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가도록 수백, 수천만 년에 걸쳐 진화해왔다. 동물이 걷거나 뛰거나 나는 거대한 움직임은 사실은 아주 작은 신경세포 안팎을 이온들이 드나들면서 만든 신호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근육을 움직이고, 기관을 움직이며, 결국 하나의 운동이 된다. 하지만 기계 장치만으로는 이렇게 효율적인 움직임을 결코 구현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레오나르도 리코티 이탈리아 산타나대 바이오로보틱스연구소 교수는 동물의 구조와 동작을 모방해 기계 장치를 설계하는 생체모방 기술로는 효율적인 로봇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리코티 교수는 배리 트리머 미국 터프츠대 생물학과 교수, 애덤 파인버그 미국 카네기멜론대 의생명공학과 교수 등 생체모방공학 연구의 대표적인 과학자 9명과 함께 최근 20년간 동물 모방 로봇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리뷰 논문을 발표했다.
doi:10.1126/scirobotics.aaq0495
논문에 따르면 과거에는 딱딱한 소재로만 제작되던 기계 로봇이 점차 실리콘 피부 등을 입고 ‘소프트로봇’으로 진화해왔다. 2010년대 들어서는 동물 전체나 동물의 일부가 기계 장치와 직접 결합하는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Biohybrid Robot)’이 등장하고 있다. ‘사이보그 동물’의 탄생인 셈이다.
기계에 살아있는 세포 결합
로봇 공학자들이 기계장치에 실제 동물을 결합하는 이유는 하나다. 기계장치만으로는 동물의 움직임이나 기능을 100% 모방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뛰는 심장근육이나 하늘을 나는 곤충과 새의 날개근육은 에너지를 크게 들이지 않고도 스스로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이를 기계적으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배터리는 현재 기술로 불가능하다.
국내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 연구자인 최정우 서강대 화공생명공학부 교수는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연구 초기에는 잠자리나 바퀴벌레, 세균 등에 기계 장치를 달아 조종하는 형태였다”며 “최근에는 거꾸로 기계 장치에 동물의 일부 기관을 결합하는 연구가 많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소속 위스생체모방공학연구소(Wyss Institute for Biologically Inspired
Engineering)의 박성진 연구원, 케빈 킷 파커 교수 등과 함께 쥐의 심장근육세포를 붙인 ‘가오리 로봇’을 만들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016년 7월 8일자에 공개했다.
doi:10.1126/science.aaf4292
연구팀은 실리콘을 이용해 가오리 모양의 로봇을 만들었다. 특히 지느러미 부분은 실리콘 두 층 사이에 금으로 만든 뼈대를 넣고, 뼈대 주변을 쥐의 심장근육세포 약 20만 개로 채웠다. 연구진은 이 세포가 파란빛을 쬐면 수축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했다. 빛을 받은 심장근육세포는 칼슘이온을 내보내면서 수축하고, 이 자극이 세포를 따라 순차적으로 전달되면서 세포들이 파도타기 하듯 차례대로 움직인다.
결국 세포의 수축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가오리 로봇은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헤엄친다. 빛을 한쪽에만 쬐면 빛을 받는 쪽 지느러미만 움직여 방향을 바꾸고, 주기적으로 깜박이는 빛을 쪼여 주면 지느러미가 펄럭이는 속도도 조절할 수 있다. 가오리 로봇은 실제 근육세포를 붙였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 중에서 특정 동물과 생김새가 가장 닮았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박종오 전남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은 면역세포 중 하나인 대식세포를 이용해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2016년에는 지름 약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인 대식세포 안에 항암제와 생분해성 산화철 화합물 입자(PLGA-DTX-Fe3O4)를 넣은 마이크로 로봇을 만들었다. 한천으로 만든 겔 위에 암세포를 배양하고 여기에 마이크로 로봇을 주입했더니, 암세포에 붙어 약물을 전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박 교수팀은 근적외선에 민감한 산화철 화합물 입자(리포솜-PTX-Fe3O4)를 대식세포에 넣어 빛으로 조종 이 가 능한 마 이크로 로봇도 발표했다.
doi:10.1109/MARSS.2017.8001911
원하는 대로 마이크로 로봇을 조종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일 뿐만 아니라, 자기 면역세포를 붙여 부작용의 가능성도 낮춘 게 특징이다. 박 교수는 “암세포만 정확하게 공격하는 효율을 높이고, 신경독성이나 면역세포가 활성물질을 과다하게 분비하는 사이토카인 신드롬 등 부작용을 낮추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이보그 반려견’ 나올 수도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이 상용화되기까지는 갈 길이멀다. 가장 큰 문제는 세포나 근육의 생존이다. 바이오 하이브리드 로봇이 작동하려면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최 교수는 “가오리 로봇에 붙어 있는 세포를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영양분을 주입해야 한다”며 “가오리 로봇의 경우 쥐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배양액이 담긴 수조에서만 작동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배양액을 하이드로겔로 만들어 세포가 달려 있는 부분만 감싸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소프트로봇과 비교하면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된 수준이어서 축적된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하다. 학계에서는 동물의 세포나 근육 등이 움직이는 기작이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이들이 실제와 유사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수학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
최 교수팀은 ‘브레인칩(칩 위에 신경세포를 배양하는 실험장치)’을 이용해 세포가 기억을 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세포 단계에서 자극을 기억하거나, 이 기억을 다시 추출해내고, 더 나아가 추론도 가능해진다면 먼 훗날에는 ‘인공지능(AI)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도 등장할 수 있다.
최 교수는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 기술이 발전을 거듭한다면 언젠가는 실제 동물의 능력을 뛰어넘는 날이 올 것”이라며 “산업용으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 살아있는 세포로 덮인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은 반려동물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