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아아앙!
짧은 파열음과 함께 성인 키보다 조금 큰 로켓이 하늘로 힘차게 솟구쳤다. 로켓은 3초간 엔진에서 불을 뿜으며 올라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조금 뒤 낙하산을 달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7초. 권세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낙하산이 펼쳐졌다는 것은 로켓 회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뜻”이라며 “로켓 발사는 성공”이라고 말했다. 민간이 개발한 국산 과학로켓이 처음으로 발사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우리새-2호’ 첫 발사 성공
10월 28일 오전 8시 전북 부안군 새만금 간척지. 발사팀은 ‘우리새-2호’ 발사 준비로 바빴다. 발사 예정 시각은 오전 10시 정각. 이날 새만금 지역에는 강풍을 동반한 구름이 비를 뿌릴 것으로 예보됐지만, 다행히 날씨가 대체로 맑았다.
하지만 발사 시각이 다가올수록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바람이 들이쳤다. 예정됐던 발사도 중단됐다. 최대 풍속이 초속 10m로 바람이 강했다. 권 교수는 “소형 로켓의 경우 보통 바람이 초속 10m 이상이면 발사하기가 어렵다”며 “우리새-2호는 로켓 규모에 비해 추력을 크게 설계해 최대 풍속 15m까지는 발사할 수 있지만,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일단 발사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조금 기다리자 비바람이 잦아들고 구름이 걷혔다. 이때 시각이 10시 10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발사 준비에 문제가 생겼다. 로켓에 질소 가스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가스가 소량 누출됐다. 권 교수는 “로켓을 조립한 뒤 밸브가 제대로 잠기지 않아 일시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라며 “비행 컴퓨터 시스템을 다시 시작해 밸브가 잠긴 걸 확인한 뒤 다시 질소를 주입했다”고 말했다. 이후 안전을 위해 발사팀은 우리새-2호에서 100m가량 떨어져 발사 현장을 지켜봤다.
10시 43분, 카운트다운과 함께 마침내 우리새-2호가 힘차게 비상했다. 발사 후 3초가 지날 무렵, 지상 통제기를 확인하는 연구원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비행컴퓨터 시스템을 담당한 박기연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선임연구원이 “우리새-2호로부터 데이터 전송이 끊어졌다”고 말했다.
발사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어 긴장이 극에 달한 순간, 우리새-2호가 낙하산을 펼친 채 모습을 드러냈다. 현장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인근 연안에 착륙한 우리새-2호는 부안소방서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회수됐다.
민간 최초 하이브리드 과학로켓
우리새-2호는 길이 2.2m, 지름 0.2m, 무게 약 12kg인 소형 과학로켓이다. 권 교수팀이 서정기 KAIST 인공위성연구소 책임연구원팀과 공동으로 2014년부터 4년에 걸쳐 개발에 성공했다. 과학로켓은 로켓의 추진기관을 개발하거나 무중력 실험, 대기질 측정 등 과학적인 목적으로 발사하는 연구용 로켓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제작된 과학로켓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이 개발한 ‘KSR-Ⅰ호’ ‘KSR-Ⅱ호’ ‘KSR-Ⅲ호’가 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이 아니라 민간에서 과학로켓을 개발해 발사에 성공한 건 우리새-2호가 처음이다.
우리새-2호는 민간 최초의 하이브리드 로켓이기도 하다. 하이브리드 로켓은 액체연료와 고체연료를 모두 사용해 추진력을 내는 로켓을 말한다. 1960년 인하대에서 국내 첫 민간 로켓인 ‘IITO-1A’를 개발했지만, 데이터 수립이 목적인 진정한 의미의 과학로켓은 우리새-2호가 처음이다. 게다가 당시 개발된 로켓은 모두 고체연료를 썼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켓은 추력이 좋고 구조가 간단하며 보관이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연소 제어가 어렵고 효율이 떨어진다.
인공위성 등 탑재체를 원하는 궤도에 정확히 올려놓기 위해서는 연료 제어가 쉬운 액체로켓이 용이하다. 액체로켓은 구조가 복잡하고 제작이 어렵지만 현재 우주 선진국들은 대부분 액체로켓을 쓰고 있다. 2013년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 1단에도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이 쓰였다. 2021년 발사 예정인 ‘누리호’는 1, 2, 3단이 모두 국산 액체연료엔진으로 설계됐다.
하이브리드 로켓은 액체연료 로켓과 고체연료 로켓의 장점을 고루 갖췄다. 고체연료 로켓과 달리 연소 조절이 용이하고, 액체연료 로켓에 비해 구조가 간단해 개발비를 줄일 수 있다. 권 교수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수준의 액체연료 로켓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과 오랜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며 “적은 개발비로 인공위성 발사가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로켓을 택했다” 설명했다.
우리새-2호는 고체연료로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을 사용한다. 산화제 탱크에 저장된 고농도 액체 과산화수소가 연료의 연소를 돕는다. 과산화수소가 산소를 공급해 HDPE의 연소를 촉진함으로써 높은 추진력을 낸다. 이때 산화제 탱크에 저장된 질소 가스가 과산화수소를 추력기로 내뿜는 역할을 한다. 권 교수는 “우리새-2호의 추력은 1000뉴턴(N)으로 중력가속도의 최대 7배까지 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켓은 탑재체로 미사일을 실으면 무기로 변질될 수 있어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등에 의해 부품 수출입이 엄격히 규제된다. 과학로켓이라도 로켓의 요건을 갖춘 이상 부품을 수입할 수 없고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로켓 발사의 핵심이 되는 추력기를 비롯해 전반적인 로켓 제작은 권 교수팀이 맡았다. 엔진에 과산화수소의 공급을 조절하는 밸브는 국내 기업인 스페이스솔루션이 제작한 로켓용 밸브를 사용했다. 하이브리드 로켓은 산화제를 공급해 연료의 연소를 조절하는 방식이어서 이를 조절하는 밸브는 로켓의 핵심 부품이다. 액체 과산화수소를 보관하는 산화제 탱크 역시 국내 기업인 이노컴의 탄소섬유 탱크를 사용했다. 권 교수는 “탄소섬유 탱크 덕분에 로켓의 무게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로켓 회수는 KAIST 인공위성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회수 시스템을 사용했다. 과학로켓은 데이터 분석 등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발사 이후 데이터 수집을 위해 로켓을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서정기 책임연구원은 “회수 시스템은 낙하산을 자동으로 펼쳐 로켓을 안전하게 착지시킨다”며 “기존의 5분의 1 수준으로 가볍게 제작하는 데 성공해 현재 특허 출원 중”이라고 말했다.
비행 컴퓨터 시스템과 지상 통제기는 국내 기업인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가 제작했다. 비행 컴퓨터 시스템에는 로켓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속도계 외에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고도계 등 로켓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비, 밸브 개폐 등 로켓 발사를 관리하는 통신 시스템, 수집된 데이터를 저장하는 저장 장치 등이 포함된다.
3km 날 수 있는데 1km 고도 제한
우리새-2호를 발사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현행법상 로켓 발사를 위해서는 여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단 부지 사용허가가 필요하다. 발사팀은 새만금개발청으로부터 10월 28일과 11월 4일, 12월 6일 세 차례 부지사용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로켓을 고도 150m 이상 발사하기 위해서는 공역(空域) 사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발사팀은 대한민국 공군과 미국 공군으로부터 1km의 공역 사용을 허가받았다. 새만금 간척지의 경우 인근에 공군 비행장이 있어 공역을 국토부가 아닌 공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공역 사용 허가가 나지 않아 그간 발사팀은 두 차례나 발사 계획을 취소했다. 권 교수는 “2017년 7월 전남 고흥군에서 발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공역 사용허가 신청 절차에 익숙하지 않아 발사 허가를 못 받았다”며 “올해 8월에도 절차상의 이유로 발사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우리새-2호의 로켓 발사를 허가해준 새만금개발청과 공군 측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발사팀은 회수한 우리새-2호에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발사 3초 뒤 데이터 전송이 중단됐던 이유도 확인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로켓을 회수해 조사한 결과 컴퓨터가 비정상적으로 종료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데이터 전송이 중단된 원인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다음 발사체 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며 “우리새-2호의 발사 성공 의미를 충분히 얻었다”고 밝혔다.
발사팀은 11월 4일 우리새-2호 2차 발사에도 성공했다. 이번에는 데이터 수집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로켓의 위치, 고도, 속도 등 각종 데이터가 비행 컴퓨터에 저장돼 지상으로 전송됐다.
발사팀은 12월 6일 새만금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발사를 진행한다. 권 교수는 “우리새-2호는 사실 1km 고도 제한을 맞추기 위해 다시 제작한 로켓”이라며 “고도 3km까지 비행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했지만, 공역 사용이 1km로 제한돼 있어 발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더했다.
앞으로 연구팀은 비행 고도를 더 높여 2년 뒤 20~30km 상공에 안정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과학로켓을 개발할 계획이다. 권 교수는 “내년 발사를 목표로 10km 이상 비행 가능한 과학로켓을 개발 중”이라며 “국내에서는 발사가 어려워 미국 모하비 사막에 있는 민간운영 발사장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장기적으로는 초소형 인공위성인 큐브샛을 지구 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