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비결이요? 저에겐 행운이었어요. 적절한 시점에 좋은 연구 주제를 만난 덕분이었죠. 원래 입자물리학을 계속 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아서 뭔가 다른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교에 있는 동료들에게 뭔가 할 게 없냐고 물어보고 다녔죠. 그러다 데이비드 사울레스 교수님 이야기를 듣고 응집물질물리학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지난 12월 20일, 201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코스털리츠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사진)의 기자간담회가 서울 고등과학원에서 열렸다. 국내 연구 기관에 재직중인 과학자가 노벨상을 탄 것은 코스털리츠 교수가 첫 사례로, 그는 2004년부터 매년 두 달가량 한국에 머물며 연구하고 있다.
좌절 속에서 피어난 꽃
코스털리츠 교수의 노벨상 업적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딱 어울리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였다.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영국 버밍엄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입자물리학 연구를 했지만, 학계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헛수고를 하는 일이 많았다. 여러장에 달하는 복잡한 계산을 해내고 학술지에 투고하려는 순간, 정확히 같은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을 받아 보는 경험을 두세 번이나 했다. 낙심한 그에게 나중에 공동수상자가 된 데이비드 사울레스 교수가 자신의 연구 주제를 소개한 것이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두 사람의 연구는 2차원 물질이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상전이를 위상수학을 이용해 설명한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온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다. “논문 심사를 맡은 사람이 논문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른 학자들이 보고 판단하게 하려는 의도로 출판을 허락한 거죠. 하지만 그 후에도 몇 년 동안은 주목받지 못했어요.” 심사자가 이해할수 없다며 퇴짜를 놨다면, 두 사람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응집물질물리학의 역사가 몇 걸음 퇴보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논문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77년에 2차원 초전도체가 발견되면서부터다. 두 사람이 제시한 이론에 따른 예측과 실험 결과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코스털리츠 교수는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썼기 때문에 한동안 인정받지 못했지만, 우리 둘 모두 중요한 연구 결과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울레스 교수가 자기 인생의 멘토라고 말했다. 입자물리학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새로운 연구를 제시해 줬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고령인 사울레스 교수는 현재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한 뒤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온 코스털리츠 교수는 1월까지 한국에 머물며 여느 때처럼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좌절 속에서 피어난 꽃
코스털리츠 교수의 노벨상 업적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딱 어울리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였다.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영국 버밍엄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입자물리학 연구를 했지만, 학계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헛수고를 하는 일이 많았다. 여러장에 달하는 복잡한 계산을 해내고 학술지에 투고하려는 순간, 정확히 같은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을 받아 보는 경험을 두세 번이나 했다. 낙심한 그에게 나중에 공동수상자가 된 데이비드 사울레스 교수가 자신의 연구 주제를 소개한 것이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두 사람의 연구는 2차원 물질이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상전이를 위상수학을 이용해 설명한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온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다. “논문 심사를 맡은 사람이 논문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른 학자들이 보고 판단하게 하려는 의도로 출판을 허락한 거죠. 하지만 그 후에도 몇 년 동안은 주목받지 못했어요.” 심사자가 이해할수 없다며 퇴짜를 놨다면, 두 사람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응집물질물리학의 역사가 몇 걸음 퇴보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논문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77년에 2차원 초전도체가 발견되면서부터다. 두 사람이 제시한 이론에 따른 예측과 실험 결과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코스털리츠 교수는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썼기 때문에 한동안 인정받지 못했지만, 우리 둘 모두 중요한 연구 결과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울레스 교수가 자기 인생의 멘토라고 말했다. 입자물리학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새로운 연구를 제시해 줬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고령인 사울레스 교수는 현재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한 뒤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온 코스털리츠 교수는 1월까지 한국에 머물며 여느 때처럼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