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가별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한국이 98.2kg으로 세계 1위다. 1인당 연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도 한국이 64.12kg으로 미국(50.44kg)과 중국(26.73kg)보다 많다(2017년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자료).
최근 재활용 쓰레기 대란의 핵심은 플라스틱이다. 버려지는 고체 쓰레기의 80% 이상은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이다. 정부가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계는 ‘친환경 플라스틱’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플라스틱과 함께한 기자의 24시간을 추적했다.
아이스커피는 ‘포도당 플라스틱’ 잔에
(AM 10:00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햇빛에 갈색으로 반짝였다.)
일반적으로 카페에서 뜨거운 음료는 종이컵에, 차가운 음료는 플라스틱 컵에 담아준다. 플라스틱 컵에는 흔히 ‘페트(PET)’로 불리는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 등이 쓰이고, 그중에서도 투명도가 높은 페트가 많이 쓰인다.
카페 등 전국 식음료판매 점포수는 2017년 4월 기준 9만1818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에 차가운 음료가 평균 10잔만 팔린다고 가정하면, 전국에서 하루에 100만 개 가까운 플라스틱 컵이 쓰레기로 배출된다.
플라스틱의 원료는 한정된 자원인 석유다. 쓰레기 문제뿐만 아니라 자원 고갈 측면에서도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은 포도당으로 플라스틱을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1월 8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467-017-02498-w
이 기술의 핵심은 대장균이다. 이 교수팀은 음료수 병이나 식품 포장재에 쓰이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방향족 폴리에스터’를 생산할 수 있도록 대장균의 유전자를 변형했다. 유전자 변형 대장균은 포도당을 이용해 방향족 폴리에스터를 생산한다. 대장균을 72시간 배양하면 배양액 1L당 13.9g의 친환경 플라스틱을 얻을 수 있다. 이 플라스틱은 페트병 형태를 기준으로 땅속에서 6개월 정도면 분해된다.
이 교수는 “공업적으로 합성하는 플라스틱 생산 방식에 비해서는 아직 효율이 떨어진다”면서도 “플라스틱 제작에 원유 대신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포도당을 이용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테리아로 페트병 분해
(AM 12:00 산책에서 돌아와 그동안 밀린 청소를 했다. 남자의 자취방은 어쩔 수 없다. 페트병과 각종 포장재를 비롯한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금세 집 앞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이 가득 찼다.)
2017년 한국환경공단이 발행한 ‘2016년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7301.5t(톤)이다. 이는 전체 폐기물의 약 13.6%로 종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폐플라스틱은 수익성이 낮아 업체들이 수거를 꺼리고 있다. 플라스틱 대부분이 분해가 어려워 재활용에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분해와 조립이 용이한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연구진이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유진 첸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화학과 교수팀은 단일 분자 상태와 긴 사슬 상태(플라스틱)의 전환을 화학적으로 무한히 반복할 수 있는 중합체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만들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4월 26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aar5498
이 교수는 “석유를 원료로 한 기존 플라스틱은 분자 결합을 끊는 데 높은 에너지가 필요해 완전한 재활용이 어려웠다”며 “이 기술로 플라스틱을 만들면 분자 결합을 쉽게 끊고 단량체로 재활용할 수 있어 자원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배출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일도 중요하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자연에서 썩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다 코헤이 일본 교토공대 응용생물학과 교수팀은 페트를 빠르게 분해하는 박테리아인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Ideonella sakaiensis)’를 찾아냈다.
이 박테리아가 가진 효소 페테이스(PETase)를 0.2mm 두께의 페트 필름에 바르면 하루 동안 1cm2(약 20mg)당 0.13mg의 페트를 분해할 수 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016년 3월 11일자에 실렸다.
doi: 10.1126/science.aad6359
최근 존 맥기헌 영국 포츠머스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이페테이스의 구조를 분석해 분해 효율을 개선하는 데 성공하고 그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4월 17일자에 발표했다.doi: 10.1073/pnas.1718804115 연구팀은 X선 회절을 이용해 페테이스의 구조를 분석한 뒤, 효소의 활성 부위가 페트와 더 잘 결합할 수 있도록 구조를 조작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페테이스의 분해 능력을 20%가량 개선했다.
플라스틱 생합성 기술 분야 전문가인 박시재 이화여대 차세대기술공학부 교수는 “기존에 구조가 잘 알려진 큐틴 분해 효소(cutinase)의 아미노산 서열을 참조해 페테이스의 염기서열을 바꿔 활성을 향상시킨 것”이라며 “페트처럼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을 자연적으로 분해할 수 있다면, 이는 재활용 쓰레기 문제 해결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벌레로 비닐봉지 분해
(PM 03:00 자취를 하다 보면 은근히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다. 하나둘 담다 보니 어느새 양손에 한가득 짐이 생겼다. 큰 비닐봉지 서너 개에, 음식 등 작은 비닐 포장까지 합치면 열 개 가까이 되는 비닐 쓰레기가 또 생겼다.)
우리나라 국민의 연평균 비닐봉지 소비량은 2015년 기준 1인당 420개 정도다. 4개인 핀란드(2010년 기준)의 100배가 넘는다. 비닐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100년 이상 걸린다.
크리스토퍼 호위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화학과 교수팀은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비닐봉지를 먹은 뒤 분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2017년 4월 24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016/j.cub.2017.02.060
연구팀은 실험 결과 애벌레 100마리가 12시간 동안 92mg의 비닐봉지를 섭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 애벌레는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폴리에틸렌을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로 분해했다. 에틸렌글리콜(C2H4(OH)2)은 자동차 냉각수나 부동액의 성분으로 쓰이는 물질로, 비교적 간단한 구조의 알코올이다.
호위 교수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는 벌집을 먹고 살기 때문에 밀랍을 분해할 수 있다”며 “덕분에 밀랍과 화학 구조가 비슷한 폴리에틸렌 분해 능력도 획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옥수수로 타이어 제작
(PM 07:00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강변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그런데 너무 신나게 달렸는지 바퀴에 펑크가 났다. 결국 수리점에 들러 타이어와 튜브를 교체했다.)
타이어에는 주로 부타디엔(butadiene)이 쓰인다. 부타디엔은 탄소 분자 4개로 이뤄진 중합체 사슬로, 타이어 외에도 의료용 고무장갑이나 호스 등에 이용된다.
폴 다웬하우어 미국 미네소타대 화학공학과 교수팀은 옥수수나 나무, 풀 등 재생 가능한 재료로 부타디엔을 합성하는데 성공해 화학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지속 가능한 화학 및 공학(sustainable chemistry and engineering)’ 2017년 4월 2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doi: 10.1021/acssuschemeng.7b00745
연구팀은 식물에서 자일로스(xylose) 등 5탄당을 추출한 뒤 탈수소 반응을 이용해 고리화합물인 ‘퍼퓨랄’을 만들었다.
여기에 물을 가한 뒤 탈탄소 반응을 일으켜 에테르의 일종인 ‘테트라하이드로퓨란(THF)’을 합성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촉매인 ‘인산 올-실리카 제올라이트’를 더해 결국 부타디엔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다웬하우어 교수는 “새로운 촉매를 이용해 95%의 높은 수율로 부타디엔을 합성할 수 있다”며 “고무나 타이어를 더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