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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때 아닌 ‘개 코’ 논란 사람도 개 만큼 맡는다!


후각이 예민해 아주 옅은 향기라도 잘 맡고, 서로 다른 냄새를 잘 구분하는 사람을 ‘개 코’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분간이 되지 않는 냄새를 척척 맞히는 모습이 마치 마약을 탐지하는 훈련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식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람 코의 능력이 개 코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앞에는 세 가지 원두가 놓여 있다. 하나는 다크초콜릿처럼 달콤 쌉싸름하면서도 비에 젖은 흙냄새가 나는 에티오피아산이고, 두 번째는 누룽지처럼 구수한 향기를 내면서도 달착지근한 꽃향기가 어려 있는 과테말라산이다. 세 번째는 붉은 과일과 와인의 향기가 섞여 있는 듯이 시큼한 콜롬비아산이다. 원두마다 향기가 다 다르고, 수많은 향기가 한 데 어우러져 ‘커피향’을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마다 냄새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냄새만 맡고도 주변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정확하게 찾아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좋은 냄새인지 불쾌한 냄새인지 정도만 안다. 냄새에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미세하게 나는 냄새를 알아채기도 한다. 마치 ‘개 코’가 달린 것처럼 말이다.


개 코는 커녕 쥐 코만도 못하다?
사람보다 동물의 후각이 훨씬 뛰어나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프랑스의 의사이자 비교해부학자인 폴 브로카 박사다. 브로카 박사는 대뇌의 각 부분의 기능, 특히 언어를 담당하는 중추인 ‘브로카 영역’을 알아낸 업적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람과 동물의 뇌를 해부학적으로 비교해 서로 다른 특성을 연구했다.

브로카 박사는 사람의 두뇌가 다른 동물에 비해 명석한 이유를 전두엽에서 찾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후각능력에 대해서는 사람의 뇌가 다른 동물의 뇌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점도 발견했다. 뇌의 앞부분에서 후각 정보를 인식하는 후각신경구를 관찰했더니 다른 동물은 바깥으로 노출돼 있는 반면, 사람은 전두엽의 안쪽 깊숙한 부분에 들어 있었다. 뇌 전체에 대한 상대적인 크기를 비교해보니 무척 작았다.

후각신경구의 크기만 놓고 보면 사람(약 60mm3)이 쥐(3~10mm3)보다 크다. 하지만 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보면 사람(0.01%)이 쥐(2%)보다 훨씬 작다. 개(0.31%)보다도 훨씬 작다.
(doi: 10.4067/S0717-95022011000300047)

그는 해부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포유류를 후각이 예민한 그룹과 둔감한 그룹으로 나눴다. 사람은 둔감한 그룹에 속했다. 그런데 사람을 비롯해 유인원, 고래 등 둔감한 그룹에 속한 동물은 전두엽이 발달해 지능이 높고, 생존하는 데 후각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브로카 박사는 “시각과 지능이 발달하면서 생존에 덜 필요한 후각이 퇴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냄새를 받아들이는 후각수용체가 분포하는 넓이도 ‘개 코’ 신화를 부추겼다. 미국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의 리처드 액설 박사와 미국 하버드대 신경생물학과의 린다 벅 교수는 사람과 쥐, 개의 후각상피(콧구멍 안쪽의 윗부분으로 후각세포가 모여 있는 부분)를 관찰했다. 그리고 종에 따라 후각상피에 후각수용체가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넓게 분포하고 있는지 비교했다. 그 결과 후각수용체가 분포하는 넓이는 개, 쥐, 사람 순이었다. 심지어 개는 사람보다 약 40배나 더 넓었다. 개는 후각수용체의 개수도 사람(약 1000만 개)에 비해 100배나 많은 약 10억 개였다.

유전체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과학자들은 후각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도 했다. 이 역시 사람 코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후각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는 사람과 쥐가 약 1000여 개로 서로 비슷했다. 하지만 사람 유전자 중에서 실제로 발현되는 것은 약 350개뿐이었다. 쥐(약 800개)와 비교해도 무척 적은 수치다. 각각의 수용체에는 각기 다른 분자가 붙으니,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냄새 분자의 종류는 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사람 코의 능력

사람은 물질이 갖고 있는 분자 중 공기 중에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을 냄새로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냄새는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화학분자다. 사람의 코가 냄새를 맡는 원리를 이해하고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의 후각이 개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냄새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후각수용체가 냄새 분자를 어떻게 인지하는지 알아보자.

관여하는 수용체 조합에 따라 냄새도 천차만별
후각수용체의 각기 다른 구조를 한눈에 비교하기 좋게 색깔로 구분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분자는 노란 수용체에만 붙어 음식이 상한 듯한 악취를 낸다. 하지만 노란 수용체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수용체에도 붙을 수 있는 세 번째 분자는 과일처럼 시큼하고 달달한 향기를 낸다.

반전! 후각수용체 ‘조합’ 따지면 개 코 못지않아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5월 12일 자에는 이런 ‘정설’을 뒤엎는 리뷰 논문이 실렸다.(doi:10.1126/science.aam7263) 미국 럿거스대 심리학과 존 맥건 교수는 몇 년 동안 나온, 후각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연구한 결과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논문의 제목에서부터 “사람의 후각능력이 동물보다 떨어진다는 개념은 19세기 미신(myth,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의미로 표현했다)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브로카 박사가 주장한 대로 해부학적인 측면에만 집중한 탓에 사람의 후각을 과소평가해왔다는 것이다.
 
맥건 교수는 단순히 후각신경구의 크기나 후각세포의 분포만으로는 후각능력을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다양한 냄새를 맡는 데 후각수용체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냄새는 단 하나의 냄새 분자로 정의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종류가 각기 다른 원두의 향기를 맡을 때를 다시 떠올려보자. 수많은 향기가 한 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커피 향’이 된다.

또 같은 냄새 분자라도 농도가 얼마나 짙은가에 따라 좋은 향기 또는 악취가 될 수 있다. 대변에 들어 있는 냄새 분자 중 하나인 인돌은 농도가 짙을 때는 똥냄새가 난다. 하지만 자스민이나 우롱차에서는 농도가 옅고, 은은한 꽃향기가 난다. 결국 어떤 분자들이 각각 어떤 수용체에 붙는지 여부(조합)와, 농도에 따라 냄새가 정해진다. 그래서 단 26개의 알파벳으로도 만들 수 있는 단어가 무한한 것처럼 후각수용체의 조합을 통해 맡을 수 있는 냄새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사람이 구분하는 냄새의 수는 약 1만 가지다.

맥건 교수는 후각수용체의 수보다 오히려 각 후각신경구에 있는 신경세포의 개수를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2014년 ‘신경해부학 저널(doi:10.3389/fnana.2014.00023)’과 ‘플로스원(doi:10.1371/journal.pone.0111733)’에 실린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두 연구 결과를 보면 포유류의 후각신경구에 있는 신경세포 수는 약 1000만 개씩으로 대부분 큰 차이가 없었다. 사람의 후각능력이 쥐나 토끼, 원숭이 등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증거다.

후각신경구의 크기가 서로 다른 데도 신경세포의 수가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맥건 교수는 “그저 (후각신경구를 이루는)근섬유 개수가 많기 때문”이라면서 “기관의 크기와 감각을 느끼는 능력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람과 동물마다 잘 맡는 냄새가 있다
그렇다면 왜 개가 사람에 비해 냄새를 유별나게 잘 맡는 것처럼 보일까. 맥건 교수는 “동물에 따라 잘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개가 수많은 짐 사이에서 냄새만으로 코카인을 찾아내는 비결은 사람보다 코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코카인 같은 냄새 분자에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사람이 잘 맡는 냄새를 개가 잘 못 맡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개나 다른 동물에 비해 잘 맡을 수 있는 냄새는 커피향(3-메르캅토-3-메틸부틸포름산염)과 바나나향(초산 아밀) 등이다.

2006년 ‘세포 및 분자 생명과학’ 저널에 실린 연구 결과(doi:10.1007/s00018-006-6109-4)’와 2015년 ‘호르몬과 행동학’ 저널에 실린 연구 결과(doi:10.1016/j.yhbeh.2014.06.003)를 보면 사람은 다른 포유류에 비해 서골비 기관이 덜 발달했다. 서골비 기관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 분자보다는 물이나 오줌 같은 액체에 녹아 있는 비휘발성 냄새 분자를 더 잘 맡는 후각기관이다. 동물은 이 기관을 이용하기 때문에 짝짓기 상대를 찾는 데 페로몬을 이용한다.

맥건 교수는 “대부분의 동물은 먹이를 찾거나 해로운 물질을 분간하고, 영역을 표시하거나 짝을 찾는 데 후각을 활용한다”며 “(이런 활동이 약한)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후각을 활용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사람은 땀 냄새 등 체취를 인식하는 능력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다.

수많은 연구 결과는 사람의 후각 능력에 대한 오명을 벗기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뇌가 감추고 있는 수많은 신비를 하나씩 알아가기 위해서라도 후각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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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일러스트

    정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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