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간식도 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빗질도 해주고, 양치질도 매일 시키고 있어요. 그런데 강아지가 저를 가장 좋아하면서도 만만하게 생각하는지 자꾸 저만 물어요. 서열정리가 안 돼서 그렇다는 얘기를 듣고 서열정리를 하려다가 또 물렸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가 주인 무는 이유, 서열 탓 아냐
수십 년 전만 해도 개가 사람을 물면 ‘서열에 의한 공격성’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제 이 문구는 동물행동의학 교과서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물과 사람 사이에는 ‘서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열은 자원이 한정돼 있을 때,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순서다. 먹을 것, 쉴 곳, 교미할 대상의 숫자가 한정적일 때 우선권을 가지는 것이다. 대개 그 순서를 결정하기 위해 힘이나 공격 행동을 사용한다.doi:10.1017/S0140525X00009614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먼저 차지한다고 해서, 즉 서열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공격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가령 동물 두 마리가 한정된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다가도 그 중 몸집이 작거나 약한 개체가 복종 행동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리된다. 서열이 안정적인 경우에는 동물이 공격성을 보일 필요가 없다. 서열과 공격성은 다른 문제라는 말이다.
더군다나 사람과 반려동물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반려동물들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자원을 제공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을 보이거나 사람에게 요구하는 행동(조르는 행동)을 보이기 쉽다.
그렇다면 이번 사연에 나오는 개는 왜 주인을 무는 걸까. 대부분은 개가 아프거나 무섭거나 혹은 불편해서다. 개가 불편할 만한 일을 예로 들면 목욕이나 엉긴 털을 빗는 일 등이다. 이럴 때 개는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으르렁댄다.
개가 으르렁댈 때마다 혼내면 더 이상 으르렁대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경고 행동을 하지 않고 바로 물어버릴 수 있다. 또 무는 행동이 사람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지속적으로 물게 된다.
아픈 곳 없는지 살펴보기부터 해야
만약 개가 주인을 문다면, 왜 무는지 원인을 알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먼저 개가 아픈 곳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특히 개가 중년(7세) 이후에는 관절염과 치과 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방사선 촬영과 신체검사로 관절염 여부를 확인하고, 아픈 곳이 발견되면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입 냄새가 나거나 잇몸이 빨갛게 부었거나 치석이 많다면 치통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는 스케일링과 함께 적절한 치과 치료를 하고, 통증이 사라진 뒤에 양치질을 시킨다.
치료든 교육이든 개가 싫어할 만한 일을 해야 한다면 기분 좋은 일과 연결하는 것이 좋다. 양치질을 싫어한다면 칫솔을 보여준 뒤 간식을 주고, 치약을 약간 맛보게 한 뒤 간식을 주고, 칫솔을 입에 갖다 댄 뒤 간식을 주고, 1초 동안 칫솔질을 한 뒤 간식을 주는 등 이런 방식으로 시간을 천천히 늘려나가며 양치질에 익숙하게 만드는 게 좋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 개를 쓰다듬어줬다가 물렸다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와 먹을 때 개를 쓰다듬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 방해받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관절염이나 치과 질환, 귓병을 앓았던 개들은 치료가 끝난 뒤에도 쓰다듬는 걸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행동 교육은 오래 걸리는 과정이다. 하지만 ‘개가 왜 싫어할까?’라고 먼저 자문해야 한다. 개가 왜 으르렁대는지 원인을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키우는데도 나에게 으르렁거리는 반려견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분명한 건 나보다 서열이 높아서도 아니고, 서열 싸움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김선아
충남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수의사가 된 뒤, 서울대에서 동물행동의학 및 야생동물의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내 최초로 동물의 정신과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비아동물행동클리닉을 운영했고, 해마루케어센터 센터장으로 동물정신과와 호스피스 진료를 했다. 현재는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 데이비스)에서 동물행동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다. viaab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