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와야지. 우리나라를 빛내야지.”
75개국 약 250명의 학생이 참가했던 2015년 제47회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제르바이잔으로 향했던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목에 걸었던 금메달보다도 훨씬 더 값진 경험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가 열린 열흘 동안, 나는 시험을 보는 시간 외에 미국, 일본, 태국, 시리아, 라트비아, 스위스, 폴란드 등 수많은 나라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모인 친구들이었지만, 각자 살아온 배경과 앞으로의 꿈은 정말 다양했다. 우리는 서로의 문화, 교육 시스템, 화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 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시리아에서 온 친구들과의 대화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전 때문에 동네에 폭탄이 떨어져 전기와 수도가 끊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대회를 준비해서 나온 그들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 중 한 친구인 루디는 대회 이후 시리아 국경을 넘었고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독일어를 열심히 배워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라고 안부를 전해왔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의 열흘은 내가 더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마음을 굳히게 됐다.
올림피아드에 다녀온 이후, 본격적으로 원서 작성을 시작했다. 미국의 대학 입시는 우리나라의 수시전형과 정시전형처럼 ‘조기전형(Early Admission)’과 ‘정시전형(Regular Admission)’으로 나뉜다.
조기전형에서는 보통 한 군데밖에 지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가고 싶은 대학에 원서를 낸다. 내가 다녔던 서울과학고 선배들은 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진학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나는 이공계 학생이 대부분인 MIT보다는 종합대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학과가 최고라고 알려진 스탠퍼드대에 마음이 쏠렸고, 조기전형으로 스탠퍼드대에 지원했다.
미국 대학들은 자기소개서에 활동이나 수상 실적을 나열하는 것보다는 학생의 가치관을 담는 것을 중요시한다. 나는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시상식 무대와, 학교 축제 무대에서 춤을 췄을 때 느꼈던 감동을 비교하면서 경쟁보다는 공감과 화합을 추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썼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덕분에 스스로에 대해 많이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류를 모두 제출하고 난 어느 날, 달리는 차 안에서 메일함을 열었다. 그 순간, 온몸이 굳기 시작했다. 메일 제목은 ‘스탠퍼드대 지원 결과 발표’! 옆에서 운전 중이었던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은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로그인을 하고 e메일을 열었다. ‘축하합니다(Congratulations)’라는 첫 단어를 본 순간, 나는 “엄마, 나 스탠퍼드 됐어!”라고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하마터면 고속도로에서 급정거할 뻔 했다.
합격 사실을 알게 된 후, MIT와 하버드대에도 추가로 지원했다. MIT는 합격, 하버드대는 불합격이었다. 지원하기 전에는 당연히 스탠퍼드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MIT에 합격하고 나니 ‘행복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4월 말, 스탠퍼드대 합격자 캠프 전에 MIT를 먼저 방문했다. 비록 날씨는 추웠지만, 보스턴에 있는 MIT는 도착하자마자 편안한 인상을 받았다. 학교 분위기가 서울과학고와 굉장히 비슷했고(이공계다웠다!), 고등학교 선배들과 국제올림피아드에 함께 참가했던 친구들을 보니 반가웠다. 때마침 장염에 걸린 나를 위해 약과 죽까지 사다 주는 선배들의 사랑에 스탠퍼드대를 선택하기가 더욱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후 도착한 스탠퍼드대는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덕분에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에, 훨씬 더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합격한 친구들을 한꺼번에 수십 명씩 만나다 보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케냐에서 1년 동안 사자를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전시한 친구, 케네디 홀에서 곡을 연주했다는 친구 등 다들 톡톡 튀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합격자 캠프 동안, 합격생들은 재학생 기숙사 방바닥에서 지냈다. 나를 재워준 비비안이라는 친구는 자신의 기숙사가 멀리 있다며 밤늦게 자전거를 타고 와 나를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울과학고 출신 MIT 선배들의 배려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둘 다 좋은 선택이라면 조금 더 새롭고 어색한 선택을 하자는 신념에 따라 결국 스탠퍼드대 진학을 최종 결정했다.
합격자 캠프 마지막 날, 나는 웃는 얼굴로 진학을 확정한 학생들만 칠 수 있다는 징을 세 번 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6년 9월 16일,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을 떠나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