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은 원자로 이뤄졌다. 이들 원자가 뭉쳐 만들어진 화합물은 유기물(탄소에 수소, 산소, 질소가 결합해 만들어진 화합물)과 무기물(유기물이 아닌 화합물)로 나뉜다. 하지만 이들의 성격은 마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너무나 다르다. 박진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갖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한데 어우러진 ‘하이브리드 물질’을 설계하고 있다.
세상에 없던 화합물 만드는 ‘요리’
“무기물은 열과 마모에 강하지만 합성이 어렵고, 유기물은 기계적 강도는 낮지만 가공이 쉽습니다. 유무기 하이브리드 소재를 합성하면 각각의 장점을 극대화한 신물질을 만들 수 있죠.”
유기물과 무기물은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 잘 섞이지 않는다.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기능을 가진 하이브리드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들 재료를 잘 버무리는 일종의 ‘요리’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유기고분자에 마이크로미터(μm·1μm는 100만 분의 1m) 수준의 무기물을 첨가하거나, 무기물의 표면을 유기고분자로 코팅하는 ‘간단한 요리’로 신소재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물질이 완전히 하나의 물질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다. 박 교수팀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은 ‘금속유기구조체(MOFs)’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박 교수는 “박사과정에서 연구를 시작하던 2008년 즈음 금속유기구조체 결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돼 지금까지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며 “금속유기구조체가 유기물과 무기물의 종류뿐 아니라 이들의 비율, 용매의 종류, 합성 온도 등 설계 조건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금속유기구조체는 금속이온과 유기리간드가 배위 결합을 통해 규칙적으로 결합돼 있다. 나노미터 크기의 무수히 많은 기공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다공성 소재 중 표면적이 가장 넓다. 현재 7만 개 가량의 금속유기구조체가 밝혀졌으며, 이중에는 1g의 표면적이 7000m²로 축구장 면적에 맞먹는 금속유기구조체도 발견됐다.
유해물질 센싱하고, 포집하고, 에너지원으로 전환
박 교수가 이끄는 유무기하이브리드연구실은 금속유기구조체의 이런 특성을 활용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표면적이 넓다는 특징에 착안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더 잘 포착하는 센서가 그 예다.
실제로 연구팀은 파우더 형태의 금속유기구조체 센서를 개발하고, 휘발성유기화합물이 닿는 즉시 색이 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 중에서도 클로로포름이 센서에 닿으면 붉은색이, 아세톤이 있으면 초록색을 띤다. 만약 이 센서를 산업 현장의 벽면 등에 발라둔다면, 위험물질의 누출과 종류를 즉시 알릴 수 있는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
금속유기구조체의 무수히 많은 기공 속에 유해물질을 포착해 가둬두는 흡착제도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은 방사성요오드를 활용한 실험에서 금속유기구조체로 제작한 흡착제가 기존에 상용화된 흡착제에 비해 동일 중량에서 방사성 물질을 3배 더 흡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시에 흡착되는 방사성 물질의 종류도 더 많았다.
빛에 반응하는 유기리간드와 금속클러스터를 이용해 금속유기구조체를 제작할 경우 이산화탄소 등 환경오염물질을 메탄올이나 메탄 같은 고부가가치 연료로 탈바꿈시키는 광촉매로도 사용할 수 있다.
기존 광촉매는 표면에서만 반응이 일어나지만, 금속유기구조체는 기공 내부에서도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촉매의 효율을 대폭 높일 수 있다. 더 빠른 속도로 환경오염물질을 연료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의 산화티타늄(TiO₂) 기반 촉매가 자외선 영역에서만 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달리 자외선과 가시광선 모두에서 반응을 일으키는 장점도 있다.
박 교수는 “표면적이 넓은 금속유기구조체의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며 “외부 환경에 따라 화학적 구조와 성질이 변하는 ‘스마트 금속유기구조체’를 개발해 미래사회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등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술을 계속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