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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유병언은 언제 사망했나

부패 상태와 현장 온도로 사망시간 추적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한 증거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불신으로 가득했던 여론은 정해진 결론을 원하는 듯했다. 적어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밝혀진 유병언 전(前)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이 확인된 당시에는 그랬다.

 

 

● 2014. 06. 12  전남 순천에서 변사체 발견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에서 부패한 시체 한 구가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갔다. 시신은 휴게소에서 불과 2.5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시체의 상태는 심각했다. 전신이 부패해 머리뼈와 얼굴뼈가 모두 노출돼 있었다. 늑막은 이미 구멍이 뚫려 부패 가스가 모두 소실된 상태였고, 구더기가 돌아다니며 몸통과 사지를 물어뜯고 있었다.

 

수사팀은 시체를 수습한 뒤 변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 시점을 추정하고자 했다. 사망 시점을 정확히 밝히는 것은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다. 변사자의 사망 전 행적을 밝힐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견된 시체는 뼈가 드러날 만큼 부패가 심각했다. 시체에 알을 낳는 곤충도 더 이상 찾지 않는, 부패 후기의 시체였다.

 

 

 

● 2014. 07. 22  오른손 지문으로 신원 파악

 

다행히 오른손의 손가락에 지문이 일부 남아 있었다. 수사팀은 이 지문을 이용해 변사자가 유병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뼛조각 일부를 떼어 내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다. 역시나 누워있는 시체는 유병언을 지목했다.

 

하지만 누가 이를 믿겠는가? 수많은 어린 영혼이 바닷속에 잠긴 비극적인 그날부터, 대한민국은 유병언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수많은 경찰 인력이 전국 각지를 샅샅이 수색하며 그를 찾고 있었는데, 발견한 지 한 달도 더 된 이 변사체가 유병언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게 확인됐을까. 아마도 그 시작은 부패 때문이었을 것이다. 산소 공급이 차단된 시체 내부에서는 황화수소, 질소, 암모니아 등 다양한 부패 가스가 발생한다. 이와 함께 팽창, 변색, 피부 박리 등 다양한 부패 현상이 일어나면서, 사후 초반 시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사라진다. 따라서 시체 소견만으로 시체의 주인이 누구인지, 또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패는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현장의 환경과 사망자의 신체 상태를 파악하고, 부패에 영향을 미칠 만한 변수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보이는 명백한 변수를 무시할 경우 사후경과 시간 추정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오차 또한 커지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여러 환경적 요인, 시체의 부패에 관한 다양한 정보, 그리고 과학적 연구와 실험 등을 토대로 쌓인 결과와 경험이 축적돼 있어야 한다. 이제 이에 대한 전문가인 사후변성학(forensic taphonomy)팀이 나서야 할 차례다.

 

 

 

 

● 2014. 07. 27  시체를 통한 부패지수 측정

 

사후변성학팀은 시체의 사망 시점을 밝혀내기 위해 ‘*부패지수’와 ‘*유효적산온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부패지수와 유효적산온도는 부패한 시체의 사후경과 시간 추정에 활용하는 수치로, 사건 수사에 직접 적용하는 건 국내에선 최초였다.

*부패지수 : (TBS·Total Body Score) 시체가 사후 부패하는 과정을 정량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수치다. 보통 사망 직후 시체에는 0점, 더는 부패가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전신에 백골화가 진행된 시체는 32점으로 본다.
*유효적산온도 : (ADD·Accumulated Degree Days) 생물에서 특정 시기의 생장이나 발육에 필요한 온도량. 검시에서는 사망 이후 시체가 부패할 때까지 누적된 온도량을 뜻한다.

 

부패 과정에서 의외로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차가운 영안실에 시신을 오래 보관하면 잘 썩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실제로 중요한 점은 온도, 정확히 말하면 ‘축적된 온도’다. 시신이 얼마나 따뜻하게, 오래 유지됐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일단 부패지수를 통해 시체의 부패 단계를 정량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후 이 단계까지 부패하는 데 축적된 유효적산온도를 구하면 사후경과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이때 시체가 놓여 있던 현장 온도 또한 계산에 반영해야 한다.

 

실제로 수사팀은 매년 동물실험과 사건 사례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의 지리적, 기후적 특성을 반영한 부패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좁고 해발고도의 차이가 큰 지형적 특성과 지리적 위치, 위도 등 지역별로 기온 특성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기후적 특성이 있다.

 

부패지수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산출했다. 우선 부패단계를 신선기, 부패 초기, 부패 후기, 백골화 등 4단계로 나눈 뒤, 다시 각 단계를 1~5개의 세부 단계로 나눴다. 이렇게 부패 과정을 정량적 단계로 구분한 뒤 이를 수치화했다. 

 

이때 부패가 신체의 모든 부위에서 동일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했다. 일례로 다리는 몸통과 달리 부패해도 팽창하지 않으며 부패액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부위별로 나타나는 부패 양상을 측정하기 위해 신체를 머리와 목, 몸통, 사지의 3개로 나눠 각각에 점수를 부여한 뒤 이를 합산해 부패지수를 산출했다. 

 

수사팀은 이런 식으로 유병언 시체의 부패지수를 계산했다. 우선 머리와 목은 뼈 노출이 절반 이상 진행됐고, 조직이 부패하고 *시랍이 형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9점을 부여했다. 몸통은 조직이 부패하면서 살이 처지고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 상태였고, 복강 또한 함몰돼 있어 5점을 부여했다. 
*시랍(adipocere) : 시체 속 지방이 물과 만나 가수분해되면서 비누화 현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형성된 밀랍 같은 물질.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잘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사지는 피부가 회색과 녹색으로 변색이 진행됐으며 *부패망도 발견됐지만, 피부 일부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여서 2점을 부여했다. 이렇게 산출한 유병언 시체의 부패지수는 총 16점으로, 이는 부패 후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점수다. 
*부패망(marbling) : 시체 속 혈액이 부패 과정에서 발생하는 황화수소와 반응해 혈관을 따라 짙은 녹색을 띠는 현상을 말한다.

 

 

 

 

● 2014. 06. 29  유효적산온도로 사망 시점 추정

 

드디어 유효적산온도가 나설 차례였다. 우선 수사팀은 부패지수 16점을 이용해 유효적산온도를 산출했다. 유효적산온도는 ‘TBS1.6=(125×log10ADD)-212’라는 회귀식을 사용해 구한다.

 

이 공식은 익사하거나 매장된 시체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다행히 유병언의 시체는 지상에서 발견돼 공식을 적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계산한 유효적산온도는 234도, 다시 말해 온도가 누적돼 234도가 되는 날과 시간을 역추적하면 사망 시점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수사팀이 해야 할 일은 시체가 발견되기 전 매실밭의 기후를 정확히 추정하는 일이다. 과거의 현장 온도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현재 온도부터 알아야 한다. 수사팀은 먼저 현장에 기상관측장비를 설치해 닷새 동안 기온을 측정한 뒤, 현장과 가장 가까운 기상관측소인 순천기상대(6.7km)와 황전면 소재 수평관측소(7.1km)의 기록과 비교했다. 다행히 현장 기온과 기상관측소의 측정값은 차이가 거의 없었다. 기상관측소의 온도 자료를 이용해 유효적산온도가 234도가 되는 날과 시간을 되짚으면 됐다.

 

 

수사팀은 유병언의 시체가 발견된 6월 12일 12시부터의 누적된 기온을 더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가령 6월 12일 평균온도가 18.3도였고 유병언의 시신이 12시에 발견됐으므로, 12시간 동안 유병언의 시체에는 18.5도의 절반인 9.15도의 유효적산온도가 쌓인다. 

 

수사팀은 기상관측소와 순천기상대의 데이터를 이용해 시체에 유효적산온도가 234도만큼 누적되기 위해서는 6월 1일 오전 5시부터 쌓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부패지수와 유효적산온도로 추정한 유병언의 사망 시점은 2014년 6월 1일 오전 5시경이라는 것이다.

 

이 결과는 수사팀이 유병언의 시체에서 발견된 큰검정뺨금파리와 연두금파리의 성장 속도를 이용해 추정한 2014년 6월 2일 정오 이전이라는 결과와 비교했을 때도 큰 차이가 없다. 또한 곤충을 이용한 사망 시점 추적은 최소 산란 시점을 토대로 결정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6월 1일 오전 5시는 오차범위 안에 들어간다. 유병언의 사망 시점 미스터리가 드디어 풀렸다.

 

 

 

현재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사망 시점 확인

 

부패지수와 유효적산온도를 이용하는 방법은 법곤충학 등 기존의 과학 수사 기법보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효율이 높다. 현장에서 시체 상태만 확인하면 바로 사망 시점을 확인할 수 있어 수사 초기에 사망 시점을 확정한 뒤 신속하게 단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곤충학의 경우 곤충의 종과 성장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곤충을 배양하고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곤충이 접근하기 어려운 밀폐된 공간에서 사망하거나 부패가 너무 많이 진행돼 애벌레가 없어 법곤충학을 적용하기 어려운 시체도 부패지수와 유효적산온도를 이용해 사망 시점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수사팀이 3~4년을 꼬박 매달려 얻은 귀중한 과학 수사법이다. 현재 수사팀은 이를 계산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부패한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사망 시점을 바로 확인하는 데 쓰고 있다.

 

201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심경양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검시조사관
  • 에디터

    신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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