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태양 흑점도 없고, B급 이상의 플레어도 없네요. 태양에서 날아오는 입자 수도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인 편이어서 오늘 우주 날씨는 전반적으로 괜찮습니다. 다만 오전 7시경부터 태양 입자 수가 조금씩 늘고 있어 향후 며칠간 주의해서 지켜봐야 합니다.”
10월 11일 오후 3시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우주환경감시실. 김록순 우주과학본부 태양우주환경그룹 선임연구원이 화면을 보며 설명했다. 거대한 상황판 왼쪽에는 태양 관측 위성이 촬영한 태양의 실시간 영상이, 오른쪽에는 현재 지구자기장의 상태와 지구로 날아오는 입자들이 그래픽으로 나타났다.
항공기 102편 북극항로 우회
한동안 잠잠했던 태양의 움직임이 최근 심상치 않다. 9월 6일 오후 8시 53분(한국시간) 태양에 X9.3 등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태양 흑점 폭발이 발생했다. 2006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강력한 폭발이다. 이날부터 5일간 X 등급 폭발이 네 차례나 발생했다.
이 여파로 태양 표면에서는 코로나질량방출(CME·Coronal Mass Ejection)이 왕성해졌다. 양성자, 중성자 등 입자들이 대거 방출되면서 ‘태양폭풍’이 몰아친 것이다. 결국 9월 8일 오전 9시 10분 정부는 우주전파재난 위기경보인 ‘관심’을 발령했다. 관심은 우주전파재난 발생 가능성이 증가할 때 발령하는 1단계 경보다.
태양 흑점 폭발 규모는 플레어에서 나오는 X선의 세기로 등급을 매긴다. 플레어는 태양 표면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돌발적으로 다량의 에너지가 방출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주로 흑점에서 발생한다. 흑점은 대류가 원활하지 않아 에너지가 태양 표면으로 잘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다. 때문에 흑점에 에너지가 모이다가 어느 순간 폭발을 일으킨다.
김 선임연구원은 “태양 흑점 폭발에서 방출되는 X선의 세기에 따라 A, B, C, M, X 등 5개 등급으로 나타낸다”며 “A가 가장 약하고 X가 가장 세다”고 설명했다. 등급이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X선은 10배 강력해진다.
문제는 X선이 지구에 미칠 영향이다. 플레어가 발생시킨 X선은 8분 19초 만에 지구에 도달해 전리층을 뒤흔든다. 전리층은 전파를 반사해 무선통신을 돕는 영역인 만큼 전리층이 교란되면 군 단파통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에 일대 혼란이 발생한다. 가령 X선이 전리층의 두께를 변화시키면 인공위성의 신호 전달 시간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위치 계산에도 오차가 생긴다.
강한 플레어는 대부분 태양폭풍도 동반한다. 빠른 속도로 방출된 입자들은 보통 2~3일 뒤 지구를 덮친다.
고에너지 입자의 경우 수 시간 만에 지구에 도달하기도 한다. 지구의 유일한 보호막인 지구자기장이 이들 입자의 유입을 막아 대개 지상까지 오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구자기장을 따라 입자들이 극지로 이동하면서 극지를 지나는 항공기가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다. 또 입자에너지 때문에 유도전류가 생겨 전자기기가 고장나거나 정전,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재형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 연구사는 “우리나라 항공기 102편이 북극항로를 우회했다”며 “이번 플레어로 특별한 피해는 입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극항로를 지나지 않고 우회하면 북미 노선의 경우 비행시간이 1시간가량 늘어난다. 이 연구사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확인한 결과 미국의 경우 GPS 장애, 항공기 단파 통신 장애, 전력 불안정으로 인한 정전, 허리케인 추적용 기상관측시스템 장애 등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태양폭풍 발생 3일 전 정확히 예측”
전문가들은 현재 태양 활동이 극소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태양은 약 11년 주기로 흑점 수가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태양 활동도 이 주기에 따라 강해졌다가 약해지기를 반복한다.
2012~2014년은 태양 활동이 가장 활발한 극대기였고, 현재는 활동이 감소해 극소기로 접어들었다. 태양 활동이 가장 약한 극소기는 2020년 경이 될 것으로 보이며, 이후 다시 점점 태양활동이 활발해져 2025년 경에 다시 극대기가 올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태양 흑점 폭발은 극소기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 이후 플레어 등급에서 8위를 기록할 만큼 강력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태양 활동 주기를 11년으로 보지만, 짧거나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극소기에서 극대기로 흑점 수가 늘어날 때보다는 흑점 수가 정점을 찍고 점점 줄어들면서 극소기를 향할 때 강력한 플레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이런 경우”라고 설명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또 “극대기에서 극소기로 향할 때 강력한 태양 폭발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이 없다”며 “적은 수의 흑점에 더 많은 에너지가 모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서는 태양폭풍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최선이다. 천문연은 2007년부터 우주환경예보센터와 우주환경감시실을 운영하며 태양폭풍을 예측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공동으로 운용하는 태양 관측 위성(SOHO·SOlar and Heliospheric Observatory)과 NASA가 운용하는 태양 감시 위성(SDO·Solar Dynamics Observatory) 등 태양 관측 위성의 데이터를 제공 받는다.
김 선임연구원은 “태양 관측 데이터는 무료로 제공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스탠퍼드대와 직접 연결된 통신망을 이용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고 있으며, 이 데이터를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 분석 모델은 천문연이 자체 개발해 쓰고 있다. 현재 태양폭풍 예측 정확도는 70% 정도. 김 선임연구원은 “이 모델을 이용해 9월 8일 발생한 태양폭풍 세기를 3일 먼저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밝혔다.
천문연은 2021년 국제우주정거장에 설치할 코로나그래프를 NASA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코로나그래프는 인공적으로 태양면을 가려서 태양 주변의 대기층인 코로나를 관측하는 장비다.
태양폭풍으로 통신이 두절되거나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국가적인 재앙이 될 수 있다. 정부는 2013년 우주전파 재난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만들고,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의 위기 경보에 따라 위성, 항공, 항법, 전력, 방송통신 등 관련 기관의 행동 요령을 지원하고 있다. 매뉴얼은 지금까지 6차례 개정됐으며, 올해 한 차례 더 개정을 거쳐 연말에 배포될 계획이다.
이 연구사는 “개인 수준에서의 태양폭풍 대응 매뉴얼은 아직 없다”며 통신 두절이나 정전, 단수 등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개인 수준의 매뉴얼도 내년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