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일요일 아침, 고픈 배를 무엇으로 달랠까 고민하며 냉장고를 열어보니 지난주에 사뒀던 우유 한 통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과일 칸에서는 레몬청을 만들고 남은 레몬 한 개도 찾아냈죠. 그 순간 리코타 치즈가 떠올랐습니다. 만드는 방법이나 화학반응이 비슷한 두부도 생각났어요. 어젯밤부터 물에 불려놓은 대두로 솜씨를 발휘해 볼까요.
pH4.6에서 리코타 치즈 생기기 시작
리코타 치즈와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단백질 응고입니다. 리코타 치즈는 우유 속 단백질이 응고한 것이고, 두부는 콩 속 단백질이 응고한 결과지요. 하지만 두 단백질이 각각 응고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재료가 있습니다.
먼저 리코타 치즈를 만들어볼까요. 약 80도로 끓인 우유에 레몬즙을 넣은 뒤 살살 저어주면 잠시 후 몽글몽글한 덩어리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덩어리 수가 늘어나면서 크기도 커집니다. 그러면 덩어리들이 가라앉기 시작하지요. 덩어리가 잘 가라앉을 때까지 뒀다가 깨끗한 거름보자기나 거름망에 부어 덩어리와 액체(유청)를 분리합니다. 거름망 위에 돌 같은 무거운 물체를 올려서 덩어리 속에 있는 여분의 액체까지 빼내고 나면 하얀색에 고소하고 새콤한 냄새를 풍기는 리코타 치즈가 완성됩니다.
우유에는 다양한 단백질이 들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단백질은 카제인(casein)입니다. 카제인은 알파(α-카제인), 베타(β-카제인), 감마(γ-카제인), 카파(κ-카제인) 등 네 종류로 나눠지는데, 각각 아미노산 조성과 단백질 구조, 형태 등이 다릅니다.
카제인이 레몬즙이나 식초 등 산(acid)을 만나면 음전하가 중화돼 물과의 결합력이 낮아집니다. 결국 단백질과 단백질 사이에 소수성 결합이 생기면서 엉기지요. 이런 엉김이 많아지면 침전하면서 단백질 덩어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리코타 치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직접 산성도(pH)를 측정했습니다. 신선한 우유는 pH가 약 6.56입니다.
여기에 산성인 레몬즙(pH 2.21)을 넣으면 산도가 증가 하면서 우유의 pH가 점점 낮아집니다. 응고가 시작될 때 pH를 재보니 약 4.98이었습니다. 즉, 이론상 카제인이 응고하는 시점(pH4.6) 부근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셈이지요.
염도 약 20%에서 두부 만들어져
두부를 만드는 과정은 리코타 치즈와 비슷합니다. 이번에는 콩 단백질이 간수(바닷물에서 소금을 채취하고 남은 짠물로, 염도는 약 20%)를 만나 고체로 응고하지요. 약 100도에서 5~10분간 끓인 콩물에 간수를 조금씩 넣으면서 저어주면, 몽글몽글 하얀 두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간수가 없으면 염화마그네슘(MgCl2)을 4배의 물로 희석해서 넣어줘도 됩니다. 저도 간수 대신 염화마그네슘을 염도 약 19.6%가 되도록 희석해 넣었습니다.
콩물에 짠물을 넣기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푸딩처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고체가 됐을까요? 대두에는 글리시닌, 콘글리시닌 등 다양한 단백질이 들어 있습니다. 콩 단백질이 녹아 있는 용액에 1가 양이온(Na+, K+ 등)이나 2가 양이온(Ca2+, Mg2+ 등)을 넣으면, 염이 저농도일 때는 단백질이 계속 녹다가, 염의 양이 증가해 염도가 약 20%가 되면 단백질과 물 사이의 결합력이 약해져 단백질끼리 끌어당기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즉, 리코타 치즈와 마찬가지로 단백질과 단백질 사이에 소수성 결합이 생기면서 단백질 덩어리가 만들어집니다.
냉장고에 잠들어 있던 우유와 콩만으로도 훌륭한 식단이 완성됐습니다. 자칫 심심할 수 있었던 야채샐러드에 리코타 치즈를 얹고, 두부에는 간장, 고춧가루, 깨 등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곁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