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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강의실 밖 발생학 강의

발생학 강의 ➏



첫 번째 질문_세포,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발생학 연구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은 ‘배아의 세포가 어떻게 특정한 기능과 모양을 가진 성체 세포로 분화하는가’입니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것도 많은 초등학생이 하나의 직업을 가진 성인으로 자라듯이, 배아세포 역시 장차 성체의 여러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1800년대 후반의 과학자들은 배아세포가 어떻게 분화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일종의 ‘운명론’으로 답했습니다. 즉, 배아가 발달을 막 시작할 때 이미 어떤 세포로 분화할지 정해져있다는 거죠. 이런 이론이 나온 배경은 미더덕을 대상으로 한 배아 발달 연구입니다. 과학자들은 미더덕 배아가 단 두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을 때 그중 하나에만 노란색 색소가 있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이 색소는 배아가 유충이 됐을 때 꼬리 근육 세포에서 발견됐습니다. 이로써 노란색 색소를 가진 배아세포는 꼬리근육 세포가 될 운명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됐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은 곧 뒤집어집니다. 1890년대 초 독일의 철학자이자 생물학자인 한스 드리슈는 성게의 배아가 4세포기일 때 세포들을 서로 떼어 내면 각각 독립적인 배아로 발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상하죠? 운명론이 맞다면 세포들은 어떤 부분으로 발달할지 이미 정해져 있고, 서로 떨어지면 정상적인 배아로 발달할 수 없어야 하는데요.

독일의 발생학자 한스 슈페만과 힐데 맨골드가 실험으로 증명한 도룡뇽 배아의 세포 유도작용. 배를 만들어야 할 세포가 유도작용에 의해 등으로 분화한 결과 머리가 두 개인 올챙이가 만들어졌다.

쑥덕쑥덕’ 대화하며 분화 방향 정해

이렇게 세포의 발달이 사전에 정해진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과학자들은 다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아세포들이 무슨 세포로 분화해야 하는지 언제, 어떻게 결정하느냐는 거죠. 이 질문의 답은 여러 가지인데요. 그 중 하나가 주변 세포의 영향을 받아 분화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유도 작용’이라고 합니다. 유도 작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포 간의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세포들이 서로 대화를 한다는 게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요. 세포들은 사실 주변에 있는 세포들과 수다를 많이 떱니다. 한 세포에서 방출된 물질이 바로 옆 세포의 수용체에 붙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방출 물질 없이 서로 딱 붙어서 직접 신호를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세포들도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세포의 유도과정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을 하나 소개할게요. 1924년 독일의 발생학자 한스 슈페만과 힐데 맨골드가 발표한 실험입니다. 슈페만은 훗날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죠. 두 사람은 도룡뇽의 배아 두 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첫 번째 배아에서 훗날 등쪽의 구조를 만들 부분을 떼어내 두 번째 배아에 붙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디에 붙였냐는 것인데요. 연구팀은 떼어 낸 배아 조직을 두 번째 배아에서 훗날 배 부분을 만들 부분에 붙였습니다. 결과는 괴상했습니다. 마치 샴쌍둥이처럼 머리가 두 개인 올챙이가 나왔거든요(왼쪽 사진). 두 번째 배아로 이식된 첫 번째 배아의 세포들이 유도 작용을 일으켜 원래는 배를 만들어야 할 세포가 등으로 분화하게 된 결과였습니다.
 
두 번째 질문_체세포 하나가 개구리로 자란다?

초기 배아세포들은 성체의 그 어떤 세포로도 발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했죠. 재미있게도 이것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특정한 하나의 세포가 돼버리니까요. 배아세포는 어쩌다 무한한 가능성을 잃는 걸까요?


과학자들이 처음 내놓은 그럴듯한 가설은 세포들이 분화하는 동안 유전물질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근육의 기능에 필요한 유전자만 남고 다른 유전자들이 사라지면 세포는 근육세포가 되고, 신경세포에 필요한 유전자만 남으면 신경세포가 된다는 가설입니다.

분화된 체세포의 능력은 어디까지?

그런데 영국의 발생생물학자 존 거든이 여기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개구리로 ‘핵 치환’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수정되지 않은 개구리 난자를 준비해 내부 유전물질을 파괴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개구리의 위장세포에서 핵을 빼내 준비한 난자에 삽입했습니다. 분화 과정 중에 유전자가 유실된다면, 위장세포 핵에는 오직 위장세포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만 남아 있을 테니 핵을 이식 받은 난자는 올챙이로 발달할 수 없어야 하죠. 하지만 거든의 실험에서 핵 치환된 726개의 세포 중 10개가 올챙이로 발달했습니다. 이는 분화된 체세포(위장세포)에도 다른 종류의 세포를 만들 수 있는 유전 물질들이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 정설을 뒤집는 거든의 실험에 많은 과학자들은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난자의 유전물질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아서, 체세포의 핵이 아닌 난자의 남은 유전물질이 올챙이의 발달을 도운 것 아닌가 따졌죠. 일리가 있는 지적에 거든은 조금 다른 핵 치환 실험을 구상했습니다. 피부색이 흰 개구리와 검은 개구리를 준비한 뒤, 흰 개구리에서 분화한 체세포를 떼어 내 검은 개구리의 난자에 삽입하는 겁니다. 앞서 한 실험처럼 난자의 유전물질을 모두 파괴시킨 뒤에요.

이렇게 만들어진 핵 치환 수정란들은 몇 달 후 개구리가 됐는데 모두 다 피부색이 흰 개구리였습니다. 난자의 유전물질이 아닌, 분화된 체세포의 유전물질이 개체의 발달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더 정확하게 증명한 셈입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세포가 분화해 특정한 기능과 모양을 갖게 되는 것은 유전물질이 유실돼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유전자가 발현되기 때문임을 밝혀냈습니다. 거든은 여기에 기여한 공로로 2012년에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거든의 실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핵 치환된 수정란이 발생에 성공할 확률이 고작 1.4%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726개 중 10개). 분화된 체세포라도 수정란처럼 개체 발달에 필요한 유전자를 모두 갖고 있지만, 실제로 다른 종류의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은 아주 작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분화라는 과정은 되돌리기 아주 어렵습니다. 사실 분화된 체세포가 너무 쉽게 다른 세포로 변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서운 일일 거예요. 자고 일어났는데 피부세포가 신경세포로 변해 있다거나 위장세포가 근육세포로 변해 버렸다고 생각해보세요. 발생은 이렇게 신비롭습니다.



최영은_yc709@georgetown.edu
미국 바드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발생학 및 재생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우는 과학이 아닌 질문하는 과학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과학교육에 발을 담그게 됐다.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부에서 유전학, 발생학 등을 가르치며 새로운 대학 과학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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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은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 에디터

    이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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