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현지시간) 애플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사옥에서 신형 ‘아이폰XS’와 ‘아이폰XS맥스’ 그리고 ‘아이폰XR’을 공개했다. 새로운 아이폰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화면 크기다. XS는 5.8인치, XS맥스는 6.5인치다. 보급형인 XR도 6.1인치다. XS맥스(6.5인치)는 지금까지 나온 아이폰 가운데 화면이 가장 크다. 최근 출시된 삼성의 ‘갤럭시노트9’도 6.4인치로 XS맥스와 비슷하다.
스마트폰 화면이 커지고 있다. LG의 ‘V40 ThinQ’, 샤오미의 ‘포코폰’ 등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이 모두 6인치 이상 대화면으로 나왔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2017년 ‘패블릿(폰과 태블릿의 합성어로 대화면 스마트폰을 뜻함)’으로 불리는 5.5인치 이상 대화면 스마트폰이 2020년에는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바야흐로 스마트폰 대(大)화면 전성시대다.
화면, 1년에 0.2인치씩 증가
스마트폰의 화면이 커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이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5인치 스마트폰과 6인치 스마트폰을 비교하면, 두 스마트폰의 가로세로 비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실제 화면은 6인치 스마트폰이 약 77.8% 더 크다.
스마트폰 시청 거리까지 고려하면 피부에 더욱 와 닿는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폰 시청 거리는 30cm 내외다. TV는 2m가량 된다. 비율로만 따지면 30cm 거리에서 4.5인치 화면을 보는 것과 2m 거리에서 30인치 TV를 보는 것은 비슷하다. 여기서 스마트폰 화면이 6인치로 커지면 TV는 40인치로 대폭 커진다.
화면 크기에서 오는 체감의 차이만큼 콘텐츠 몰입도도 달라진다. 특히 유튜브 등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시장이 차츰 늘어나는 추세에서 화면 크기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은 3~4인치대로 작아 한 손에 쥐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공개했을 때 화면은 3.5인치였다.
이후 스마트폰 화면은 조금씩 커져 2017년에는 스마트폰 화면의 평균 크기가 5.3인치까지 늘었다(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의 2017년 5월 자료). 10년간 1.8인치, 매년 평균 약 0.2인치씩 꾸준히 증가한 셈이다. 올해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는 화면이 5.5인치 미만인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화면의 크기는 소비전력과 직결된다. 스마트폰의 액정표시장치(LCD)는 정보 표시 기능뿐만 아니라 센서 역할도 함께 한다. 따라서 스마트폰의 배터리 소모량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화면이 커지고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소비전력이 커져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스마트폰 업체들은 배터리 용량을 늘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갤럭시노트9의 경우 4000mAh(밀리암페어시)의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해 구동 시간을 최대 27시간(연속 통화 기준)으로 늘렸다.
이영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융복합센서연구그룹 책임연구원은 “초기 스마트폰은 리튬폴리머 전지의 양극(+)으로 코발트산화물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니켈-망간산화물을 쓴다”며 “양극 물질의 용량은 1.5배가량, 전압은 0.2V 정도 높아져 에너지 밀도는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전극 구성과 적층 등 공정 기술도 발달해 배터리 용량은 2배 이상 늘어났고 크기는 더 작아졌다”고 덧붙였다.
베젤 줄이고, 지문센서 없애고
소비자들이 모두 대화면 스마트폰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면 스마트폰이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9월 15일 현지 여성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아이폰 신제품이 너무 커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1인치(2.54cm)가량 손이 작은 여성이 쓰기에는 불편하다며 여성 사용자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여성 운동가 캐롤라인 크리아도 페레즈는 트위터를 통해 “아이폰6을 쓰는 동안 화면이 너무 큰 휴대전화를 조작하다 보니 ‘반복 운동 손상(RSI)’ 증후군에 걸리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RSI는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 발생하는 근육 장애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다시 줄이기는 쉽지 않다. 요즘 스마트폰은 700~1000여 개의 부품이 내부를 빽빽이 채우고 있다. 여기에 스마트폰이 진화하면서 최신 기능인 방수·방진, 무선 충전, 전자결제 시스템 등도 추가됐다.
‘스마트폰 크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의 베젤(bezel)을 줄였다. 베젤이란 디스플레이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실제로 화면이 표시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말한다. 애플의 경우 아이폰X부터 화면의 일부를 파내는 노치(notch) 디자인을 적용하고 물리적인 홈버튼을 제거하면서 베젤의 크기를 줄였다. 삼성 갤럭시 시리즈도 작년부터 홈버튼을 없애 베젤을 줄였다.
베젤을 축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디스플레이다. 이정익 ETRI ICT소재부품연구소 실감소자연구본부장은 “베젤을 얇게 만들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를 스마트폰 모양에 최대한 딱 맞게 재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빛을 발하는 기술이 플렉서블(휘어지는) 디스플레이다. 이 본부장은 “얇은 플라스틱 기판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만든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이용하면 스마트폰에서 둥근 모서리와 모퉁이도 곡면으로 재단할 수 있다”며 “현재 스마트폰의 몸통 대비 화면 비율은 80%를 넘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더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베젤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디스플레이 터치 오류다. 베젤이 줄어들면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을 때 화면에 닿는 부위가 넓어 터치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본부장은 “사용자 알고리즘 등 소프트웨어를 개선해 어느 정도 문제를 줄일 수 있다”며 “삼성, 애플, 구글 등이 제공하는 인공지능(AI) 음성인식 서비스도 이를 보완하기 위한 서비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앞면에 탑재되는 부품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디스플레이 전면부에는 스피커, 카메라, 지문 센서 등이 장착돼 있는데, 이를 다른 위치로 옮기거나 줄이는 것이다. 특히 최소 엄지손톱 크기의 면적을 필요로 하는 지문 센서가 관건이다. 많은 제조사들이 지문 센서를 스마트폰 뒷면으로 옮기거나, 홍채 인식이나 얼굴 인식을 이용해 지문 인식 시스템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스마트폰 전면부에서 지문 센서를 없애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디스플레이 내부에 지문 센서를 심는 것이다. 기능을 유지하면서 부품 수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여기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박장웅 울산과학기술원(UNIST) 신소재공학부 교수팀은 액정에 삽입할 수 있는 투명하고 유연한 지문 센서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7월 3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doi:10.1038/s41467- 018-04906-1
박 교수는 “이 지문 센서는 온도와 압력도 동시에 측정할 수 있어 위조 지문을 구분할 수 있다”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 적용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쓰임새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화면 반으로 접는 ‘폴더블폰’
대화면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스마트폰을 ‘접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반으로 접으면 화면도 반으로 줄어 든다. 접은 만큼 두께는 늘어나지만 휴대성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최근 스마트폰 제조자들이 앞 다퉈 ‘폴더블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폴더블폰은 기술적인 난관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디스플레이다. 화면을 접어도 모든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내구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접으면 접히는 부분에 힘이 가해질 수밖에 없고, 이를 디스플레이가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폴더블폰 디스플레이 후보로는 폴리이미드(PI) 소재가 각광받고 있다. 폴리이미드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처음 개발했는데, 내구성이 강하고 복원력이 뛰어나며 얇게 제작할 수 있어 폴더블폰 디스플레이 재료로 안성맞춤이다. 이 본부장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2016년 세계 최초로 투명 PI필름 개발에 성공한 뒤,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로 양산 가능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폴더블폰을 가장 먼저 선보일 업체로는 삼성전자나 화웨이 둘 중 한 곳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투명PI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스미토모사의 필름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가 세계 에서 처음으로 폴더블폰을 출시할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이 본부장은 “내년 1월 국제가전전시박람회(CES)에서 폴더블폰이 처음 공개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폴더블폰 출시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사용자 환경과 콘텐츠에서도 새로운 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