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고 잘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웨어러블 전자기기, 그리고 고효율 태양전지. ‘차세대 전자기술 삼총사’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기술이 있다. 투명하고 잘 휘어지는 전극이다. 이윤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는 이동화 박사과정 연구원과 함께 차세대 전극 개발 방식을 독창적으로 제시해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쉽게 녹스는 구리나노선, 그래핀으로 감싸
디스플레이나 태양전지는 반도체를 이용해 전기로 빛을 발생시키거나 빛으로 전기를 만든다. 따라서 반도체와 전선 역할을 하는 전극의 성능이 무척 중요하다.현재는 금속이나 인듐주석산화물(ITO)로 전극을 만드는데, 값이 비싸고 거의 휘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다. 유기물로 휘어지는 반도체는 만들 수 있지만, 회로가 따라주지 못하는 셈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그래핀의 높은 전기전도도에 주목하는데, 저희는 그래핀이 기체를 차단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 교수팀이 고안한 방법은 구리나노선을 그래핀으로 코팅해 투명하고 휘어지는 전극을 만드는 것이다. 구리나노선은 값싸고 전기전도도가 좋아서 휘어지는 투명 전자기기용 소재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공기 중에 몇 시간만 노출되면 산화돼 성능이 급감한다. 연구팀은 탄소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소재인 그래핀이 투명하고 잘 휘어질 뿐 아니라 기체를 투과시키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구리나노선을 코팅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하지만 구리나노선을 그래핀으로 코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핀 박막은 섭씨 1000도의 고온에서 메탄가스를 분해한 뒤 여기서 나온 탄소들을 물체의 표면에 흡착시키는 화학기상증착법(CVD)으로 만든다. 문제는 두께가 20~4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밖에 되지 않는 구리나노선이 섭씨 400~500도면 녹아버린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구리 나노선에 그래핀 박막을 코팅하는 방식을 새로 개발했다. 구리나노선을 넣은 진공 장치에 전기장을 걸어 플라스마 상태를 형성한 뒤 메탄 가스를 주입하면 섭씨 400도 정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그래핀 박막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그래핀으로 코팅한 구리나노선으로 투명전극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전극의 성능을 판단하는 요소인 면저항이 두 달이 지나도 ITO 전극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기존 구리나노선 전극은 하루만 공기 중에 둬도 면저항이 약 100배나 증가한다. 이 교수는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및 태양전지를 안정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진 셈”이라고 말했다.
이동화 연구원에게 이 연구는 특히 의미가 있다. 2012년 대학원에 입학한 뒤 나노선과 그래핀을 붙들고 5년 동안 씨름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은 “연구를 시작할 당시 그래핀 박막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3~4개월 동안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래핀을 만든 뒤에는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은나노선 그물을 만들어 그래핀으로 덮어야 했는데, 이 과정을 손에 익히는 데에도 4개월 가까이 걸렸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이를 통해 은나노선을 그래핀으로 덮는 효율적인 방법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교수팀은 올해 초 그래핀으로 구리나노선을 코팅하는 기술을 미국에서 특허출원하고 현재 심사 중이다. 연구팀은 현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유기태양전지에 그래핀 구리나노선 전극을 적용한 뒤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