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은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더 큰 이유를 수컷끼리의 경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짝짓기 경쟁’ 가설은 20세기 후반에 성선택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한 예로 스웨덴 스톡홀름대 패트릭 린덴포스 교수팀이 2007년 포유류 1370종을 조사한 결과 포유류 전체로 보면 수컷이 암컷보다 약 18% 더 무거웠다. 수컷이 더 큰 경향은 조사한 종의 45%에서 나타났다.
불성실한 수컷은 몸집만 키우고
도대체 왜 수컷이 더 큰 걸까. 짝짓기 경쟁 가설에 따르면 성별에 따른 선택압력(선택압)이 강할수록 암수의 크기 차이가 더 심해진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짝짓기 체계를 이용해 조사했다. 일부일처제나 일처다부제에 비해 일부다처제는 수컷의 선택압이 높다. 수컷이 심한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암컷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조사결과 역시 일부다처제 동물일수록 수컷이 더 컸다. 다윈의 직관력이 포유류 진화에 걸친 통찰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참고로 암컷과 수컷의 크기 차이는 ‘성적크기이형(sexual size dimorphism, SSD)’이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인 이차성징이다.
짝짓기 경쟁의 출발은 성별 사이의 불균형한 자손투자다. 암컷은 자손에게 투자를 많이 하는 반면, 수컷은 암컷보다 적게 투자한다. 정자를 제공하는 것을 제외하면 수컷의 투자가 거의 없는 종도 있다. 포유류는 임신기간 동안 태아의 성장이 암컷의 몸 안에서 일어난다.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젖을 생산해 아기를 먹여야 한다. 특히 영장류는 유년기간이 아주 길다. 이 기간 동안 새끼는 엄마에게 많이 의지한다. 물론 수컷도 종종 양육행동에 참여하고 때로는 많은 투자를 한다. 그러나 암컷처럼 의무는 아니다.
이런 경향은 성선택의 지형을 한쪽으로 몰고 간다. 암컷은 번식의 기회가 제한되는 반면 수컷은 하루에도 여러 번 짝짓기가 가능하고, 이것은 자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즉 성선택 시장에서 수컷은 공급과잉이고 암컷은 수요부족이다. 이런 불균형 때문에 수컷은 한정된 암컷을 두고 서로 경쟁하게 된다. 가장 직접적이고 흔한 방식은 신체나 신호를 이용한 경쟁이다. 이 경우 큰 수컷이 월등히 유리하다. 암컷은 점점 더 큰 수컷을 짝짓기 상대로 선호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컷이 암컷보다 몸집이 커지게 된다.
암컷은 왜 따라서 커졌을까
이번엔 암컷을 보자. 짝짓기 경쟁 가설에 따르면 선택압은 수컷에게만 작용하기 때문에 수컷이 커져도 암컷의 크기는 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수컷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작은 언덕만한 수코끼리와 고양이만한 암코끼리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관계를 일부 학자들은 ‘유전 상관(genetic correlation)’으로 설명했다. 같은 종의 암컷과 수컷은 대부분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수컷을 크게 하는 유전자는 동시에 암컷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그럴듯하긴 하지만 완벽하게 증명해주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렇다면 포유류의 세계에서 왜 암컷이 수컷을 따라 커진 것일까. 혹시 자손을 많이 낳기 위해서는 아닐까. 이것을 ‘생식력 선택 가설’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곤충은 암컷의 몸집이 커야 알을 많이 낳을 수 있고, 결국 생존에 유리하다. 곤충의 세계에서는 새끼가 부모의 양육없이 홀로 알에서 깨어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설명이 맞다면 암컷이 수컷과 함께 커지게 된다.
문제는 포유류가 곤충과 다르다는 것이다. 포유류는 암컷이 클수록 생식력은 오히려 줄어든다. 예를 들면 몸무게 20~30g에 불과한 흰발생쥐의 임신기간은 평균 20일이고, 한번에 10~12마리를 출산한다. 분만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발정기가 시작된다. 이에 비해 몸무게 2.2~3.2t의 아프리카코끼리는 임신기간이 22개월이다. 한 번에 1마리의 새끼만 출산하며, 암컷은 평생 7마리 정도 출산할 수 있다. 포유류에서는 큰 종일수록 생식을 늦게 하며, 에너지도 많이 든다. 이 같은 관계는 ‘렌쉬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수컷이 암컷보다 클수록 해당 종 크기가 크고, 암컷이 더 클수록 작다는 법칙이다. 렌쉬의 법칙이 모든 동물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동물의 크기를 판단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암컷이 수컷을 따라 커진 이유를 ‘좋은 아들을 낳기 위해서’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수컷끼리 경쟁이 심한 종의 암컷은 짝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이 없으므로 거의 모든 암컷이 일정한 수의 자식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수컷은 경쟁에서 승리하면 자손이 많지만 경쟁에서 지면 아예 짝을 구할 수가 없다. 이 경우, 암컷 입장에서 보면 걱정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식, 그 중에서도 아들이다. 양질의 아들을 낳으면 대박이지만, 질 낮은 아들은 쪽박이다.
이제 암컷의 고민은 양질의 아들을 낳거나 키우는 방법이다. 그건 젖먹이 시기와 관련이 깊다. 어미가 오래 젖을 먹일수록 양질의 아들이 자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린덴포스 교수팀의 조사 결과 실제로 성선택의 강도가 심한 포유류 종일수록 젖을 떼는 시기도 늦어졌다. 포유류는 임신 기간보다 젖 분비기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암컷이 클수록(무거울수록) 자식을 먹일 젖을 더 많이 만든다. 그러므로 긴 젖먹이 기간은 암컷의 몸무게를 크게 하는 선택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긴 젖먹이 기간은 딸보다 아들의 발육에 중요하다. 그러므로 짝짓기 경쟁이 심한 종에서 암컷은 생식력을 희생시켜가며 자식, 특히 아들의 발육을 위해 몸무게를 늘렸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유전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포유류와 조류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큰 이유는 다윈이 주장한 짝짓기 경쟁 가설이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수컷과 암컷이 있는 동물인 진정후생동물(Eumetazoa)에서 포유류와 조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이며, 나머지는 암컷이 더 큰 경우가 지배적이다. 암컷이 더 큰 이유는 앞서 말한 생식력 선택 가설(암컷이 무거울수록 더 많은 알을 낳는다)이 지지를 받지만, 설명하기가 어려운 생물도 많다. 일반적으로 포유류는 수컷이 더 크지만 포유류를 세부 분류해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면 토끼목처럼 암컷이 수컷보다 더 클 수도 있다. 박쥐는 종에 따라 수컷이 더 큰 경우와 암컷이 더 큰 경우가 섞여서 나타난다. 또 수컷과 암컷의 크기 차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유전적 배경도 베일에 싸여있다. 최근에 크게 발달하고 있는 기능유전체학이 이 비밀을 풀어 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