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장은 왜 그토록 길까?
둥근 공 모양의 작은 수정란이 배아로 발달하는 동안 그 안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세포들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서 수를 늘리고, 요리조리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특정한 모양과 기능을 가진 세포로 분화하죠. 더불어 배아는 다양한 모양의 장기를 만들어 내는데요. 소장처럼 아주 긴,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대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들이 듣는 기초 생물학의 실험 시간. 개구리 해부를 한다는 얘기에 학생들은 들뜬 모습입니다. 개구리의 장기가 상하지 않도록 화학물질을 처리해 실험실 냄새가 고약한데도 아랑곳 않고, 개구리의 배를 가른 뒤 책 속의 그림과 진지하게 비교해 봅니다.
그러다 몇몇 학생들이 뱃속에서 장기를 꺼내면서 실험실이 시끌시끌해지는데요. 특히 학생들이 놀라워하는 장기는 소장입니다. 얼마나 긴지 뱃속에서 꺼내고, 또 꺼내도 계속해서 나오거든요. 사람의 경우에는 소장의 길이가 키의 3~4배에 이릅니다.
포유류의 장은 어떻게 길어졌을까
소장이 신기한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닙니다. 생물학자들은 배아가 발달하면서 어떻게 소장처럼 긴 장기가 만들어 질 수 있는지 궁금해 했죠. 어릴 적 찰흙을 가지고 놀 때 바닥에 놓고 앞뒤로 굴리면 가래떡마냥 긴 찰흙이 만들어졌는데요. 배아 안에서 누군가 소장 세포들을 한 데 모아 반죽하는 것도 아닐 테고요.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장이 어떻게 길어졌는가 하는 질문에 과학자들은 개구리 연구를 토대로 가설을 세웠습니다. 개구리의 장이 길어진 이유는 세포들의 특이한 움직임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doi:10.1002/dvdy.22157
발달하는 개구리의 배아 안에서 훗날 소장이 될 부분을 보면, 세포들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겹의 세포가 동그랗게 원통 모양으로 말려 있고, 그 바깥을 또 다른 세포들이 한 겹 더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배아가 발달하면서 소장의 안쪽 층에 있는 세포들은 바깥쪽 층으로 이동합니다(오른쪽 그림). 즉, 안쪽 세포들이 바깥쪽에 위치한 세포들 사이사이로 들어가는 겁니다. 좁디좁은 세포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다 보니 장은 자연스럽게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포유류의 소장 역시 이렇게 두 겹의 세포가 한 겹이 되는 과정을 통해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데보라 구무시오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팀이 7월 16일 이런 가설을 뒤집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doi:10.1016/j.devcel.2018.06.011
연구팀은 쥐의 배아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발달 중인 쥐 배아의 소장 두께는 개구리의 소장처럼 얇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꺼워 졌습니다. 두 겹의 세포층이 한 겹이 되는 것이라면 두께가 두꺼워지기 어렵죠. 그렇다면 쥐의 소장은 어떻게 길이와 두께가 동시에 늘어난 걸까요.
정답은 세포 분열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세포 분열로 생겨난 새로운 세포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새로운 세포들은 소장의 안쪽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이는 세포 입장에서는 위험천만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장의 바깥쪽과 멀수록, 즉 안쪽에 위치할수록 세포가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새로 태어난 세포들은 마치 손을 뻗는 것처럼 세포 한쪽을 길게 늘여 소장의 바깥쪽과 연결을 유지합니다.
손가락처럼 삐죽 융모가 솟아나는 과정
세포들은 손을 어디로 뻗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까요. 바로 옆에 있는 세포쪽으로 뻗을 수도 있고, 소장 바깥쪽이 아닌 안쪽을 향해 뻗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생물학적인 현상에서 세포들의 움직임이나 행동이 무작위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주위의 특정한 장소에서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장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소장의 바깥쪽에 위치한 세포들이 특정 단백질(Wnt5a)을 분비하고, 소장 안쪽에 위치한 세포는 이를 감지해 손을 어디로 뻗어야 할지 알게 되는 겁니다.
돌연변이로 인해 Wnt5a를 제대로 분비하지 못하는 배아의 경우, 소장의 길이가 정상보다 현저히 짧다는 사실은 2007년에 논문으로 알려졌습니다.doi:10.1016/j.ydbio.2008.11.020 이번 구무시오 교수팀의 연구는 Wnt5a가 어떻게 소장의 길이에 관여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힌 셈입니다.
소장이 발달생물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소장 안쪽에 있는, 손가락처럼 생긴 ‘융모(絨毛)’입니다. 융모는 소장 내부의 면적을 넓혀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게 해주는데요,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최근까지도 미스터리였습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 소속 태빈 마하데반 교수팀은 수정 후 7일된 닭의 배아에서 소장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배아 발달 초기에는 소장 안쪽에 융모가 존재하지 않다가, 소장 안쪽에 위치한 세포들이 자라면서 세포층이 톱니바퀴처럼 안쪽으로 불쑥불쑥 솟아나고, 그로부터 약 5일 뒤 솟아난 세포들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대열을 갖추면서 융모로 발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위 사진).
doi:10.1126/science.1238842
소장은 대략 6m나 되는 길이만으로도 놀랍지만, 소장이 발달하는 그 ‘속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는 점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해줍니다.
2. 췌장을 보면 수명을 알 수 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약 80세입니다. 쥐의 경우에는 2~3년, 초파리의 수명은 고작 40~50일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의 동물은 수명도 제각각입니다. 우리는 쥐와 무엇이 다르기에 그들보다 30배나 길게 사는 걸까요. 힌트는 성장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출생 후에도 몸속 장기는 그 크기를 계속 키워나갑니다. 장기가 성장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포의 수를 늘리는 것, 다른 하나는 세포 하나하나의 크기를 늘리는 것입니다.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전략을 취하는지는 장기마다 다릅니다. 가령 혈액 세포는 그 수를 늘리는 반면, 심장과 뼈에 있는 근육세포는 크기를 증가시킵니다.
쥐 배아에서 췌장이 발달하는 방법
섭취한 영양분이 제대로 소화되게끔 효소들을 만들어 분비하는 췌장(膵臟, 또는 이자)의 경우, 출생 후 세포의 수를 늘려 성장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인간이든 쥐든 종이 달라도 같은 장기는 유사한 방법으로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두 종 모두 세포 수가 췌장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 사람과 쥐가 췌장을 발달시키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doi:10.1016/j.devcel.2018.05.024 게다가 더 신기한 것은 이러한 췌장 발달 방법이 수명과도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의대 하사다 병원 소속 유발 도르 교수팀은 갓 태어난 쥐와 태어난 지 8개월 15일이 지난 쥐의 췌장을 비교했습니다. 갓 태어난 쥐의 췌장은 무게가 8.5mg, 태어난 지 8개월이 지난 쥐의 췌장 무게는 400mg으로, 무게가 약 47배 늘었습니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내부 세포들을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8개월 이상 자라면서 췌장 세포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두 종류의 세포가 그 크기를 각각 19배, 4.6배로 키웠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인간과 분명히 다른 점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와 75세 노인의 췌장을 비교해 보면 세포의 크기는 그대로이고 대신 세포 수만 늘어있으니까요(오른쪽 위 사진).
그렇다면 왜 쥐는 인간과 다르게 췌장 세포의 크기를 키워서 췌장을 성장시키는 전략을 취했을까요. 도르 교수팀은 쥐의 경우 췌장 세포의 크기가 커지는 동시에 세포 안에 있는 핵도 커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출생 후 3개월 만에 핵 안에 있는 유전물질이 두 배로 불어난 세포가 전체의 70%나 차지했습니다.
쥐와 인간 췌장 세포의 다른 점은 DNA의 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세포 안 ‘핵소체’라고 불리는 기관 역시 쥐의 췌장 세포에서는 그 수가 더 많고 크기도 컸습니다. 핵소체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세포가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제공해 주는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리하면 쥐의 경우 DNA 양이 늘어나고, 그에 맞춰 핵의 크기도 늘어나고, 더불어 단백질까지 활발하게 만들어 내다보니 췌장 세포의 크기가 커졌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쥐 배아에서 췌장이 발달하는 방법
섭취한 영양분이 제대로 소화되게끔 효소들을 만들어 분비하는 췌장(膵臟, 또는 이자)의 경우, 출생 후 세포의 수를 늘려 성장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인간이든 쥐든 종이 달라도 같은 장기는 유사한 방법으로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두 종 모두 세포 수가 췌장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 사람과 쥐가 췌장을 발달시키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doi:10.1016/j.devcel.2018.05.024 게다가 더 신기한 것은 이러한 췌장 발달 방법이 수명과도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의대 하사다 병원 소속 유발 도르 교수팀은 갓 태어난 쥐와 태어난 지 8개월 15일이 지난 쥐의 췌장을 비교했습니다. 갓 태어난 쥐의 췌장은 무게가 8.5mg, 태어난 지 8개월이 지난 쥐의 췌장 무게는 400mg으로, 무게가 약 47배 늘었습니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내부 세포들을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8개월 이상 자라면서 췌장 세포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두 종류의 세포가 그 크기를 각각 19배, 4.6배로 키웠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인간과 분명히 다른 점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와 75세 노인의 췌장을 비교해 보면 세포의 크기는 그대로이고 대신 세포 수만 늘어있으니까요(오른쪽 위 사진).
그렇다면 왜 쥐는 인간과 다르게 췌장 세포의 크기를 키워서 췌장을 성장시키는 전략을 취했을까요. 도르 교수팀은 쥐의 경우 췌장 세포의 크기가 커지는 동시에 세포 안에 있는 핵도 커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출생 후 3개월 만에 핵 안에 있는 유전물질이 두 배로 불어난 세포가 전체의 70%나 차지했습니다.
쥐와 인간 췌장 세포의 다른 점은 DNA의 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세포 안 ‘핵소체’라고 불리는 기관 역시 쥐의 췌장 세포에서는 그 수가 더 많고 크기도 컸습니다. 핵소체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세포가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제공해 주는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리하면 쥐의 경우 DNA 양이 늘어나고, 그에 맞춰 핵의 크기도 늘어나고, 더불어 단백질까지 활발하게 만들어 내다보니 췌장 세포의 크기가 커졌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