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의 검주(黔州) 지역에 배를 타고 한 마리의 당나귀가 들어왔다. 난생 처음 당나귀를 본 호랑이는 두려움에 몸을 숨겼다. 며칠 동태를 살핀 뒤, 호랑이는 당나귀에게 다가갔다. 당나귀는 호랑이에게 화를 내며 뒷발질만 해댔다. 당나귀에게 별다른 기량이 없음을 깨달은 호랑이는 순식간에 덤벼들어 당나귀를 잡아먹었다. 이 우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검려지기(黔驢之技)’는 검주 지방 당나귀의 재주라는 뜻으로, 재주가 없고 서툰 경우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당나귀가 살던 검주는 현재 중국 구이저우(貴州)성이다. 수도인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약 2000km 떨어진 이 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변화를 이끈 건 서툰 당나귀의 뒷발질이 아닌 빅데이터다.
세계 최초 빅데이터 거래소 열어
필자는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 중국 연구자를 만났다. 명함에는 ‘글로벌 빅데이터 거래소(GBDEx·Global Big Data Exchange Center)’라고 적혀있었다. 소속이 신기해, 그 연구자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주식을 사고파는 시장을 ‘주식거래소(증권거래소)’라고 하듯, 빅데이터 거래소는 말 그대로 축적된 데이터를 사고파는 시장이다. 중국 정부가 구이저우성을 데이터 개방 시범지역으로 선정하면서, 성도인 구이양(貴陽)에 2014년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 거래소가 설립됐다.
구이저우성이 빅데이터의 요충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의 지원뿐만 아니라 설비 유지에 유리한 기후, 편리한 교통 인프라 등이 꼽힌다. 빅데이터 설비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 유지가 관건이다. 구이저우성은 연평균 14~16도의 낮은 기온을 유지하며, 수력발전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 환경도 갖춰 운영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GBDEx는 2015년 본격 사업 개시 이후 365일,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있다. 금융, 소비, 기업, 세관, 전자상거래 등 총 30개 부분의 데이터를 거래하며, 데이터의 종류에 따라 무료로 제공되는 것부터 수천만 원의 구입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현재 회원사 225개의 누적 거래 실적은 4000건, 2017년 10월까지 거래액은 1억2000만 위안(약 200억9280만 원)을 돌파했다. 거래 가능한 데이터 용량은 총 150PB(페타바이트·1PB는 약 100만GB)로, 올해 가동 예정인 국내 슈퍼컴퓨터 5호기 용량의 7배에 이른다.
국내에도 빅데이터 거래소가 있지만 이와는 다른 GBDEx의 특징으로는 ‘폐쇄적 거래’와 ‘맞춤 가공’이 거론된다. 누구나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도록 개방된 한국과 달리 GBDEx는 심사를 거쳐 가입 허가를 받은 중국 소재의 법인기업만 거래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자를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 규모는 한국에 비해 30배 이상 크다. 그 이유는 거래소가 중개는 물론 거래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원하는 형태의 데이터를 3~7일 만에 맞춤형으로 주문제작 해주기도 한다.
현대차도 구이저우성에 빅데이터 센터 설립
구이저우성이 국내에 이름을 알린 것은 애플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iCloud) 데이터 센터’가 설립되면서부터다. ‘구이저우 아이클라우드’는 애플이 세계 최초로 타국에 설치한 데이터 센터다. 애플 외에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 세계 굴지의 IT기업들이 구이저우성 데이터 센터에 투자했다. 중국 정부의 매력적인 투자 유인책 덕분이다.
중국 정부는 구이저우성에 데이터 센터를 건립하거나, 법인을 설립하는 기업에 파격적인 세제 감면 조건을 내세웠다. 2년간은 법인세를 아예 면제해주고, 이후로도 3년간 세율의 50%를 감면해준다.
현대자동차 역시 지난해 첫 해외 빅데이터 센터를 구이양에 설립하고, 이곳에서 커넥티트카, 자율주행자동차 등 미래형 자동차 연구를 시작했다. 빅데이터를 등에 업은 구이저우성은 지난해 10.5%의 경제성장률을 이뤄내며, 중국의 평균 성장률인 6.7%를 훨씬 웃도는 성장세를 보였다.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원동력이 데이터의 폭발적인 증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하루에 생산되는 데이터 총량은 2.5QB(퀸틸리언바이트·1QB는 100경 바이트)에 이르며, 현존 데이터의 90%는 지난 2년간 축적된 것이다. 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발전하게 된 만큼 데이터 대국이 미래를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
신기술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른다. 빅데이터 산업은 사생활 침해 우려 등으로 제약이 많다. 하지만 중국은 ‘신기술의 시험장’이라는 명성답게 빅데이터 산업에서도 과감히 시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로 구이저우성에서는 빅데이터를 의료 산업 분야에 적용해 병원에 방문하기 어려운 산간지역 사람들에게 원격진료를 시범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기반이 되는 빅데이터는 GBDEx의 의료 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지원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던 구이저우성이 규제를 넘어 미래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정홍식
연세대 물리학과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21년간 메모리반도체 분야 연구 개발에 참여했다. 상무로 퇴직한 뒤 연구자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 2016년 9월 중국으로 향했다. 현재 중국 칭화대 전자공학과 교수 및 인공지능센터 연구원으로 인공지능용 소자 연구를 하고 있다.
hongsikjeong@tsinghua.edu.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