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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역사 간직한 찬송가·뮤직박스

보신각 종소리는 조선시대 시간 알리는 역할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연말연시,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크리스마스 캐롤에 흠뻑 취한 연인 한쌍이 있다. 주인공은 한소리 양과 나시계 군. 나시계 군은 한소리 양과 올 연말연시를 뜻깊게 보내기 위해 심사숙고한 끝에 멋진 계획을 세웠다.

그는 교회에 다니는 한소리 양을 위해 아침에 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이 참에 찬송가도 한곡 배워보리라 마음먹는다. 그리고 낮에는 한소리 양의 핸드벨 연주 공연을 관람한다. 저녁에는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그녀 몰래 크리스마스 선물로 뮤직박스를 준비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밤에는 한소리 양과 함께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들으며 2003년을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나시계 군의 데이트는 연말연시를 보내는 여느 연인들의 데이트와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찬송가, 핸드벨, 뮤직박스, 그리고 보신각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과연 무슨 의미일까.


1030년 경 프랑스 리모주의 성 마르티알 수도원에 남아 있는 찬송가 악보. 음표의 기둥이 표현되진 않았지만, 음 높이의 변화는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노래를 부르면 시간이 들린다

나시계 군이 찬송가를 배워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에서 서양음악사 수업을 들으면서부터였다. 그는 수업을 듣기 전에는 음악을 단순히 예술의 한 장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이 중세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고 있다. 특히 당시 교회에서 부르던 찬송가는 중세 사람들이 시간을 일정한 단위로 끊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중세 초기에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는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명칭은 서기 6백년 경 로마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1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 무렵에는 교통수단이나 통신수단이 매우 미비한 상태였기 때문에 교회마다 예배를 드리는 형식이 서로 달랐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로마의 예배 방식을 기준으로 정한 후 각 지역에 사절단을 파견해 예배 형식을 통일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노력으로 7세기에는 교회의 예배 형식이 점차 통일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예배에 사용된 찬송가에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하나의 성부로 이루어진 노래였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코러스 없이 주 멜로디만 있는 셈이다. 여러 사람이 화음을 넣어 이중창, 삼중창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남자 수도사 혼자 노래했다. 성가의 가사는 라틴어였고, 대개 가사 한 음절에 한 음을 불렀다. 하지만 가사의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부활절, 성탄절 같이 종교적으로 중요한 날에는 한 음절의 가사를 여러 음으로 부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9세기 이전 그레고리안 성가는 독창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합창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한 박자, 반 박자와 같이 시간을 끊어 박자를 나누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아 통일된 기보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가를 배우고 싶으면 이미 성가를 알고 있는 수도사의 노래를 듣고 배워야만 했다.

예를 들어, 오선지 위에 마디를 나누고, 음표( )의 머리( )와 기둥( )을 그려 넣었다고 상상해보자. 그레고리안 성가는 이 상태에서 음표 기둥을 삭제하고, 음표 머리도 까만색이든 흰색이든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박자에 대한 개념이 정해져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마디선과 오선지의 줄도 모두 지워보자. 이제 종이 위에는 음표 머리만 남았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마치 이런 모습이었다. 한 음을 얼마나 끌어야 할지, 어디서 쉬어야 할지 정해져있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교회마다 성가를 부르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9세기 경 교회는 음악을 통일하기 위해 선과 칸을 이용해 음 높이와 박자를 표현하는 기보법을 발전시켰다. 이로 인해 드디어 중세인들은 하나의 성부로 이루어진 그레고리안 성가 대신 여러 성부로 이루어진 화려한 찬송가를 부를 수 있게 됐다. 박자에 대한 기준이 세워져 사람들이 악보를 보면 자신의 성부에 해당하는 가락을 노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시계 군은 이로부터 생각에 잠겼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레고리안 성가와 여러 성부로 이루어진 화려한 찬송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시간에 대한 개념이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일정한 박자로 끊어서 노래하지 않고 죽 이어서 불렀다. 그들에게는 1분, 1초와 같이 정해진 시간 단위가 없었고, 시간은 연속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여러 성부로 이루어진 찬송가를 부르면서 사람들은 시간을 일정 간격으로 끊어주는 박자에 익숙해졌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나시계 군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만들었다. 여러 성부로 노래하는 화려한 찬송가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시간을 끊어서 생각하게 됐고, 이는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의 등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한 가지 원인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실제로 9세기 이후 다성음악의 등장을 다룬 과학사 연구에서는 마디의 구분, 박자의 구분이 사람들의 시간 개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시되기도 했다.

종치기의 필수품 핸드벨

이윽고 크리스마스 오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핸드벨을 연주하는 한소리 양을 보면서 나시계 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중세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시간을 끊어서 생각하는 것에는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보고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핸드벨에 있었다.

시계를 뜻하는 ‘clock’이라는 단어는 14세기에 처음으로 사용됐는데, 원래 네덜란드어로 종(bell)을 뜻하는 단어 ‘klock’에서 유래했다. 다시 말해 중세인은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시간을 짐작했다. 중세 교회에서는 ‘낮과 밤의 지정된 시간에 교회의 종을 울려서 신의 숭고함을 축복하게 하라’는 규칙이 있었다. 성직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예배를 드렸고, 마을 사람들은 이 종소리를 듣고 하루 일과를 꾸려갔다. 교회의 종소리는 당시 마을 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시계였다.

이로 인해 정해진 시간에 교회 탑에 매달린 종을 쳐야 하는 종치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초기에 교회 탑에는 핸드벨 모양으로 생긴 종이 4개에서 12개 정도 매달려 있었다. 종치기는 이 종들을 번갈아 울려서 시간을 알렸다. 문제는 여러개의 종이 울려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종치기는 종치는 기술을 갈고 닦아야만 했다.

결국 종치기는 교회 탑에 걸린 것과 같은 모양의 종에 손잡이를 부착해 손으로 흔들어 소리를 낼 수 있는 핸드벨로 먼저 연습을 했다. 한소리 양이 손에 들고 있는 핸드벨이 바로 중세 종치기들이 교회 탑에 걸린 종을 치기 위해 연습하던 종이다. 핸드벨로 연습을 마친 종치기들은 해시계나 물시계, 또는 천체 관측기구에서 시간이 측정되면 교회 탑에 올라가 종을 쳐서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렸다.

14세기에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기계시계가 등장한 이후 점차 종치기 없이도 스스로 종을 울리는 시계탑이 교회에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핸드벨은 교회에서 종치기의 연습용 종 대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남게 됐다.

나시계 군은 한소리 양의 핸드벨 연주를 들으면서 지긋이 눈을 감고 수백년 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핸드벨을 울리며 연습했을 어느 종치기를 상상했다.

뮤직박스, 시간을 선물하세요

기다리던 둘만의 크리스마스 저녁. 나시계 군은 한소리 양에게 선물로 준비한 뮤직박스를 건네줬다. 뚜껑을 여니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나시계 군은 기뻐하는 한소리 양에게 찬송가와 핸드벨, 그리고 뮤직박스까지 자신의 크리스마스 계획에 숨겨진 비밀을 얘기해주기로 했다.

한소리 양은 찬송가와 핸드벨에 관한 얘기를 듣고난 후 나시계 군이 뮤직박스에 관한 얘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자신이 맞춰보겠다고 했다. 그녀는 앞의 두 얘기로 미루어보아 뮤직박스 역시 시간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간이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한소리 양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그에게 설명을 듣기로 했다.

뮤직박스가 시간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그녀의 짐작은 맞았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뮤직박스는 시계와 관련이 있다. 14세기 경 시간을 알리던 종이 교회에서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대신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기계시계가 발전했다. 기계시계는 종치기가 정해진 시간에 종을 치는 대신 자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종이 울리도록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 톱니바퀴의 홈과 홈 사이의 간격을 조정해 원하는 시간에 종을 치게 했다.

뮤직박스는 이러한 기계시계가 변형된 형태였다. 최초의 뮤직박스는 14세기 초 등장했다. 당시 뮤직박스는 오늘날처럼 아름다운 멜로디가 연주되는 작은 상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종과 톱니바퀴, 그리고 원통이 연결된 일종의 시계였다. 똑같은 종소리를 들려주는 시계가 아니라 여러 음높이의 종소리를 들려주는 ‘음악 시계’였다.

이러한 음악 시계는 계속해서 같은 음으로 울리는 종소리를 지겹게 느낀 어느 종치기가 발명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최초로 등장한 음악 시계는 원통에 꽂힌 여러개의 핀이 종을 치는 망치에 연결된 톱니바퀴를 제어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따라서 핀의 각도와 위치를 조절하면 종소리의 리듬을 바꿀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개의 종들 중 어떤 종이 선택되는가에 따라 음높이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조그마한 뮤직박스는 1796년 스위스의 시계공 베버에 의해 최초로 탄생했다. 그는 종 대신 미리 음을 맞춰 놓은 얇고 작은 철판을 사용했기 때문에 작은 뮤직박스를 만들 수 있었다. 베버가 만든 뮤직박스는 음에 맞게 돌기가 배열된 원통이 돌아가면서 이 철판을 두드려 소리가 나는 방식이었다.

새해용 시계 보신각


176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도 보신각을 뜻하는 '종각'(점선 원)이 한양의 중심으로 나와 있다.


2002년의 마지막 날, 한소리 양과 나시계 군은 자정에 울려 퍼질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듣기 위해 종각에서 만났다. 크리스마스 데이트에서 한 수 배웠던 한소리 양이 이번만큼은 나시계 군에게 실력발휘를 하고자 보신각과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은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불교가 번성한 고려 시대에는 곳곳에 위치한 사찰에서 울려나오는 종소리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줬다. 중세 교회의 성직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찰의 승려들은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각에 종을 울렸다.

조선시대 한양 역시 시보의 도시였다. 한양 도성의 외곽은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 원 중심에 놓인 것이 보신각이었다. 보신각이 한양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보신각의 종소리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보신각은 백성들이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434년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제작한 이후 보신각 종소리는 자격루에서 측정한 시간을 한양 사람들에게 알렸다. 자격루는 물이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미리 장전된 쇠알이 굴러 떨어지면서 북이나 징을 울리도록 설계됐다.


덕수궁에 보존돼 있는 자격루. 장영실이 제작한 것은 없어 지고, 중종 때 다시 제작됐다.


한밤중이라도 자격루가 저절로 울리면 문지기들이 북과 징을 쳐서 보신각에까지 전달했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근처와 광화문 사거리, 그리고 광화문 우체국 건너편에 집을 지어 여기에 모두 북과 징을 설치했다. 자격루에서 북과 징 소리가 울리는 즉시 문지기들은 자기가 담당한 북과 징을 울려 소리를 전달해 보신각에 시간을 알렸다. 이런 식으로 한양 사람들은 새벽 4시경 울리는 파루 종소리에 잠을 깨고, 저녁 7시경 울리는 인정 종소리에 일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보신각 종소리는 타종 수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파루에는 33번, 인정에는 28번 울렸던 보신각 타종 수는 불교와 관련이 깊었다. 파루 때 33번 치는 것은 관세음보살이 하늘에 있는 33개 세계만큼 육신을 쪼개서 속세의 중생을 악에서 구제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인정 때 28번 치는 것은 불교에서 천체를 28개로 나누어 분류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하늘에 있는 별에게 밤의 평안을 부탁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지금도 타종에 관한 이런 의미를 살려 국가와 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매년 마지막 날자정에는 보신각 종을 33번 타종한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보신각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우렁차게 '셋, 둘, 하나'를 외치니 2003년의 새해를 밝히는 첫 종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종교적 의식으로 남아 있는 찬송가, 교회 음악의 악기로 발전한 핸드벨, 아름다운 선물이 된 뮤직박스, 그리고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까지, 가끔은 숨어있는 시간을 찾아 옛날 사람들이 누렸을 삶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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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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