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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 캐럴 그레이더 박사 "무한반복 실험 즐겼더니 노벨상 받았죠"

INTERVIEW

무한반복 실험 즐겼더니 노벨상 받았죠


그레이더 교수가 ‘노화 시계’로 불리는 텔로미어를 처음 접한 건 30여 년 전이다. 당시 그의 지도교수였던 UC샌프란시스코의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와 하버드 의대 잭 조스택 교수가 텔로미어를 늘리는 효소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논문을 발표했다. 텔로미어(telomere)는 끝(telos)과 부위(meros)라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로,염색체의 양 끝에 붙어 있는 DNA매듭을 가리킨다. 연구진은 단세포동물인 테트라히메나의 텔로미어에서 특정 염기서열이 여러 번 반복된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텔로미어는 세포복제 중에 유전정보가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추측했다. 만일 그렇다면 텔로미어는 노화나 암 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큰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얻게 되는 셈이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그레이더 교수는 이 소식을 듣고 직접 실험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2009년 함께 노벨상을 받은 블랙번 교수는 노벨상 위원회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이 주제를 다른 박사후 연구원에게 제안했는데 여러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며 “대학원생이었던 그레이더가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겠다고 나섰고, 실험에 대한 몰입도가 매우 높았다”고 칭찬했다.

 
1984년 크리스마스 선물



제자와 스승이었던 그레이더와 블랙번 교수는 텔로미어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실험에 착수했다. 단세포생물 테트라히메나의 염색체에서 분리한 텔로미어를 효모 세포의 염색체에 붙여보면서 세포 수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했다. 배양액 등 여러 조건을 바꿔봤다. 1984년 크리스마스, 평소처럼 출근한 그레이더는 염색체 끝에서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를 드디어 발견했다. 실험실의 세포들이 그레이더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이 효소가 ‘텔로머라아제’다. 일반적인 효소가 단백질로만 구성돼 있는 반면, 텔로머라아제는 단백질과 RNA로 이뤄져 있다. 텔로머라아제는 RNA를 주형으로 삼아 DNA를 합성한 뒤 염색체 끝에 붙이는데, 이것이 텔로미어다.


텔로머라아제는 모든 세포에 있지만 난자를 만드는 전구세포나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 등에서만 활성화 된다. 대부분의 세포는 텔로머라아제를 만들지 못해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다가 어느 한계점을 넘어가면 세포가 죽는다. 보통 세포에서는 이것이 정상이다. 반대로 텔로머라아제가 지나치게 활성화 된 경우가 바로 암세포다. 염색체 끝의 텔로미어가 줄지 않기 때문에 세포도 죽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분열하는 것이다.


그레이더 교수, 블랙번 교수, 조스택 교수는 이처럼 텔로머라아제를 이용해 세포 수명을 조절하는 원리를 밝힌 업적으로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여성 스승과 여성 제자가 노벨상을 같이 수상한 건 처음이었다. 그레이더 교수는 “과학자로서 겁 없이 도전하는 자세와 끈질기게 연구를 끌고 나가는 법을 블랙번 교수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유전정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



캐럴 그레이더 교수(오른쪽)와 스승인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왼쪽). 여성 사제가 노벨상을 같이 수상한 건 처음이다.
[캐럴 그레이더 교수(오른쪽)와 스승인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왼쪽). 여성 사제가 노벨상을 같이 수상한 건 처음이다.]


“연구는 요리처럼 하는 것”


텔로머라아제를 발견한 비결에 대해 묻자 그레이더 교수는 “요리처럼 실험을 맛보면서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한 것”이라고 답했다. 먹어보고 싱거우면 양념을 더 하듯, 매 실험마다 조금씩 배우면서 답을 찾아나갔다는 뜻이다. 지금도 그는 “‘리서치(research)’는 ‘다시 찾는다(re-search)’는 말이라고 믿고 실험의 무한반복을 즐긴다”고 밝혔다. 매일매일 새로운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게 행복하고, 그 자체가 연구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라고 한다. 그레이더 교수 연구실의 이수용 연구원은 “실험 결과에만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호기심을 우선으로 연구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레이더 교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게 즐겁다면 과학자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전한다. 단, ‘내가 궁금한 질문’을 파고들라고 조언한다. “과학계에서 미래의 유망한 분야, 일명 핫한 주제를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주제가 인기를 얻을 때쯤이면 이미 많이 밝혀져서 연구할 게 거의 남아있지 않죠. 남을 쫓아가는 대신 내가 재미있는 연구를 꾸준히 하면 어느덧 그 분야의 선구자가 돼 있을 것입니다.”

 

201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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