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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고치는 수술 로봇 ‘닥터 허준’

침 대신 내시경 들었다

 

"2018년 10월 24일 오전 9시, 모든 역량을 발휘해야 할 순간이 왔다. 먼저 경막외강으로 투입할 카테터를 로봇 팔에 설치한 뒤 조이스틱을 움직여 작동 여부를 시험했다.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앞뒤 그리고 상하좌우 모든 방향으로 카테터가 원활하게 움직인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임무가 남았다. 경막외강으로 카테터를 진입시켜 추간판을 제거하는 것이다.

 

드디어 꼬리뼈 쪽에 뚫은 구멍을 통해 카데바(해부용 시체)에 카테터를 삽입했다. 수술을 지켜보는 연구팀 모두가 가슴을 졸이던 순간, 로봇팔을 움직이는 필자의 손에도 땀이 맺혔다.

 

모두의 걱정과 두려움은 내시경 화면을 통해 선명하게 보이는 추간판의 모습과 함께 점점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필자는 레이저를 조작해 추간판 조직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카테터를 통해 전달된 레이저를 통해 조직이 점차 타들어 갔다. 

 

마침내 집도가 끝나고 조직이 성공적으로 제거된 것을 확인한 연구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5년 간의 개발 과정, 로봇으로 척추질환을 치료하는 시대를 열고자 했던 연구팀의 땀과 노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디스크 수술 로봇 ‘닥터 허준’의 데뷔는 일단 성공이었다."

 

 

허리디스크 환자 200만 명 시대
 

 

척추는 우리 몸의 기둥과 같은 존재다. 집을 지을 때도 기둥이 중심을 잡듯, 척추 또한 신체의 가장 중심에 있으면서 사람의 형체를 이루고 장기들을 제 위치에 있게 한다. 또한 몸이 움직일 때 신체 전체를 지지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런 척추의 뼈 사이에는 충격 흡수 역할을 하는 추간판(intervertebral disc)이 있는데, 척추의 원활한 움직임을 돕고 압박으로부터 척추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추간판은 흔히 ‘디스크’로 불린다. 

 

 

여기에 인간의 척추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한 가지 역할을 더 해야 한다. 바로 중력에 맞서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두 발로 서서 직립보행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누워있는 시간을 빼면 앉아 있든 서 있든 디스크에 계속 압박이 가해진다. 그래서 인간의 척추는 굉장히 고달프다, 시간이 지나면서 척추와 디스크는 압박을 이기지 못해 닳게 되고, 제때 회복하지 못하면 척추관협착증, 후관절증후군 등 척추질환으로 이어진다.

 

누구도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만큼 많은 사람이 척추질환으로 고통을 겪는다. 특히 앉아서 활동하는 비중이 늘어난 현대인은 척추질환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에서 척추질환 환자는 무려 1260만 명에 육박한다. 국민 4명 중 1명이 척추질환을 앓는 셈이다. 

 

 

이 중 일명 허리디스크로 불리는 추간판탈출증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는 193만여 명으로,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척추질환 환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게다가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척추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는 더욱 흔해졌다. 한번 발병하면 평생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척추질환은 인류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다.

 

 

다빈치 로봇, 좁은 척추에 투입 어려워
 

 

문제는 척추가 견고하면서도 매우 예민한 존재라는 점이다. 척추가 몸의 중심을 떠받치는 기둥이면서 신경계의 중심인 척수를 지키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척수는 한번 손상되면 돌이킬 수 없다. 평생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한다. 따라서 척추 수술은 정확성과 정밀성, 그리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집중력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척추 수술을 로봇 수술로 진행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로봇 수술은 수술의 정확성을 높이고, 의사의 피로를 줄일 수 있어 수술의 안전성을 높인다. 절개 부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 많은 내·외과 분야에서 정밀한 수술에 로봇을 투입하고 있으며, 위암, 대장암, 직장암, 유방암, 갑상선암 등 각종 암 수술에 로봇이 사용될 만큼 널리 보급됐다. 

 

 

 

가장 유명한 수술용 로봇은 ‘다빈치’다. 하지만 다빈치 로봇과 같은 수술용 로봇을 척추 수술에 투입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척추가 로봇 수술을 진행하기 어려운 부위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로봇 수술은 질소 가스를 수술 부위에 주입해 공간을 확보한 뒤 포트(port)라고 불리는 구멍을 몇 개 뚫어 한쪽으로는 내시경을, 다른 쪽으로는 수술 기구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즉, 수술 기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로봇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척추뼈는 매우 단단하며, 내부 공간은 아주 협소하다. 게다가 속에는 중요한 신경이 잔뜩 들어있다. 두 개 이상의 구멍을 뚫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령 구멍을 뚫었다고 할지라도 매우 좁은데다가 그 속에 질소 가스를 주입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척추 수술에 기존 로봇을 투입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척추 수술에서 로봇의 역할은 척추에 내시경을 투입하기 위해 나사못을 삽입할 위치를 알려주고, 이를 보조하는 수준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기존의 수술 기구를 소형화하거나, 기존 수술 방법과는 다른 방식의 수술 기법은 아직 연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길고 유연한 카테터 단 ‘닥터 허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료로봇연구단은 필자를 포함해 많은 연구진과 함께 척추 수술용 로봇 닥터 허준 개발에 착수했다. 닥터 허준은 내시경 로봇으로 척추 수술 중 피부를 통한 경막외내시경술(percutaneous epiduroscopy)을 자동화한 로봇이다. 

 

이 수술은 카테터에 달린 내시경을 이용해 척추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통증 원인을 찾아내는 수술이다. 탈출한 추간판이나 신경 주위 유착을 제거할 수 있으며, 신경을 자극하는 염증 물질도 씻어낼 수 있다. 최소한의 침습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난도가 높아 신경외과 전문의조차도 힘들어하는 수술이다. 또한 내시경뿐만 아니라 수술용 X선 조영장치(C-arm)를 통해서도 수술 부위를 확인하며 진행하기 때문에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방사선에 노출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닥터 허준은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닥터 허준의 생김새를 살펴보면 마치 2005년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우주전쟁’에 나오는 로봇처럼 생겼다. 이 로봇은 주인공을 찾아내기 위해 촉수처럼 생긴 긴 팔로 구불구불한 통로를 타고 지하실까지 침투한다. 

 

 

 

닥터 허준의 카테터가 딱 그 모양이다. 사방으로 구부러질 수 있는 유연하고 기다란 카테터는 수술 부위를 파고들거나 빠져나갈 수 있으며,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도 있다. 닥터 허준을 사용하면 손으로 직접 조작할 필요 없이 조이스틱만으로도 카테터을 정밀하게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수술 장비에서 떨어져 원격으로 수술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방사선의 영향에서 안전하다는 장점도 있다. 

 

카테터 속에는 높은 해상도의 카메라가 내장돼 있어 척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카메라 개발은 국내 반도체기업인 ‘인지’가 담당했는데, 초광각 렌즈인 어안렌즈를 활용해 시야각을 140도까지 확보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기존 카메라(70도)에 비해 두 배가량 시야를 확대한 것이다. 이로써 훨씬 더 넓은 범위의 환부를 확인하면서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 

 
 

카메라, 조명, 레이저까지 지름 3mm 내시경에 설치
 

놀라운 건 이 모든 기능을 단 3mm에 집약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경막외강은 매우 좁은데다가 체액으로 채워져 있어, 내시경이 가늘수록 좋다. 닥터 허준의 카테터는 지름 3mm 안에 카메라와 광섬유 조명뿐만 아니라 내시경 내부로 다른 장비를 투입할 수 있는 통로도 갖추고 있다. 통로를 통해 레이저나 포셉 등 여러 수술 기구를 투입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닥터 허준에는 혁신적인 기술이 여럿 도입됐다. 가장 특색 있는 기술은 카테터의 위치를 알려주는 가상현실(VR)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2차원 수술 영상을 카테터의 3차원 공간 정보로 변환해 집도의에게 제공한다. 또한 연구팀은 닥터 허준을 처음 접한 의사가 수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훈련을 돕는 시뮬레이터도 함께 개발했다. 

 

2013년부터 개발한 닥터 허준은 2016년 1차례, 2017년 2차례 등 총 3차례에 걸쳐 살아있는 돼지를 대상으로 전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안전성과 성능을 확인했다. 그리고 10월 24일 카데바로 진행한 마지막 전임상시험을 통해 임상시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현재 닥터 허준은 상용화를 위한 전기전자 안정성 시험과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인허가가 끝나면 로봇과 함께 상용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직 기술적·기계적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닥터 허준을 잘 발전시킨다면, 비단 척추뿐만 아니라 뇌, 기관지, 후두, 방광, 혈관 등 내시경 수술이 필요한 여러 질환에 폭넓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는 우리 의술을 크게 발전시킨 허준처럼, 닥터 허준이 앞으로 의료 강국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층 더 끌어올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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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신동아 신촌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
  • 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 에디터

    신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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