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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당신들도 그곳에서 행복하길 바랍니다"

과학동아가 선정하는 이달의 책

종종 그럴 때가 있다. 타인을 향한 말과 몸짓이 되려 자신을 감싸고 위무하는. 전 인류에겐 ‘골든 레코드’가 어쩌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에는 골든 레코드라고 불리는 지름 약 30cm의 금빛 LP레코드 판이 붙어 있다. 외계문명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지구를 대표할 음악 27곡,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생명의 소리 19개, 환경과 문명을 보여주는 사진 118장이 수록됐다. ‘지구의 속삭임’은 보이저 발사 1년 뒤 앤 드루얀, 칼 세이건, 프랭크 도널드 드레이크, 존 롬버그, 린다 살츠먼 세이건, 티머시 테리스가 골든 레코드 제작 과정을 쓴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놀랍게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이 프로젝트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사용 허가를 다 받고 제작도 다 마친 레코드 판을 6주 만에 가져오라고 했다.”(95쪽) 그 덕에 내용 전체가 좌충우돌이다. 프로젝트에서 소리를 담당한 예술가 앤 드루얀은 지구의 소리를 모으려고 며칠이고 미국 전역에 전화를 돌려야 했다. “제가 듣기로 선생님께서 가장 훌륭하게 개굴거리는 울음소리를” 혹은 “가장 야비한 하이에나 울음소리를” 혹은 “가장 파괴적인 지진 소리를 갖고 계시다고 하던데요. 그 복사본을 구할 수 없을까요?”(204쪽)
 


사실 보이저 호가 다른 외계문명을 만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렇다고 이들의 노력이 헛수고란 말은 아니다. 눈·코·귀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완벽한 타자에게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이들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전쟁 같은 인류의 파괴적인 모습은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

생각건대, 그들에겐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여전히 위태롭고, 우리는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문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주 공간에 영원히 남길 만한 문명을 꼽은 일은 그 자체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작업이었다.

한 가지 재미난 건, 골든 레코드와 이 책이 현대인에겐 이미 타임캡슐이라는 점이다. 40년 전이다. ‘정말 그랬을까’ 싶은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예컨대 이들이 제안했던 사진 중엔 의학교과서에서 꼽은 남녀의 누드 사진이 포함돼 있었는데, NASA는 대중의 반응을 걱정해 거부했다(103쪽). 골목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녹음한 남자는 앤 드루얀을 내쫓으며 “NASA가 나 같은 우람한 사운드맨에게 쪼끄만 여자를 보내다니 간도 크군!”이라고 소리를 질렀다(207쪽).

타임캡슐을 열면 생명의 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이 40년을 가로질러 우리를 감싸 안는다. 레코드에 실린, 물 C. 굽타의 라자스탄 어 인사가 인상적이다. “모두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행복하니 당신들도 그곳에서 행복하길 바랍니다.”(196쪽)


 

한국엔 탐사문화가 없다. 방방곡곡을 밟으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와, 아시아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등반한 엄홍길 정도가 예외다.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북극과 남극 항로를 각각 개척한 로버트 피어리와 로알 아문센 등 걸출한 모험가를 수없이 배출한 서구와는 다르다.

그래서 과학탐험가라는 직책을 어깨에 얹고 전세계 지질학적 명소들을 탐험한 뒤, 그 값진 경험을 TV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책 등을 통해 나누는 그가 반갑다. 이 책의 저자는 서른이 다 돼 과학의 매력에 빠져 호주 행 비행기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탐험가가 됐다. 특히 2010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NASA 우주
생물학그룹과 함께 서호주를 탐사했다.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는 세 차례에 걸친 서호주 탐험을 5년간 기록한 에세이이자, 탐험 입문서다.

책을 열자마자 만나게 되는, 호주 사막에서 조난 당한 이야기를 읽으면 긴박감에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박물관에서 우연히 지질학자이자 우주생물학자인 마틴 반 크라넨동크 박사의 책을 만나고 보름 뒤 기적처럼 그와 함께 필바라로 떠난 대목을 읽으면 온몸이 짜릿하게 떨려 온다.

때론 목숨까지 위험한 일에 뛰어든 그에게 뭇사람이 찬사를 보내는 것과 달리, 저자는 어쩌면 탐험은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한국에 돌아온 뒤엔 구름에 가려진 별자리의 위치를 상상하고 방파제에 쌓인 암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며 가끔 화성에 있는 탐사로봇에게 ‘수고했다’고 혼잣말을 한다고.
탐험에 나설 용기를 얻은 것 같다.


 

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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