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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운전자여, 잠에서 깨어나라

AI가 눈, 입, 심장박동 모니터링

3초. 시속 100km로 달리던 차에서 운전자가 깜빡 조는 3초 동안 차는 80m가량 질주한다. 2016년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시속 105km로 달리던 관광버스는 앞에 달리고 있던 승용차를 그대로 받아버렸다. 관광버스는 승용차 위에 올라탄 모양새가 됐고, 충격의 여파로 앞에 가던 차량 4대가 연달아 부딪혔다. 처음 부딪힌 승용차에 타고 있던 승객 4명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부상자만 37명이 발생했다. 사고 발생 3일 뒤, 버스 운전기사는 졸음운전을 시인했다.


 

명절 고속도로 운전, 왜 더 졸린가 했더니

 

9월 말 추석 황금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귀성길과 귀경길의 가장 큰 적은 고속도로 정체다. 특히 막혔다 뚫리기를 반복하면서 운전 시간이 길어지면 피로가 쌓이고 집중력은 떨어진다. 자칫 졸음운전이나 전방 주시 태만으로 사고가 날 수 있다.  


2014~2015년 한국도로공사 통계에 따르면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61.8%(294명)가 졸음이나 전방 주시 태만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졸음운전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주로 도로를 벗어나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명절 귀성길이나 귀경길 고속도로에서는 졸음운전을 주의해야 한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에서 2012~2016년 설 연휴에 발생한 자동차 사고 39만5270건을 분석해 발표한 ‘설 연휴 장거리운전 특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설 당일에는 졸음운전에 의한 교통사고가 평소(53건)보다 2배 많은 평균 105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고속도로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는 경계 대상이 적은 도로다. 일반도로처럼 사람이나 자전거가 차선에 갑자기 진입할 가능성이 없고, 신호도 없다. 고속도로에서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기만 하면 돼 운전이 단조롭고 지루하다. 2014년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가장 많이 경험한 도로가 고속도로(44.5%)였고, 그 다음으로 지방도로(29.8%), 시내도로(25.7%) 순으로 나타났다.


긴 운전 시간도 졸음운전을 유발하기 좋다. 운전 시간이 6시간을 넘어서면 졸음운전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한다. 현대해상 보고서에 따르면 명절 연휴 기간 운전 시간이 5시간 이내일 경우 졸음운전을 경험하는 운전자는 20% 수준에 그쳤으나, 6시간이 되면 23%, 7시간이 넘으면 30%, 8시간 이상인 경우에는 운전자의 41%가 졸음운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주석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장시간 운전으로 육체적 피로가 쌓여 졸음이 올 수도 있지만,  차량 내부 이산화탄소의 양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정희정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기계공학과 교수는 2013년 승용차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수학 모델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환기 장치를 충분히 가동한 상태에서 시속 21km로 달리는 승용차를 대상으로 계산한 결과, 승객 2명이 탄 차량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35분 만에 4000ppm(공기 1kg당 4000mg) 을 넘어섰다. 승객 3명이 탄 차량은 4000ppm을 넘는 데 불과 16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doi:10.4271/2013-01-1497 


상쾌하다고 느끼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300ppm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을 초과하면 사람은 공기가 탁해졌다고 인지하고, 2000ppm을 넘어가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멀미와 두통이 나며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 5000ppm 이상이 되면 산소 부족으로 뇌손상과 혼수상태까지 야기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 된다. 


오 선임연구원은 “차량 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단시간에 빠르게 증가한다”며 “승하차 시 문을 여닫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자연스럽게 된다”고 말했다.

 

 

 

차선 이탈 경보 ADAS

 

최근 자동차업계는 졸음운전을 막기 위한 기술을 여럿 개발해 실제 차량에 적용했다. 이런 기술을 통틀어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이라고 부른다. 운전자가 졸면서 차량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차량이 스스로 제어하는 기술이다. 


ADAS는 차량에 장착된 카메라와 레이더, 라이다, 초음파 등을 이용해 주변의 위험 상황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차량 스스로 방향이나 속도를 제어한다. 가령 ADAS 중 하나인 ‘차선 이탈 경보 시스템’은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차선을 변경할 때 이를 감지한다. 자동차 전방 유리 상단에 위치한 카메라가 차량 양쪽의 차선을 인식한 뒤, 차량이 차선을 이탈할 경우 핸들 진동이나 경고음 등으로 운전자에게 상황을 알린다.


앞 차량의 상대속도와 거리를 계산해 충돌까지 남은 시간을 예측하고 필요하면 스스로 멈추는 ‘전방 추돌 경보’, 도로 위에 움직이는 보행자나 신호등을 인식해 속도를 조절하는 ‘보행자 인식’과 ‘교통 표지판 인식’ 등도 ADAS의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한국교통안전공단이 한 고속버스 업체와 협력해 ADAS 중 하나인 전방 추돌 경보 장치를 버스에 달고 1년간 운행한 결과 교통사고가 6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이 운전자 상태 분석

 

하지만 ADAS만으로 졸음운전을 예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ADAS 시스템이 고가인 탓에 현재는 고급 차량에만 탑재되고 있고, 실제 운전자를 대신할 만큼 기술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는 제약도 있다. 제조사별로 성능 차이도 크다. 위험 상황이 아닌데도 경보음이 울려 운전에 방해가 되는 것도 문제다. 


이를 보완한 것이 ‘운전자 상태 감지 시스템(DSM·Driver State Monitoring)’이다. DSM은 운전자가 졸린 상태인지 아닌지 모니터링한다. 가령 DSM은 운전자의 눈동자 움직임이나 입 모양 변화, 또는 심전도 등의 인체 상태를 파악해 졸음 여부를 판단한다. 백문기 충남대 컴퓨터공학과 데이터베이스시스템연구실 박사과정 연구원은 “제대로 된 DSM 연구는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2010년에야 시작됐다”고 말했다.


DSM이 인공지능 기술과 ‘세트’처럼 묶이는 이유는 운전자마다 졸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졸린 상태를 눈 깜빡임 횟수, 눈의 열림 정도, 심장박동수 등 하나의 기준으로 정해 놓으면 데이터가 아무리 정확해도 운전자가 바뀌면 잘못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그렇다고 운전자마다 모든 데이터를 입력해놓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백 연구원은 스스로 학습해 졸음 여부를 판단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우선 인공지능에 학습시킬 데이터를 만들었다. 실험 참가자들이 가상 운전세트에서 1시간 운전하는 동안 정상 상태와 졸음 상태를 영상으로 촬영했다. 눈과 입 모양을 추출하기 위해서다. 심장박동수의 변화도 측정했다. 


백 연구원은 이렇게 만들어진 눈과 입, 심장박동수 등 세 종류의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인식할 수 있는 언어로 변환한 뒤 하나로 합쳐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켰다. 이 과정을 ‘멀티모달 학습(Multimodal Learning)’이라고 부른다. 


현재 백 연구원은 멀티모달 학습을 마친 인공지능이 운전자 상태를 6가지로 분류하도록 개발하고 있다. 정상 상태, 졸음이 밀려오는 상태, 얕은 잠, 깊은 잠, 그리고 심장정지와 심장마비 등 응급상황도 넣었다. 졸음이 밀려오는 상태에서는 눈의 깜빡임 횟수가 줄어들고 눈이 닫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입 꼬리가 처지고, 심장 박동이 느려진다.


백 연구원은 “단순히 눈의 깜빡임이나 크기 변화뿐만 아니라 입 모양과 심장박동수 데이터를 더하면 운전자의 다양한 상태를 구분할 수 있다”며 “심전도나 뇌파까지 추가하면 더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모비스는 운전 불가 판단 시 차량이 자율주행모드로 안전지대로 이동하는 ‘DDREM’ 기술을 개발해 2018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전시회인 ‘CES2018’에서 공개했다. 이 기술은 운전자가 앞을 바라보지 않거나 눈을 자주 감을 경우 차량을 휴게소 등 안전한 장소로 인도하는 레벨 4 이상의 완전 자율주행단계 시스템이다. 


백 연구원은 “ADAS와 DSM만으론 졸음운전에 의한 사고를 완전히 막지 못한다”며 “완전한 자율주행차 기술이 등장할 때 비로소 졸음운전 방지 기술도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자율주행 기술이 완벽하지 않은 현재로서는 ‘졸리면 쉬어가라’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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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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