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가 한바탕 ‘홍역(紅疫)’을 치르고 있다. 말 그대로 전염병인 홍역이 세계 각지를 강타했다. 월드컵이 열리는 러시아를 포함해 스페인, 그리스 등 유럽과 중국,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인도 등 아시아에서도 홍역이 창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6월 15일 현재 6명이 홍역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검역에 비상이 걸렸다.
홍역 환자 1명이 최대 18명 감염시켜
홍역은 홍역바이러스(measles viru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발진성 질환으로, 주로 환자의 분비물이나 공기를 통해 호흡기로 감염된다. 평균 10~12일의 잠복기를 거치며, 초기 증상은 기침, 콧물, 결막염, 약한 발열 등 감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홍역에 걸리면 구강 점막에 ‘코플릭 반점’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회색 병변이 발생한다. 이후 고열과 함께 온몸에 붉은 발진이 생긴다. 설사, 중이염, 기관지염, 폐렴 등 다양한 합병증도 동반된다.
홍역의 가장 큰 위협은 전염성이다.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강해 홍역바이러스에 노출되면 90% 이상 발병한다. 강력한 전염성 때문에 국내에서는 제2군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보통 전염병의 전염성을 나타내는 수치로 ‘재생산 지수’를 쓴다”며 “홍역의 재생산 지수는 12~18로, 이는 환자 1명이 12명에서 최대 18명까지 감염시킬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홍역은 낯선 감염병이다. 우리나라는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홍역 퇴치 국가로 인증받았다. 홍역 예방 접종(MMR 백신)률이 고등학생 기준 98%에 이를 만큼 높아 홍역이 거의 발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홍역의 경우 예방 접종률이 95% 이상이면 거의 유행하지 않는다”며 “최근 유럽에서 홍역이 유행하는 이유는 홍역 발생 사례가 급감하면서 예방 접종률도 낮아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홍역 예방 접종이 1차만 의무였던 2001년에는 국내에서도 수만 명이 홍역에 걸렸다. 이 교수는 “2차 접종이 의무화되면서 국내에서 홍역이 자발적으로 생긴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국내 유래 홍역 발생수는 0건이다.
인혜경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감시과 보건연구사는 “최근 국내 홍역 환자 6명에게서 홍역바이러스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모두 ‘D8’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형태의 홍역바이러스”라고 설명했다.
예방 접종 했는데…‘돌파 감염’ 우려
전문가들은 이번 홍역 사태의 모든 환자에게서 ‘돌파 감염’이 발생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돌파 감염은 예방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게 해당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국내 환자 6명 모두 과거 홍역 예방 접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역바이러스는 지역마다 몇 가지 다른 형태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독감 바이러스처럼 돌연변이가 심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예방 접종 이후 일단 면역세포(T세포)에 항원에 대한 기억이 생기면 감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발생한 홍역은 이미 면역 체계가 형성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됐다. 이 교수는 “예방 접종 이후 항원에 노출되는 ‘자연 접종 효과’가 없어지면서 면역력이 떨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역이 박멸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홍역 예방 접종을 한 뒤에도 홍역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경우가 생기고, 이때 항체가 재생성 되면서 면역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항원(홍역바이러스)에 노출 될 기회 자체가 없다. 이 교수는 “일각에서는 홍역 예방 접종을 3차로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이후가 홍역 창궐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를 방문한 월드컵 응원단이 현지에서 홍역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 접촉한 뒤 귀국할 경우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홍역이 창궐할 수 있다.
인 연구사는 “홍역 환자가 발생할 경우 병원에서 재빨리 인지하고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계속 알릴 계획”이라며 “홍역은 2차 예방 접종까지 마치면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고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미미한 만큼 2차 예방 접종을 꼭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