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막판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흔들렸어요. 하지만 수능이 다가오면서 부모님을 비롯해 선생님, 친구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저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따뜻한 응원이 제가 서울시립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 같습니다.”
서울시립대 화학공학과 18학번 전해진 씨는 정시모집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 총장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전 씨는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을 가장 중요한 합격 비결로 꼽았다. 어쩌면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그의 이런 성품이 합격의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답 노트 대신 문제집에 해설 정리
자신의 실력에 자만하지 않는 전 씨의 모습은 수험생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철저하게 고수한 자신만의 독특한 공부법이 있다. 그는 다른 학생들이 많이 활용하는 오답 노트를 쓰지 않았다. 대신 문제집을 노트처럼 썼다. 문제를 푼 뒤 틀린 문제나 헷갈린 문제 옆에 직접 해설을 써넣는 것이다. 그는 수능을 치를 때까지 3년간 이 방식을 고수했다.
이 방식의 핵심은 절대 답지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전 씨는 문제풀이가 담긴 답지 대신 교과서와 참고서 등을 활용해 직접 풀이 과정을 적었다. 그러다 보니 한 문제를 정리하는 데 수십 분이 걸리기도 했다.
전 씨는 “답지를 보면서 맹목적으로 오답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단 한 문제라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오답 노트라는 형식에 집착하는 대신 오답의 해법을 스스로 찾고 문제에 들어있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 씨는 똑같은 문제집을 두 권 산 뒤, 한 권은 해설을 작성하는 데 쓰고, 나머지 한 권은 문제를 다시 푸는 데 쓰기도 했다. 같은 문제를 여러 번 반복해서 풀면서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일찌감치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확립했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 씨는 “주변 친구들은 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인 데다가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보니 공부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특히 성적이 안 좋을 때에는 공부 방법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전 씨는 고등학교 3학년 6월 모의고사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자신의 공부 방법에 확신을 가졌다.
전 씨는 공부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공부에는 노력이라는 왕도가 있지만, 공부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며 “자신에게 편한 방식이고 자신의 노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쏟아 부을 수 있는 공부 방법이라면 과감히 밀어 붙여보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했다.
제한 시간 두고 문제 풀며 실전 대비
전 씨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으로 힘들고 긴 수험생활을 이겨냈다.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에 다닌 전 씨는 가족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일정을 관리해야 했던 만큼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였다.
여기에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했다. 꾸준히 공부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했다. 전 씨는 “문틀에 설치할 수 있는 철봉을 구매해 기숙사에서 턱걸이나 팔 굽혀 펴기 등 맨몸 근력 운동을 하루 30분씩 꾸준히 했다”며 “친구들과 배드민턴이나 탁구도 쳤다”고 말했다.
‘장기전’인 수험생활뿐만 아니라 시험을 앞두고 ‘단기전’을 준비할 때도 시간 관리에 유의했다. 전 씨는 “시험을 치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제한시간 관리”라며 “시험 중 시간이 모자라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해서는 공부와는 별개로 시험 시간에 익숙해지는 훈련이 따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능 모의고사를 풀 때 국어, 수학, 영어 과목은 제한시간에서 20분씩 줄인 뒤 풀었다. 시험 시간 내에 문제를 푸는 데 최적화하기 위해서였다. 전 씨는 “특히 국어와 영어는 답을 확실히 찾지 못하더라도 무조건 종료 20분 전에 모든 문제를 다 풀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문제를 빨리 푸는 데 치중하다 보면 자칫 정확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전 씨는 “처음에는 시간 내에 문제를 풀려고 서두르다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며 “훈련을 반복하면서 정확성도 향상돼 실제 수능에서는 시간의 부족함 없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 씨는 답안지 표기도 연습하기 위해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본 뒤 남은 OMR 카드를 공수해 연습에 활용했다.
전 씨는 이공계 학생들이 대체로 어려워하는 국어와 영어 과목의 문제를 빨리 풀 수 있는 비법을 하나 공개했다. 이들 과목의 경우 주어진 시간에 비해 문제의 양이 많기 때문에 지문과 문제를 빨리 읽는 것이 중요하다.
전 씨는 “먼저 지문을 웹페이지에서 스크롤을 하며 내리듯 빠르게 훑어 전체 흐름만 파악한 뒤 바로 문제로 넘어갔고, 중요해 보이는 부분은 밑줄로 표시했다”며 “이후 문제를 풀 때 표시해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지문 전체를 정독할 때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학 과목에서 가장 저지르기 쉬운 계산 실수에 대한 팁도 전했다. 전 씨의 경우 수능을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모의고사인 9월 모의고사에서 수학 점수가 낮게 나왔다. 그동안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계산 실수가 다시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전 씨는 “그간 신경써왔던 풀이 과정 정리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풀이 과정을 간결하고 보기 쉽게 작성하는 훈련을 다시 시작했고, 다행히 실제 수능에서는 실수 없이 풀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화학공학과 진학 뒤 연료전지에 관심 생겨
전 씨는 국어 1등급(97, 백분위), 수학 2등급(89), 영어 1등급(절대평가), 화학Ⅰ 1등급(97), 지구과학Ⅰ 2등급(90), 한국사 1등급(절대평가)의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서울시립대 화학공학과 수석으로 합격했다. 서울시립대는 등록금과 장학제도 등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학생들을 폭넓게 지원하고 있다.
전 씨가 화학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화학공학이 가진 다양성 때문이다. 사실 전 씨는 수능 공부에 집중하면서 진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화학공학과를 지원한 이유는 명확한 목적의식보다는 화장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에 흥미가 있어서였다.
전 씨는 “원래 한 가지 방향을 정해놓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유연하게 행동하는 성격”이라며 “화학공학과에 진학하면 화장품 분야 외에도 석유나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어 다른 전공보다 유연하게 진로를 고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씨는 크게 두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원래부터 생각해왔던 화장품 연구원이다. 피부가 예민한 그는 특히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자외선차단제 속 화학 성분을 연구·개발하는 연구원을 꿈꾸고 있다.
다른 하나는 연료전지 분야다. 전 씨는 “최근 전공 설계 수업에서 고분자를 이용한 태양전지를 배웠다”며 “고분자를 이용한 연료전지나 태양전지를 설계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 씨는 예비 수험생들을 위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 모의고사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정시로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줄 알았어요. 때로는 저의 공부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닌지, 정시모집에 지원해도 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히 의미 있는 결과로 돌아올 겁니다.”
※편집자 주
최근 대학별 입시 제도가 다양해지면서 수석합격자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스펙’도 다양해졌다. 과학동아는 서울시립대의 지원을 받아 수석합격자에 부합하는 학생을 만나, 중·고등학교 시절 학업 방법을 듣고 이를 통해 대학 합격 비결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