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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치킨의 미래는 과학에 있습니다 ‘치믈리에’ 자격증 도전기

‘지글지글 차알찰 차르르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치킨 튀기는 소리에 침이 고였다. 하지만 맛있는 치킨을 상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도대체 저 소리가 치킨 몇 조각을 튀기는 소리냐 하는 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7월 22일 기자는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제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참가했다. ‘치믈리에’란 ‘치킨’에 와인 감별사를 뜻하는 ‘소믈리에’를 더한 말로, 치킨에 대한 지식과 감별 능력을 갖춘 ‘치킨 감별 전문가’를 말한다(국립국어원이 표준어로 등재한 용어는 아니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은 크게 예선과 본선 두 단계로 이뤄진다. 예선은 온라인으로 치러진다. 필기시험 10문제를 모두 맞혀야 본선에 진출할 자격이 생긴다. 올해는 57만여 명이 온라인 예선에 응시해 이 중 2만7475명이 만점을 받고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다. 이날 본선에는 이 중 추첨을 통해 선정된 500명이 참가했다.

 

 

캡사이신과 고추기름의 차이

 

본선의 첫 관문은 필기영역. 튀기는 소리만 듣고 치킨 조각 수를 유추해야 하는 등 듣기평가 3개 문항과 치킨 부위별 지식과 역사를 묻는 지필평가 27개 문항으로 이뤄졌다. 총 30개 문항 가운데 절반 이상 맞혀야 한다. 자, 이제부터 모든 문제를 가능한 과학적으로 추론해보자.


사진 속 치킨을 보고 보기에서 맞는 내용을 찾는 11번 문제부터 도전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 문제를 그대로 공개한다.

 

 

캡사이신과 천연 고추기름이라. 캡사이신은 고추에서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다.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이 있어 고춧가루를 뜨거운 기름에 볶으면 매콤한 고추기름이 된다. 


미각 분야 전문가인 류미라 한국식품연구원 천연물대사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캡사이신은 43도 이상의 뜨거움과 고통을 느끼는 감각수용체와 결합해 신경을 활성화화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맛보다는 통증에 가깝다”며 “같은 맵기의 매운맛이어도 음식이 뜨거울 때 더 맵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멕시카나 관계자는 “사진은 ‘땡초치킨’”이라며 “캡사이신을 인위적으로 추가하지 않고 고추에서 추출한 고추기름을 넣어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한 매운맛을 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캡사이신은 화학적으로 무극성이며 기름에 잘 녹는 친유성 물질이다. 따라서 매운 음식을 먹고 입 속이 고통스러울 때 물을 마시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친유성 물질과 잘 결합해 캡사이신을 빨리 씻어내고 온도도 낮출 수 있는 차가운 우유나 아이스크림이 진정에 효과적이다.

 

 

 

후각수용체 무용지물 만든 식은 치킨

 

잠깐의 휴식 시간이 지나고 바로 실기영역이 시작됐다. 실기영역은 총 10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8개 문항은 치킨을 맛본 뒤 보기에서 정확한 제품명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치킨 감별사로 불리기 위한 필수 테스트다. 문제는 나머지 2개 문항이었다. 치킨을 맛본 뒤 포함되지 않은 재료를 찾으라는 난이도 최상의 문항이 출제됐다. 


일단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치킨 제품명 맞히기에 도전했다. 8개 제품은 프라이드 3종, 양념 2종, 텐더(닭가슴살을 튀긴 치킨의 일종)와 간장, 매운맛 각각 1종으로 시중에 판매되는 치킨 제품을 골고루 포함시켰다. 


어떤 치킨을 먼저 맛보는 게 유리할까. 불맛이 나는 매운 음식을 먹고 난 뒤 다른 음식을 먹으면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경험을 떠올렸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류 책임연구원은 “너무 매운 음식이나, 한 가지 맛만 강하게 나는 음식을 먹으면 그 맛이 입에 남아 있어 다음에 먹는 음식의 맛을 정확하게 느끼기 힘들다”며 “가령 단맛이 강한 음식을 먹으면 단맛 분자가 단맛 수용체에 다량으로 결합하면서 단맛에 대한 감각이 둔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시식 순서는 ‘프라이드-텐더-간장-양념-매운맛’이 가장 적합하다. 프라이드 치킨부터 도전했다. 평소 수 m 밖에서도 냄새만 맡고 치킨 브랜드와 제품을 맞히는 ‘개인기’를 보유한 기자 입장에서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치킨 상자를 여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치킨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퍼지기는커녕 아무리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려도 냄새가 잘 나지 않았다. 응시자들이 향으로 제품명을 유추하지 못하도록 식은 치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맛의 완성은 미각과 후각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맛에 있어서 냄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류 책임연구원은 “후각과 미각은 감각 경로가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미친다”며 “후각 정보가 없으면 정확한 맛을 감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후각은 음식 등 물체에서 공기 중으로 퍼진 분자가 콧속으로 들어와 후각수용체에 붙어 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느낄 수 있다. 공기 중에 더 많은 분자가 퍼지려면 온도가 높아야 한다. 그래서 뜨거운 치킨에 비해 차갑게 식은 치킨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미각은 인체 보호 위한 생존 기능

 

냄새로 구분하기를 포기했다면 제품 자체의 특징을 확인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먼저 프라이드 3종의 속살을 각각 맛 봤다. 어떤 것은 싱겁고 텁텁한 살코기가 씹혔고, 어떤 것은 비교적 부드럽고 쫀쫀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것은 짭조름하게 간이 잘 배어 있었다.


업체마다 치킨 속살의 맛이 다른 이유는 염지(鹽漬)에 있다. 염지는 음식을 소금에 절이는 과정을 뜻하는 것으로,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거나 간이 배도록 닭고기를 절이는 전처리 과정이다. 


최윤상 한국식품연구원 가공공정연구단 선임연구원은 “닭고기를 염지하면 내부의 삼투압이 높아져 고기가 더 많은 수분을 머금게 된다”면서 “결국 닭고기를 튀기면 육즙이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않아 촉촉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슴살이나 넓적다리처럼 살이 두툼한 부위는 속까지 골고루 간이 배도록 주사기를 이용해 염지하는 경우도 있다. 최 선임연구원은 “염지는 고기에 인위적으로 염분을 추가하는 과정인 만큼 나트륨 과다섭취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살코기의 색을 관찰하고 살코기를 직접 손으로 찢는 방식으로 치킨 감별을 시도했다. 치킨 마니아라면 잘 알겠지만, 가슴살은 하얗고 다리나 날개 부위 살은 붉다. 부위에 따라 근육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슴살처럼 닭이 움직일 때 거의 쓰지 않는 부위는 백색 근섬유가 많다. 반면 다리나 날개처럼 활동량이 많은 부위는 적색 근섬유가 많다. 최 선임연구원은 “적색 근섬유는 산소 호흡을 통한 에너지 생산에, 백색 근섬유는 무산소 호흡을 통해 순간적인 힘을 내는 데 특화돼 있다”며 “적색 근섬유가 많은 부위가 육즙이 많고 식감도 더 쫄깃한 편”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프라이드 3개 문항에서 1개를 맞히는 데 그쳤다. 


이제 양념치킨을 맛볼 차례다. 양념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자 10여 년 전의 추억이 뇌를 자극했다. 그 때 그 치킨일까? 그렇다면 맛도 뇌에 저장될 수 있을까?


국제학술지 ‘신경과학 저널’ 2014년 8월 13일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맛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은 뇌의 해마와 섬피질에 함께 저장된다. doi:10.1523/JNEUROSCI.0956-14.2014 연구를 주도한 코비 로젠블럼 이스라엘 하이파대 신경생물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해마에 저장된 기억과 섬피질에 저장된 기억은 서로 연관돼있다”며 “특히 맛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은 일반 기억과 달리 뇌에서 특별하게 취급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류 책임연구원은 “미각은 유해한 물질을 걸러내 인체를 보호하려는 생존 기능”이라며 “쓴맛 등 맛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은 인간의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일반 기억과는 별도로 저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각에 대한 기억을 생리학적인 요인으로만 설명하긴 어렵다. 류 책임연구원은 “어린 시절 맛본 고향 음식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경우처럼 심리적, 정서적 요소도 맛에 대한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양파 익히면 프룩탄 분해돼 단맛 증가

 

드디어 실기영역에서 ‘끝판왕’급 난이도인 마지막 두 문제에 도전할 순서다. 치킨 두 종류 가운데 한 종류는 심지어 매운맛인 코리엔탈 깻잎두마리칩킨의 ‘핫! 씨푸드치킨’이다. 미각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감을 총동원했다. 


일단 눈으로 고추씨와 고춧가루가 있는지 확인했다. 손으로 만져보니 끈적이는 느낌이 있어 물엿도 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마지막으로 맛을 봤다. 단맛이 강하지 않은 게 특징이었다. 보기에 남아 있는 재료는 양파, 새우, 홍합.   


양파의 당도는 8.1브릭스로 채소 중에서는 매우 높은 편이다. 과당으로 이뤄진 다당류인 프룩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신원선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양파를 익히면 프룩탄이 열에 의해 과당으로 분해되면서 강한 단맛을 낸다”며 “매운맛을 내는 알릴설파이드도 열에 의해 분해되기때문에 매운맛이 사라져 단맛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답은 양파다. 

 

 

 

‘치믈리에 자격시험’ 합격

 

시험을 치르고 열흘이 지났을까. 8월 2일,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기자의 최종 성적은 필기영역 30개 중 20개 문항, 실기영역 10개 중 5개 문항을 맞힌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합격자는 기자를 포함해 47명. 본선 진출자 500명 가운데 9.4%에 해당한다. 


전소영 우아한형제들 홍보실 주임은 “치믈리에 자격시험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치믈리에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민간자격증으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회 대회에서 합격한 119명을 포함해 현재 국내에는 치믈리에 자격증 소지자가 166명이 됐다. 


전문가들은 미각이 훈련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류 책임연구원은 “소믈리에처럼 맛을 감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축적되는 것”이라며 “맛에 관심을 갖고 이에 관한 기억을 쌓아두는 것이 맛 구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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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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