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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간은 췌장보다 클까?

 

우리 몸 안의 장기(臟器·organ)를 잠깐 떠올려 볼까요? 심장, 간, 위, 신장… 어쩜 모두가 제각각 다른 크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이런 장기들의 크기가 어떤 기작을 통해 결정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63년 호주 월터-엘리자 홀 의학연구소에서 일하던 의학자 도널드 메트칼프 교수는 장기의 크기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쥐를 이용해 재밌는 실험을 합니다(메트칼프 교수는 2014년 별세했습니다). 태어난 지 하루 된 쥐 6마리의 목에서 흉선을 추출한 뒤, 이 6개의 흉선을 각각 태어난 지 3개월 된 쥐의 가슴과 배 사이에 이식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이식된 흉선 6개가 모두 일반 쥐의 흉선 크기만큼 자랐습니다.

 

그런데 같은 실험을 비장(지라)을 이용해서 해보니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장은 횡격막 아래 왼쪽 옆구리에 위치한 장기로, 피를 걸러내고 백혈구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죠. 메트칼프 교수는 태어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쥐 6마리에서 6개의 비장을 추출해 어른 쥐에 이식하고 6주를 기다렸는데요. 이식된 비장이 원래 비장의 6분의 1 크기로 자랐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같은 실험 다른 결과, 이유는?


흉선의 크기는 흉선을 이루는 세포 내부에서 이미 정해놓은 고유한 값입니다. 때문에 몸에 몇 개의 흉선이 있는가에 상관없이 흉선 하나하나가 본래 자라야 할 만큼 자란 것입니다.

 

반면 비장의 크기는 비장세포 내부에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6개의 비장이 이식되면 몸에 총 6개의 작은 비장이 이식됐다는 사실을 비장 하나하나가 인지하고, 모두 합쳐 하나의 비장을 만들기 위해 6분의 1 크기로 자랍니다.

 

흉선처럼 장기의 크기가 고유한 값으로 정해지는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미국 오스본에 있는 동물학연구소 연구팀이 1931년에 발표한 실험입니다.doi: 10.1002/jez.1400590105 연구팀은 서로 다른 크기의 도룡뇽을 준비한 뒤, 큰 도룡뇽에서 발달 과정 중인(자라고 있는) 다리를 떼어 내 작은 도룡뇽의 몸통에 이식했습니다. 자, 그럼 이식된 다리는 원래의 크기대로 자랐을까요, 아니면 작은 도룡뇽의 다리만큼만 자랐을까요?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결과를 예상했겠죠. 이식된 다리는 다리를 이식 받은 작은 도룡뇽의 크기에 맞춰 자란 게 아니라, 공여자인 큰 도룡뇽의 크기대로 자랐습니다(아래 사진).

 

반대로 작은 도룡뇽의 다리를 큰 도룡뇽에 이식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리는 공여자인 작은 도룡뇽의 다리 길이만큼 자랍니다. 앞서 소개한 흉선처럼 도룡뇽의 다리 역시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주어진 고유의 크기로 자란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절단된 간(肝) 원래 크기로 돌아가려면?


그렇다면 메트칼프 교수가 이식한 비장처럼, 환경을 의식하고 크기를 조절하는 장기는 어떤 게 있을까요. 대표적인 게 간(肝)입니다. 간을 이용한 실험은 메트칼프 교수의 실험과 달리 ‘개체연결법(parabiosis)’이라GIB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쥐 두 마리의 피부를 각각 벗겨내 팔목과 발목을 연결하고 피부를 꼼꼼히 꿰매면 두 쥐 사이에 작은 혈관들이 생기면서 결국 두 쥐는 피를 공유하게 됩니다(위 사진). 1967년 미국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병원 연구팀은 이런 방식으로 쥐 A와 B를 붙여 놓은 뒤, 쥐 A의 간 30%를 잘라냈습니다.doi: 10.1126/science.158.3798.272

 

70%만 남은 간은 원래의 크기로 재생이 될 텐데요. 여기서 과학자들이 주목한 부분은 쥐 A와 피를 공유하는 쥐 B의 정상적인 간이었습니다. 간을 절단한 건 쥐 A니까, 쥐 B의 간은 그대로여야 했죠. 하지만 놀랍게도 쥐 A의 간이 재생되는 동안 쥐 B의 간도 함께 자랐습니다. 쥐 A의 간을 85% 가량 잘라내면 쥐 B의 간은 정상의 6~7배로 커졌습니다.

 

쥐 B의 간에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실험은 쥐 A의 간 재생을 돕는 물질이 혈류를 통해 쥐 B에 전달되고 이에 따라 쥐 B의 간도 함께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부는 유전자에 적혀 있는 공식에 따라, 일부는 주변 환경에 따라, 장기들이 그 크기를 조절하는 방식은 기능과 모양만큼이나 제각각입니다.

 

 

 

2. 피부세포가 근육세포가 될 수 없는 이유

 

세포 하나로 이뤄진 수정란은 몸의 여러 세포가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발달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거듭해 여러 개의 세포들을 만들어 내고 이후 각각의 세포들은 특정 ‘운명’을 선택해 분화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분화한 세포들이 갑자기 다른 세포로 돌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불리는 과학자들이 직접 와서 강연을 하는 것이었는데요. 발생학과 관련된 연구 발표를 들으러 가 보면 발표자 10명 중 7명은 꼭 이 그림으로 배경지식을 설명하곤 했습니다. 영국의 발달생물학자 콘래드 웨딩턴이 제안한 ‘후성적 지대(epigenetic landscape)’ 모델입니다(아래 그림).

 

한 번 선택하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골짜기


얼핏 보면 단순한 그림입니다. 여러 개의 골짜기가 있는 큰 산의 꼭대기에 작은 공 하나가 있는 모습이죠. 여기서 이 작은 공이 바로 높은 발달 잠재력을 가진 세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면서 선택하게 되는 골짜기가 세포의 특정한 운명입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분기점에서 왼쪽 골짜기를 선택하게 되면 근육세포나 위장세포가 될 수 없고, 그 다음 분기점에서 오른쪽 골짜기를 선택하면 피부세포가 되는 식입니다.

 

웨딩턴의 모델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선택에 선택을 거듭해 골짜기 아래에 다다른 공은 자연적 상태에서 스스로 작은 언덕을 넘어 옆 골짜기로 갈 수 없습니다. 즉, 분화 방향을 정한 세포가 자신의 ‘운명’을 바꿔 다른 세포로 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피부세포가 갑자기 신경세포가 될 수 없듯이 말입니다.

 

한 번 선택한 결과(분화한 결과)가 이후에 바뀔 수 없다는 점은 개체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장세포가 되기로 한 세포들이 갑자기 근육세포로 변하고, 자고 일어났더니 피부세포가 혈관세포로 바뀌어버린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니까요.

 

세포의 운명 선택 돕는 ‘DNA 메틸화’


그럼, 여기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웨딩턴 모델에서는 중력 때문에 공이 스스로 솟아올라 언덕을 넘을 수 없다지만, 배아 내에서 세포가 자신의 분화 선택을 뒤집을 수 없는 이유는 뭘까요? 여기엔 여러 가지 기작이 작용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후성유전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DNA 메틸화에 초점을 맞춰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 몸의 DNA는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 등 단 4개의 알파벳(염기)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ATCCGCAATCGATACG… 이런 복잡한 DNA 염기서열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흔히 말하는 돌연변이란 이런 알파벳이 지워지거나, 더해지거나, 치환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알파벳이 바뀌면 결국 정상과는 다른 RNA와 단백질이 만들어져서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죠. DNA 메틸화는 정상과 다를 바 없는 염기서열에 핀 하나를 꽂는 상황과 유사합니다(위 오른쪽 그림). DNA에 더해진 ‘메틸’이라는 작은 물질을 핀에 빗댈 수 있습니다.

 

DNA 메틸화는 유전자 발현 억제 기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유전자가 발현되려면 이를 도와주는 단백질이 유전자 앞에 붙어야 하는데요. 이 부분에 메틸화가 이뤄질 경우, 단백질이 붙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유전자 발현이 억제됩니다. 단백질이 앉아야 할 유전자 벤치에 심술궂은 누군가가 핀을 꽂아 놓은 셈이죠. 때로는 메틸화된 DNA에 찰싹 달라붙는 단백질이 따로 있어서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기도 합니다.

 

 

재밌는 건, 이런 메틸화가 세포의 분화를 안정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이미 분화한 세포를 잘 들여다보면, 다른 종류의 세포 기능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메틸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부세포의 유전체에서는 근육세포의 기능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메틸화돼 있어서 피부세포가 근육세포로 바뀌지 않고, 근육세포에서는 피부세포로 발현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이 메틸화돼 근육세포가 피부세포로 갑자기 바뀌지 않습니다.

 

이처럼 세포가 선택한 분화 방향을 잘 따라가는 데는 DNA 메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후성 유전학과 발달 생물학이 긴밀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최영은_yc709@georgetown.edu
미국 바드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발생학 및 재생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우는 과학이 아닌 질문하는 과학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과학교육에 발을 담그게 됐다.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부에서 유전학, 발생학 등을 가르치며 새로운 대학 과학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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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은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 에디터

    이영혜
  • 기타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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