게 따진다”고 설명했다.

 

계란들은 셔터도 쫓아가지 못할 속도로 빠르게 세척기, 건조기, 살균기, 파각 검출기, 혈반 검출기, 마킹기 등을 거쳐 갔다. 눈 깜빡할 시간에 난각에 고유번호와 등급이 새겨졌다.

 

● Scene #3. OO마트

 

“계란 한 판에 3000원!” 

 

방송이 나가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계란 코너로 모여들었다. 포장지에 적힌 유통기한과, 계란의 등급, 냉장 보관 여부를 꼼꼼하게 따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맨 위에 놓인 계란 한 판을 무심하게 집어 드는 사람도 있다.

 

GP센터나 집하장을 거쳐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은 100억 개 내외다(시장 규모 약 2조 원). 이중 68%는 식용란의 형태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고, 32%는 급식회사나 식품가공업체 등으로 유통된다. 1인당 연간 계란 소비량은 약 240개로, 일본과 비교해 80개 정도 적다. 훈제란, 반숙란, 깐 계란 같은 가공란 소비 비중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신선한 계란을 먹기 위해서는 유통 과정에서도 온도가 중요하다. 김재경 하림 신규영업부 계란사업팀 사업부장은 “등급란의 경우 계란을 농장에서 GP센터로 입고하고 포장된 계란을 마트로 출고하는 전 과정을 10도 이하로 유지한다”며 이를 ‘콜드 체인 시스템(Cold Chain System)’이라고 설명했다.

 

김우식 하림 신규영업부 상무는 “산란일자 표기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콜드 체인 시스템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 입고, 배송, 보관, 출고 어느 한 과정에서라도 상온에 오랫동안 노출됐다면, 산란일자가 가깝다고 무조건 안심하고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계란은 통상 상온에서 3주, 냉장에서 8주 동안 유통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법으로 정해놓은 유통기한은 없다. 권장 유통기한이 있을 뿐이다. 권장 유통기한은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포장 후에 보관온도가 0~10도를 계속 유지하면 권장 유통기한이 35일, 10~20도이면 21일, 20~25도이면 14일, 25~30도이면 7일이다. 일본은 유통기한 대신 상미기한(賞味期限·품질이 유지되는 기한)을 두고 있다.

 

양계농가들은 산란일자가 표시되면 유통기한이 넉넉하게 남아있는 제품도 소비자 선호에 밀려 폐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식용란선별포장업 허가제와 산란일자 표기를 이중으로 시행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처음 시행되는 산란일자 표기가 계란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1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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