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문이 열렸다. 커튼이 올라가고, 드디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부터 종종걸음으로 뛰어나온다. 스무 발자국 쯤 갔을까. 걸음을 멈추자 터져 나오는 함성과 박수. 아, 드디어 보는구나.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그간 몇 차례 일본 취재에서는 ‘아시모’와 연이 닿지 않았다. 혼다가 2000년 처음 공개했으니, 아시모 나이도 어느덧 열일곱이다. 처음에 120cm였던 키는 130cm로 자랐고, 몸무게는 54kg에서 48kg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영어도 익혔다.
아시모는 휴머노이드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10분쯤 이어진 공연에서 아시모는 게처럼 옆으로 걷고, 한 발로 뛰고, 축구공을 차고,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뒷걸음질로 인사하며 퇴장까지 마무리도 완벽했다. 아시모는 로봇이라는걸 아는데, 뇌는 자꾸 착각을 일으킨다. 저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조종하는 것 같다고. 실감이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크다.
실감은 각성제 역할도 한다. 포항 지진 발생을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가 요란스럽게 울려대자마자 과학동아 편집부가 있는 서울 용산구 사무실이 일순간 출렁, 흔들렸다. 내가 제대로 느낀 게 맞나, 주변부터 둘러본다. 이런 게 지진이구나. 또 다른 의미로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실감이 감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의미 있는 기술로, 효과적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셰이크아웃(ShakeOut)’이라는 캠페인을 만들고 10월 19일을 지진 훈련의 날로 정해 지진 대피 훈련을 독려하고 있다. 이날 초등학교는 ‘셰이크 드릴(Shake Drill)’이라는 이름으로 훈련을 하고, 훈련 당일에는 지역 경찰이 학교 캠퍼스에 배치된다.
캘리포니아 주는 미 전역 참여율의 절반을 넘길 만큼 셰이크아웃에 열심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샌안드레아스 단층 때문이다. 태평양판과 북미 대륙판이 맞부딪쳐 만들어진 샌안드레아스 단층은 지금도 활발히 움직이며 지진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1400여 명의 인명 피해를 낸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의 경험을 잊지 않았다. 이런 게 실감의 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