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 각종 오염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그리고 오염으로 인해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환경학자들은 최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독성실험을 통해 파악할 수 없는 스트레스 수준의 오염영향을 알아낼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엘리자베스 강에서는 야생 사향쥐의 수면 시간을 측정하는 이색적인 실험이 실시됐다. 오염된 지역 한 곳과 깨끗한 지역 두 곳에서 총 63마리의 사향쥐가 생포됐다. 잡힌 사향쥐에게 펜토바비탈(Pentobarbital)이라는 마취제를 주사한 후 수면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오염된 지역에 서식하던 사향쥐는 평균 39분만에 깨어났지만, 오염되지 않은 나머지 두 지역에서 살던 사향쥐는 1시간이 지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오염지역에서 살던 사향쥐가 몸 속에서 마취제를 더 빨리 분해시킨 것이다.
좁힐 수 없는 오염현상과 오염영향 사이
평소 오염물질들이 농축된 먹이를 섭취했던 사향쥐의 간 속에는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상당히 증가된 상태임에 틀림없었다. 펜토바비탈도 이 효소의 작용으로 빨리 분해됐기 때문에 깨끗한 곳에서 살던 사향쥐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를 이용해서 오염도를 모르는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는 사향쥐의 수면시간을 측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사향쥐들이 30분만에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면, 그 지역의 사향쥐들은 오염물질에 노출돼 있었으며, 이미 생리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지만 이미 사향쥐들은 오염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머지 않아 수가 줄어들어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이제까지 환경학자들은 이러한 정보에 목말라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염이라는 현상과 오염에 의한 영향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장벽(?)이 가로 놓여 있어서 좀체로 그 사이를 좁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물이 오염돼 붕어가 흰 배를 드러내고 떠올랐을 경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강물이 오염돼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라는 사실 이외에는 별 다른 것이 없다.
과도한 유기물의 공급으로 산소가 고갈됐기 때문인지 아니면 독성이 높은 오염물질 때문인지 그 이유를 속 시원히 알아낼 수 없다. 강물의 수질을 분석해 각종 오염물질의 농도를 측정한다고 해도 별다른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설사 강바닥의 퇴적물 속에서 중금속이 몇 ppm 검출됐다고 해도 이것을 오염으로 인한 생물피해와 연관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죽은 붕어의 살과 내장을 분석해 오염물질이 얼마나 몸속에 농축돼 있는지를 조사해 본다면 좀더 그럴 듯한 정황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생물의 몸속에 축적된 오염물질의 농도를 측정하면 유기염소계 농약이나 중금속과 같이 생물농축이 되는 물질에 대해서는 노출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 속에서 쉽게 분해돼 생물농축이 되지 않는 오염물질이나 분석이 불가능한 복잡한 혼합물의 경우에는 증거를 찾아내기 어렵다.
또한 체내에 농축된 농도가 높다고 해서 독성작용이 크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체내에 농축된 농도와 그로 인한 독성작용과의 관계는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생물이 오염물질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오래 전부터 환경학자들이 즐겨 사용해 왔던 방법은 독성실험이었다. 관심이 있는 오염물질을 농도별로 생물에게 투여해 그 영향을 관찰하거나 생물이 죽는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성실험은 자연상태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먹이사슬을 통한 오염물질의 농축이나 장기간에 걸친 오염물질의 영향에 관해서는 정보를 주지 못한다.
스트레스 수준의 오염영향 측정가능
더구나 자연상태에서 나타나는 오염물질 농도는 대부분 독성실험의 농도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자연생태군집을 연구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96시간 반치사농도(96시간 동안 실험생물의 절반이 죽는 농도)가 몇 ppm이라는 결과만으로 이보다 훨씬 낮은 농도에 몇년 동안 노출되는 실제 상황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생물이 각종 오염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그리고 오염으로 인해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환경학자들은 최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오염물질에 대한 노출과 영향을 알아낼 수 있는 유효한 지표들을 바이오마커(Biomarker)라고 부른다.
바이오마커는 독성실험을 통해서 파악할 수 없는 스트레스 수준의 오염 영향을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이오마커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염으로 인해 생물의 개체군(population)이나 군집(community)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를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다.
바이오마커는 환경학자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목말라 하던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유행이라 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만약 바이오마커를 이용해 생물들이 어떤 오염물질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아낼 수 있게 된다면 오염으로 생물들이 죽거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기 전에 환경을 개선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오염물질에 얼마만큼 노출되고 있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그것도 바이오마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사람의 혈액에서 발암물질과 DNA의 결합체(DNA-adduct)를 분석함으로써 산불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중 오염물질에 어느 정도 노출됐는지를 측정한다면 이것도 바이오마커의 훌륭한 응용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연 상태의 생물들도 안간처럼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오염물질 뿐만 아니라 먹이나 기온 등 수많은 환경적인 스트레스를 복합적으로 견디면서 살아 남는 것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사망하는 사람이 있듯이 모든 생물들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1백여 가지 넘는 바이오마커 시험중
그러나 죽지 않을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죽음에 이르지 않더라도 스트레스의 영향이 몸 속 어딘가에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의 정도에 따라서 생리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성장이 감소하거나, 생식불능이 될 수 있으며, 저항력이 약해져서 쉽게 질병에 걸릴 수도 있다.
바이오마커는 이러한 미세한 변화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바이오마커는 오염으로 인한 구체적인 생물 피해나 생태계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이를 탐지하는 첨병 노릇을 하게 된다.
현재 한창 연구되고 있거나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는 바이오마커는 1백가지가 넘는다. 최근에는 실험실 내에서 어느 정도 성능을 인정 받은 바이오마커들을 실제로 오염된 지역에서 실험해 보는 연구들이 많이 수행되고 있다. 이제까지 개발된 바이오마커들은 성격상 크게 두가지 부류로 분류될 수 있는데, 오염물질에 얼마만큼 노출됐는지를 측정하는 것과 오염물질에 노출돼 어떤 해로운 영향을 받았는지를 측정하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바이오마커는 의학이나 생리학, 생화학 분야에서 개발된 방법을 응용해 환경 모니터링에 사용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벤조피렌과 같은 다환방향족(多環芳香族) 탄화수소(PAHs)는 시토크롬 P-450 산화효소의 양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효소의 양을 측정해 보면 얼마만큼 PAHs에 노출돼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생물들은 대부분 몸 속에 흡수된 중금속들을 제거하기 위해 중금속과 결합하는 메탈로티오닌이라는 단백질을 만들게 되는데, 메탈로티오닌의 농도를 이용해 노출정도를 파악할 수도 있다. 생물이 성장이나 생식에 사용할 수 있는 여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측정하거나 생물이 분비하는 여러가지 스트레스 단백질을 직접 측정하는 방법들도 사용되고 있다. 면역학적인 변화나 세포의 조직병리학적인 변화를 이용하는 방법, 특수한 염색시약을 이용해 세포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알아내는 방법 등 바이오마커의 개발에는 갖가지 기발한 방법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현재 1백여 가지가 넘는 바이오마커들이 시험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몇가지를 제외하고 바이오마커를 도구로 이용해 오염을 모니터링하는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바이오마커 그 자체를 연구하는 수준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장에서 직접 오염 모니터링에 사용할 수 있는 우수한 바이오마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계속돼야만 할 것이다.
바이오마커는 세포단계에서부터 개체나 군집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생물이 나타내는 반응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절이나 성별 온도 개체 간의 차이 등 여러가지 요인들에 의한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따라서 실험실 내의 시험에서 우수한 바이오마커로 인정받은 것일지라도 현장에서의 시험을 통해 그 효용성이 충분히 검증돼야만 비로소 오염 모니터링에 사용할 수 있다.
바이오마커는 스트레스 수준의 미세한 오염의 영향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해야 하고 결과도 오염 정도와 비례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현장에서 바이오마커를 사용하려면 측정방법이 비교적 간단하고 비용도 적게 들고 빠른 시간 내에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제약도 따른다.
생물을 죽이지 않고 측정할 수 있도록 개발
바이오마커를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이런 면까지 충족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요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생물을 죽이지 않고 측정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개발하는 것이다. 바이오마커를 이용해 오염도를 측정할 목적으로 채집된 생물들을 대량 살상해야 한다면 오히려 그런 행위 자체가 생물들에게는 오염보다 더 무서운 재해가 되기 때문이다.
바이오마커의 개발자들은 혈액만을 채취해 분석하는 등 생물을 죽이지 않고 측정할 수 있는 비파괴적인 바이오마커의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강에서 살고 있던 63마리의 사향쥐들은 수면시간을 측정하고 난 뒤 다시 그들이 살던 집으로 무사히 되돌려 보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