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읜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 지전설에 근거해 점성술과 음양오행설의 비과학성을 비판했다.
중세까지 서양에 비해 앞서 있던 동양의 천문학은 어떻게 해서 근세로 오면서 뒤지게 디었는가?
서양에서 지동설을 처음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Nicoals Copemicus, 1473∼1543)는 당시의 정설(定説)이었던 지구중심의 우주관을 뒤엎고 우주의 중심에 태양을 놓았다. 그보다 2년 후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동양최초로 지구가 스스로 자전한다는 지전설(地轉説)을 주장했다. 그의 학설이 서양의 신부에 의해 중국에 들어온 서양천문학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독창적인지에는 의견이 분분하나 '의산문답'에 나타난 그의 사상을 보면 독창적인 쪽으로 심증이 굳어진다.
코페르니쿠스의 전환(轉換)
코페르니쿠스는 아니스토텔레스의 과학을 기초로 프톨레마이오스가 완성한 당시의 우주체계를 부정하고 지구의 3가지 운동을 주장했다. 이 3가지 운동이란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및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인다는 세차운동(이것은 2만6천년을 주기로 지구의 자천축이 황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북극성의 위치가 변한다는 현대적 의미의 세차운동이 아님)을 말한다. 이에 비해 당시의 프톨레마이오스 우주관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그 둘레를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및 항성천구가 돈다는 것이었다. 이 체계는 하나님이 계시는 천상계와 인간이 사는 지상계가 구분되고 하느님이 지구를 만들고 그 후에 태양과 달을 만들었다는 창세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중세를 지배한 신학과 단단하게 결합하여 정설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시 천제에 관한 새로운 관측사실이 축적되면서 이 학설은 한계에 부딪쳤다.
그 중의 하나는 행성의 역행운동에 대한 설명이다. 즉 행성들은 대부분 천구상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데, 어떤 경우에는 이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당시의 프톨레마이오스체계는 주전원이라는 새로운 궤도를 도입했다. 주전원이란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큰 원을 돌면서 그 큰 원을 중심으로 다시 작은 원 궤도로 회전한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해서 관측사실을 모두 설명하니까 무려 80여개의 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가 이렇게 복잡할리 없다고 확신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48개의 원으로도 설명이 충분히 가능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이 바로 태양중심의 우주체계다.
번개보다 빠르랴?
'의산문답'은 주자성리학을 대표하는 허자와 홍대용의 사상을 댜신하는 실옹과의 대화형식을 취하면서 자연과 사회에 관한 홍대용의 견해를 서술한 문집이다. 내용중에 지구에 관한 부분을 보면 "온갖 물체의 형체가 다 둥글고 모난 것이 없는데 하물며 땅이랴!"고 하면서 지구의 모양이 둘글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홍대용은 "달이 해를 가릴 때가 일식인데, 그 가린 모양이 반드시 둥근 것은 달의 모양이 둥글기 때문이고, 땅이 해를 가릴 때를 월식이라 하는데, 그 가린 모양이 둥근 것은 땅의 모양이 둥글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월식 때 나타난 그림자를 지구설(地求説)의 근거로 들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그가 과학연구에 있어서 자연관찰을 중요시했다는 과학정신을 보여준다.
또 지구가 위로나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계속 허공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지구 스스로에 그러한 힘이 있기 때문이며 하늘과는 관계없다고 한다. 그 논거로 "이 땅과 해와 달과 별이 상하가 없는 것은 또한 우리의 몸에 동서와 남북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로 설명하고 있다.
지구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견해는 지전설이다. 즉 그는 "대저 땅덩어리는 하루 동안에 한 바퀴를 도는데, 땅의 둘레는 9만리이고, 하루 시간은 12시간(자시부터 해시까지)이다. 9만리의 넓은 둘레를 12시간에 도니, 포탄보다도 더 빠른 셈이다"라 하여 지구 자전을 분명한 현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표면에 살고 있는 우리나 물체에 그러한 회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땅이 빨리 돌아 하늘의 기(気)와 심하게 부딪히어 허공에서 쌓이고 이것이 땅에 모이게 되어 상하로 세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지면의 세력이다"라고 하여 중력의 개념을 기와 연관시키고 있다. 또한 지면의 세력을 자석이 무쇠를 잡아당기는 힘이나 호박이 지푸라기를 끄는 힘과 대비시켰다.
지구가 자전한다는 근거로 "하늘이 운행하는 것이나 땅이 회전하는 것은 그 모양과 힘이 같다. 오직 9만리를 한 바퀴 도는데 빠르기도 마찬가지다. 저 별의 세계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겨우 반경밖에 되지 않는데도 오히려 얼마나 먼지 알 수 없다. 더구나 별세계 밖에 또 별들이 있다면 얼마나 하늘이 크겠는가? 하늘(공계)이 끝이 없으면 별들도 한계가 없다. 그러므로 하늘이 하루 동안에 번개보다도 빠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 한다. 즉 지구보다 훨씬 큰 하늘이 한바퀴 돈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견해를 펴고 있다. "하늘에 가득한 별은 모두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별세계에서 본다면 지구도 하나의 별이다. 그러므로 지구만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말은 틀리다". 뿐만 아니라 태양이나 오행성도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극도의 신비주의 사상에 젖어서 복수우주관을 주장하다 화형당한 브루노(Gordano Buruno, 1548∼1600)와도 비슷한 생각이다.
은하계의 원리도 설명
그는 이러한 별의 세계는 모두 회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칠정은 수레바퀴와 같이 자전을 하고 연자방아의 나귀처럼 공전을 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별의 세계에 속한다. "칠정은 수레바퀴와 같잊 ㅏ전을 하고 연자방의 나귀처럼 공전을 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별의 세계에 속한다. 대개 오위(금성 목성 수성 화성 토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과 달은 지주를 중심으로 돈다." 이것은 티코(Tycho Brahe, 1541∼1601)의 우주체계 (당시 서양에서는 5행성은 태양의 주위를 돌며, 달과 태양과 항성천구는 지구를 돈다는 티코의 절충설을 정설로 인정했으며 지구의 자전은 부정했다)와 같으나 칠정 즉 5행성과 태양과 달이 모두 자전한다는 것이 다르다. 이러한 생각은 홍대용의 독특한 견해다.
또 은하에 대해서 "은하란 여러 세계를 묶은 하나의 세계로 우주에 두루 돌아다니며 한 커다란 테두리를 이룬 것이다. 이 큰 테두리 안에 많은 세계가 수없이 많다. 해와 지구 등의 세계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며. 이 은하는 하늘에 있는 하나의 큰 세계다"라고 하면서 우주는 많은 별들로 이 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밖에 달에 대해서는 그 크기가 지구의 1/30이고 바탕이 얼음으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더라도 달이 발광체가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특히 그는 주자학에서 다소 신비주의 경향으로 흘러가는 음양오행설과 점성술을 비판하고 있다. "음양의 학설에 얽매여 이치에 막히고 천도를 살피지 않는 것은 선배 유학자들의 허물이다.무릇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이 일어나고, 지구가 달을 가린 현상이 월식이다. 경도와 위도가 같고 해와 달과 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면 서로 가려져서 일식과 월식이 생기는 것으로 운행의 뚜렷한 법칙이다. 해가 지구에게 먹히고 지구가 달에 먹히고, 또 달은 지구에게 먹히고 해는 달에 먹히는 것이 모두 당연하며ㅡ 이것은 지구의 정치와 상관없다."
이상에서 본 홍대용의 '의산문답'에 나타난 단편적인 내용을 보더라도 그의 사상은 단순히 서양천문학의 지식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자연관과 우주관에 근거하여 전통적인 유학(성리학)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논리를 전개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배우는 과학은 거의 다 서양과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에 관한 한 서양식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자연의 체계적인 질서를 알고자 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면 반드시 서양 중심의 세계관만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선조인 홍대용의 우주관도 당시의 틀 안에서 해석하면 얼마나 이치에 타당하며 자연의 질서를 잘 대변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