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및 번역가로,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부문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 014년과 2016년 SF어워드 단편 부문 대상, 2 015년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여러 지면에 SF 단편을 실었으며, ‘뉴로맨서’, ‘블라인드 사이트’, ‘이중도시’ 등의 외서를 번역했다.
노마는 휘파람을 불면서 <;우주의 모든 유원지>; 한 구석에 있는 사격장 선반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 다녀간 손님 두 사람이 먹다가 흘린 음식 찌꺼기를 쓸어내고, 터치 반응형 제어판을 적당히 조작해 선반 맞은편에 있는 목표물 화면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 보았다. 화면에는 곰돌이 여섯, 화분에 담겨 춤을 추는 해바라기 여섯, 비웃는 것처럼 기이한 미소를 띠고 있는 정체불명의 곤충 여섯이 줄을 맞춰 떠올랐다.
노마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금속으로 만든 의자를 점포 앞에 꺼내놓고 앉았다. 그리고 <;우주의 모든 유원지>; 바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개의 아침 태양에서 흘러나오는 직사광선이 아침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대류 현상이 활발해지면서 노랗게 물들어가는 대기 아래쪽으로 바람이 불자 모래먼지가 파도처럼 일었다가 가라앉고 있었다.
노마는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금도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이 항성계의 이중성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다시 뜰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릴 수 있었다. 꼭 필요한 경우라면 <;우주의 모든 유원지>;가 있는 앤트워프 행성의 시간으로 열흘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그가 가장 먼저 몸에 익혔던 습관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습관은 그가 맡고 있는 임무에 잘 어울렸다.
“어제 손님이 왔다면서? 두 사람이라고 했지?”
노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지구의 유물인 ‘롤러코스터’와 ‘자이로드롭’을 담당하고 있는 유청이었다.
“응. 알파센타우리 B에서 왔다더라고.”
유청은 지나치게 긴 바짓단으로 땅을 긁으며 다가오더니 사격장 선반에 몸을 기댔다.
“신기하군. 관광철은 아직 멀었는데.”
노마는 유청의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호기심을 애써 무시하며 대답했다.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잖아.”
하지만 유청은 자신의 궁금증을 반드시 풀려고 마음이라도 먹은 것처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알파센타우리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웜홀을 둘이나 거쳐야 해. 그런데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노마는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유청을 바라보았다.
“장사를 하다보면 별의 별 손님이 다 있는 법이야. 새삼스럽게….”
유청은 노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맞아. 별의 별 손님이 다 있지. 예를 들어 저 사람처럼.”
노마는 눈을 찡그리고 유청이 가리키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화살촉처럼 생긴 우주선 한 대가 대기층 안으로 진입하더니 앤트워프 공항 쪽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유청이 말을 이었다.
“우주정거장에서 착륙선으로 갈아타지 않고 곧장 지상에 돌입할 수 있는 가변형 우주선이야. 부자들이나 쓰는 물건이지. 그게 아니라면 기동성이 필요한 긴급 상황에 쓰거나. 이 행성에 최근 들어 그럴 일이 있었나?”
“아니. 없었어. 은하 연방에는 큰 일이 있었지만….”
노마는 사족을 덧붙이다 말고 쓸데 없는 소리를 했다고 후회했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몰라. 유원지 사격장이나 지키는 내가 뭘 알겠어.”
유청은 최근 들어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바람에 수가 줄어드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거야 난들 다를까.”
“나하고는 다르지. 자네는 이 유원지를 반이나 사들이고 분양 했잖아. 자이로드롭도 새로 설치했고.”
유청이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은하 연방 중심지에서 전쟁이 시작됐고 팽창주의자들이 우위를 점했다곤 하지만,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겠어. 우린 중력 변화에 맞춰서 놀이기구나 운영하는 사람들인데. 안 그래?”
노마는 입술을 빨아들여 이로 잘근잘근 씹다가 유청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가게 문을 열고 있을 거야?”
유청이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말고는 할 일이 없잖아. 알면서 왜 물어?”
“오늘은 문을 닫고 들어가 쉬는 게 좋겠어.”
“무슨 소리야? 조금 전에 공항으로 날아간 손님이 유원지에 올 텐데.”
“평범한 손님이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저 사람은….”
유청은 노마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원래 별의 별 손님이 다 있는 법이잖아. 장사란 게 다 그렇지.
손님을 무서워해서야 돈을 어떻게 버나?”
유청이 웃으며 대꾸하더니 갑자기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노마는 갑자기 정색을 하는 유청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나 말이야?”
유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나질 않아. 오래돼서 그런가봐.”
노마는 거짓으로 대답했다. 은하계 내에 펴져 사는 연방 사람 가운데 그보다 시간 기록에 철저한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자네보다는 먼저 왔어. 그건 확실해.”
유청은 모든 걸 알겠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노마는 점점 마음을 잠식하는 불안감을 애써 가라앉히고 말했다.
“오늘 점심은 혼자 먹어.”
“왜, 약속이라도 있어?”
노마는 길게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자세한 건 묻지 말아줘. 그냥 부탁하는 거야.”
유청은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거야 뭐 어려운 일인가. 알았어. 어차피 내일은 또 같이 먹을 텐데 뭐. 그럼 수고하라고.”
노마는 바지 끄트머리를 질질 끌며 멀어져가는 유청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두 번 다시 유청과 점심을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
노마는 특별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는 터치 반응식 제어판을 두드리고 매만졌다. 커다란 화면에 줄을 맞춰 서 있던 곰돌이와 해바라기와 곤충의 영상이 사라졌다. 그는 제어판에 입자 프린터 설정을 입력했다. 그러자 선반 아랫부분이 열리면서 곰돌이와 해바라기와 곤충 인형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인형들을 잔뜩 품에 안고 선반 반대편에 조심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진열을 마친 다음 뒤로 물러서서 배치에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그가 영업을 하는 사격장은 먼 옛날 지구에 존재했던 축제용 사격장과 거의 흡사했다.
그는 검지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려보았다. 그러자 곰돌이와 곤충 인형들의 눈동자가 손가락 끝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추적했다. 해바라기들은 그의 동작 덕분에 태양빛의 방향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꽃잎을 흔들었다.
이제 더 이상 준비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의자를 조금 더 바깥쪽으로 끌어낸 다음 앉아서 기다렸다. 기다림이야말로 그가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재능이었다.
공항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 끝자락에서 조금씩 먼지가 떠오르더니 그 속에서 광택이 나는 검은색 점이 튀어나왔다. 점은 곧 차량으로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의 모든 유원지>;입구에서 멈춰 섰다. 노마는 유원지의 입구가 아니라 하늘을 텅빈 눈으로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전자칩들을 활발하게 작동시키고 있었다.
앤트워프에서 보기 드문 가변형 차량의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내렸다. 세 사람은 느린 걸음으로 유원지 입구에 서더니 입장료를 지불했다. 그들은 유원지 안으로 들어서면서 사방에 늘어서 있는 대형 놀이기구들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이윽고 세 사람이 사격장으로 다가왔다. 노마는 오래된 육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세 사람 가운데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남자와 머리가 긴 여성은 어제도 사격장을 찾아왔던 손님이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눈과 입을 전자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여성이 노마를 보고 가장 먼저 알은척을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가게 문을 열었군요.”
노마가 대답했다.
“관광지라는 게 그렇지요. 기다리는 게 일 아니겠습니까.”
여성은 노마가 묻지도 않았건만 새 일행을 소개했다.
“유원지가 너무 재미있어서 친구를 불러왔어요. 연방에 소속된 모든 행성의 전통 놀이기구가 전부 모여 있다니까 흥미를 보이더라고요.”
전자마스크를 쓴 사내가 노마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노마는 하품을 하면서 사내의 몸동작을 관찰했다.
사내가 긴 머리 여성에게 말했다. 노마는 그의 말 속에 숨어있는 명령조를 놓치지 않았다.
“제니, 어떻게 하는 건지 직접 보여주겠어?”
제니라고 불린 여성이 활짝 웃었다.
“아휴, 누가 겁쟁이 아니랄까봐. 알았어. 아저씨, 총 좀 꺼내주세요.”
노마가 말했다.
“계산부터 하셔야죠. 여긴 연방 정보화폐만 받습니다. 결제용칩을 여기에 갖다 대세요.”
제니가 마스크를 쓴 사내를 보며 말했다.
“마크, 돈 좀 내줘.”
마크는 천천히 팔짱을 풀고 오른손을 뻗어 결제를 마쳤다. 그러자 선반 윗면이 열리면서 나무와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공기총이 솟아올랐다. 제니는 공기총의 개머리판을 오른쪽 어깨에 붙이고 자세를 취했다.
챙이 큰 모자를 쓴 사내가 마크에게 말했다.
“반동을 어깨로 흡수하는 총이래. 지구에서는 그런 구조의 무기를 한참 동안 썼다나봐. 저건 그냥 그림이나 맞추는 고무탄이 나가는 거지만 진짜 총은 탄환이…. 어? 아저씨, 그래픽이 아니라 진짜 인형을 세워놨네요?”
마크가 모자를 쓴 사내에게 말했다.
“쿄시로, 나한테 병기의 구조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야? 구형 직사 화기에 대해서라면 내가 너보다….”
제니라는 여성이 두 사람의 말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 다 그만 좀 해. 유원지에 왔으면 직업 자랑은 그만두고 좀 놀자고. 아저씨, 이제 쏘면 되죠?”
제니는 공기총의 총구에 집중하더니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고무탄환은 그녀의 생각과 달리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입가를 찡그리면서 다른 인형을 노렸고, 여섯 번을 시도한 끝에 결국 명중시켰다.
“좋았어! 어제는 하나도 못 맞췄는데 이제 적응했나봐. 아저씨, 인형 주세요.”
노마는 선반 아랫부분을 열고 제니가 맞춘 것과 똑같은 해바라기 인형을 꺼내 주었다. 제니는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해 볼 사람?”
제니가 묻자 마크와 쿄시로는 고개를 저었다. 제니는 신이 났는지 다시 선반에 몸을 의지하고 사격에 몰두했다. 노마는 그런 제니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마크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노마에게 물었다.
“은하계에 이런 행성은 하나뿐이죠?”
노마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만.”
“놀이기구라면 입자 프린터로 얼마든지 만들어볼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체험해보는 이유가 뭘까요?”
노마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지금까지 손님들에게 수백 번, 수천 번 답했던 질문이었다.
“중력 때문이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암흑물질 소용돌이가 있거든요. 소용돌이는 주기적으로 강도가 변해요. 이 행성도 그 영향을 받고요. 중력가속도를 이용하는 놀이기구들은 각 행성의 중력에 맞춰야 가장 효과가 큰데, 그러자면 인공중력장을 놀이기구마다 만들어줘야 하죠.”
마크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것처럼 시큰둥하게 물었다.
“암흑물질 소용돌이 근처에 있으면 인공중력장을 만들기 편한가보군요.”
“인공중력장을 만들기 좋은 평균 최적수치가 있어요. 이 행성은 3개월 동안 소용돌이에 접근하면서 최적중력에 맞춰지죠. 그 때가 바로 관광철이고요.”
“그 3개월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옵니까?”
노마는 잠시 계산을 해보고 대답했다.
“글쎄요. 어림잡아 2만 명은 될 걸요.”
마크는 두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물었다.
“그렇다면 은하 곳곳의 소문도 들을 수 있겠군요. 네트워크를 통해서 기록이 남는 얘기들 말고요.”
노마가 얼굴을 천천히 굳히면서 말했다.
“그렇기는 하죠. 그리 흥미로운 건 없지만요.”
“혹시 불멸자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노마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불멸자라뇨?”
그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마크가 아니라 쿄시로였다.
“단어 뜻 그대로예요, 아저씨. 죽지 않는 사람. 영원히 존재하는 사람말이에요.”
이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노마였다.
“육체적인 죽음을 극복한 건 오래 전 일 아닙니까? 입자 프린터로 육체를 만들고 기억을 복사하면 되잖아요. 허가만 받으면 되는 일인데. 이런 세상에 불멸자라는 게 무슨 의미가….”
마크가 노마의 말을 끊었다.
“바로 그 허가가 문제예요. 아저씨도 입자 프린터로 육체를 갱신해봤다면 잘 알고 있겠죠. 은하계에 존재하는 입자의 수는 유한해요. 입자는 곧 정보이고, 따라서 정보량으로 치환한 은하계의 물질량 역시 유한하죠. 그래서 입자 프린터의 사용량엔 한계가 있어요. 아무나 마음대로 뽑아 썼다가는 은하계의 이동 궤도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블랙홀이나 중성자성의 생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육체를 갱신할 때도 전이할 수 있는 기억량에 제한을 두고 있단 말이에요.”
노마는 손으로 무릎을 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구먼요.”
마크는 입꼬리를 올리고 노마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허가량에 제약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인류가 기술적인 특이점을 넘어서고 우주로 진출하기 전부터 살아왔던 사람들 가운데, 육체를 전면적으로 갱신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단 한 번도. 그 사람들은 정보사용량에 제약을 받지 않아요. 따라서 위험한 사람들이죠. 마음만 먹으면 은하계 전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거든요, 물론 그러려면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겠지만.”
노마는 제니가 공기총에서 몸을 떼고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을 알아챘다. 쿄시로는 모자를 고쳐 쓴 다음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마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사격장 옆에 서 있는 자동판매기로 다가가서 음료수를 구입했다. 그는 갈색 음료로 목을 축인 다음 다시 노마에게 다가왔다.
“혹시 연방 뉴스는 보고 있나요?”
노마가 대답했다.
“정치나 군사 뉴스는 관심이 없어서 안 봅니다. 초신성 폭발이나 암흑물질 안정성에 대한 정보는 받아보지만. 유원지 매출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중력 수치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시군요. 그럼 연방의 미래를 결정할 큰 사건 하나를 알려 드리죠. 이 행성 시간으로 약 3개월 전에 수도 항성계를 사이에 두고 전쟁이 벌어졌어요. 팽창주의 동맹이 정권을 잡았죠. 팽창주의 정권은 은하계의 안정을 위협하거나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는 불멸자들을 모두 잡아들이기로 했어요. ‘정보량은 평등해야한다.’ 이게 바로 새 정권의 핵심 정책이죠.”
노마는 눈썹 주변을 긁으면서 하품을 했다.
“변방 유원지 행성에 사는 노인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정권이 바뀐들 유원지 장사가 망할 것도 아니고.”
쿄시로가 갑자기 킬킬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요, 장사가 제일 중요하지. 우리도 장사꾼이라 그 마음을 잘 알죠.”
노마가 물었다.
“그래요? 무슨 장사를 하십니까?”
쿄시로가 대답했다.
“돈을 받고 고객이 원하는 사람을 찾아주는 장사예요. 요즘은 새로 들어선 정부에게 의뢰를 받아서 은하 곳곳을 뒤지고 있죠. 그러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고요.”
마크가 손을 들어 쿄시로의 말을 막았다.
“너스레는 이 정도로 해두는 게 좋겠군요. 이제 장사를 접을 때가 됐어요, 아저씨. 아니, 불멸자라고 불러야 하나? 입자 프린터 제어장치를 끄고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 겁니다.”
노마가 허리를 곧게 펴자 쿄시로가 경계 태세를 취하며 모자의 챙에 손을 얹었다. 제니는 경품으로 받은 곰 인형 뒤에 손을 숨기고 있었다.
마크가 눈과 입을 가리고 있는 전자마스크에 음성으로 지시를 내리자 그의 등 뒤에서 드론 모듈 여섯 기가 튀어나와 공중에 자리를 잡았다.
노마는 상대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려는 것처럼 천천히 두 손을 들고 말했다.
여성이 노마를 보고 가장 먼저 알은척을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가게 문을 열었군요.”
노마가 대답했다.
“관광지라는 게 그렇지요. 기다리는 게 일 아니겠습니까.”
여성은 노마가 묻지도 않았건만 새 일행을 소개했다.
“유원지가 너무 재미있어서 친구를 불러왔어요. 연방에 소속된 모든 행성의 전통 놀이기구가 전부 모여 있다니까 흥미를 보이더라고요.”
전자마스크를 쓴 사내가 노마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노마는 하품을 하면서 사내의 몸동작을 관찰했다.
사내가 긴 머리 여성에게 말했다. 노마는 그의 말 속에 숨어있는 명령조를 놓치지 않았다.
“제니, 어떻게 하는 건지 직접 보여주겠어?”
제니라고 불린 여성이 활짝 웃었다.
“아휴, 누가 겁쟁이 아니랄까봐. 알았어. 아저씨, 총 좀 꺼내주세요.”
노마가 말했다.
“계산부터 하셔야죠. 여긴 연방 정보화폐만 받습니다. 결제용칩을 여기에 갖다 대세요.”
제니가 마스크를 쓴 사내를 보며 말했다.
“마크, 돈 좀 내줘.”
마크는 천천히 팔짱을 풀고 오른손을 뻗어 결제를 마쳤다. 그러자 선반 윗면이 열리면서 나무와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공기총이 솟아올랐다. 제니는 공기총의 개머리판을 오른쪽 어깨에 붙이고 자세를 취했다.
챙이 큰 모자를 쓴 사내가 마크에게 말했다.
“반동을 어깨로 흡수하는 총이래. 지구에서는 그런 구조의 무기를 한참 동안 썼다나봐. 저건 그냥 그림이나 맞추는 고무탄이 나가는 거지만 진짜 총은 탄환이…. 어? 아저씨, 그래픽이 아니라 진짜 인형을 세워놨네요?”
마크가 모자를 쓴 사내에게 말했다.
“쿄시로, 나한테 병기의 구조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야? 구형 직사 화기에 대해서라면 내가 너보다….”
제니라는 여성이 두 사람의 말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 다 그만 좀 해. 유원지에 왔으면 직업 자랑은 그만두고 좀 놀자고. 아저씨, 이제 쏘면 되죠?”
제니는 공기총의 총구에 집중하더니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고무탄환은 그녀의 생각과 달리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입가를 찡그리면서 다른 인형을 노렸고, 여섯 번을 시도한 끝에 결국 명중시켰다.
“좋았어! 어제는 하나도 못 맞췄는데 이제 적응했나봐. 아저씨, 인형 주세요.”
노마는 선반 아랫부분을 열고 제니가 맞춘 것과 똑같은 해바라기 인형을 꺼내 주었다. 제니는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해 볼 사람?”
제니가 묻자 마크와 쿄시로는 고개를 저었다. 제니는 신이 났는지 다시 선반에 몸을 의지하고 사격에 몰두했다. 노마는 그런 제니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마크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노마에게 물었다.
“은하계에 이런 행성은 하나뿐이죠?”
노마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만.”
“놀이기구라면 입자 프린터로 얼마든지 만들어볼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체험해보는 이유가 뭘까요?”
노마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지금까지 손님들에게 수백 번, 수천 번 답했던 질문이었다.
“중력 때문이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암흑물질 소용돌이가 있거든요. 소용돌이는 주기적으로 강도가 변해요. 이 행성도 그 영향을 받고요. 중력가속도를 이용하는 놀이기구들은 각 행성의 중력에 맞춰야 가장 효과가 큰데, 그러자면 인공중력장을 놀이기구마다 만들어줘야 하죠.”
마크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것처럼 시큰둥하게 물었다.
“암흑물질 소용돌이 근처에 있으면 인공중력장을 만들기 편한가보군요.”
“인공중력장을 만들기 좋은 평균 최적수치가 있어요. 이 행성은 3개월 동안 소용돌이에 접근하면서 최적중력에 맞춰지죠. 그 때가 바로 관광철이고요.”
“그 3개월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옵니까?”
노마는 잠시 계산을 해보고 대답했다.
“글쎄요. 어림잡아 2만 명은 될 걸요.”
마크는 두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물었다.
“그렇다면 은하 곳곳의 소문도 들을 수 있겠군요. 네트워크를 통해서 기록이 남는 얘기들 말고요.”
노마가 얼굴을 천천히 굳히면서 말했다.
“그렇기는 하죠. 그리 흥미로운 건 없지만요.”
“혹시 불멸자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노마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불멸자라뇨?”
그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마크가 아니라 쿄시로였다.
“단어 뜻 그대로예요, 아저씨. 죽지 않는 사람. 영원히 존재하는 사람말이에요.”
이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노마였다.
“육체적인 죽음을 극복한 건 오래 전 일 아닙니까? 입자 프린터로 육체를 만들고 기억을 복사하면 되잖아요. 허가만 받으면 되는 일인데. 이런 세상에 불멸자라는 게 무슨 의미가….”
마크가 노마의 말을 끊었다.
“바로 그 허가가 문제예요. 아저씨도 입자 프린터로 육체를 갱신해봤다면 잘 알고 있겠죠. 은하계에 존재하는 입자의 수는 유한해요. 입자는 곧 정보이고, 따라서 정보량으로 치환한 은하계의 물질량 역시 유한하죠. 그래서 입자 프린터의 사용량엔 한계가 있어요. 아무나 마음대로 뽑아 썼다가는 은하계의 이동 궤도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블랙홀이나 중성자성의 생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육체를 갱신할 때도 전이할 수 있는 기억량에 제한을 두고 있단 말이에요.”
노마는 손으로 무릎을 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구먼요.”
마크는 입꼬리를 올리고 노마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허가량에 제약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인류가 기술적인 특이점을 넘어서고 우주로 진출하기 전부터 살아왔던 사람들 가운데, 육체를 전면적으로 갱신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단 한 번도. 그 사람들은 정보사용량에 제약을 받지 않아요. 따라서 위험한 사람들이죠. 마음만 먹으면 은하계 전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거든요, 물론 그러려면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겠지만.”
노마는 제니가 공기총에서 몸을 떼고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을 알아챘다. 쿄시로는 모자를 고쳐 쓴 다음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마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사격장 옆에 서 있는 자동판매기로 다가가서 음료수를 구입했다. 그는 갈색 음료로 목을 축인 다음 다시 노마에게 다가왔다.
“혹시 연방 뉴스는 보고 있나요?”
노마가 대답했다.
“정치나 군사 뉴스는 관심이 없어서 안 봅니다. 초신성 폭발이나 암흑물질 안정성에 대한 정보는 받아보지만. 유원지 매출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중력 수치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시군요. 그럼 연방의 미래를 결정할 큰 사건 하나를 알려 드리죠. 이 행성 시간으로 약 3개월 전에 수도 항성계를 사이에 두고 전쟁이 벌어졌어요. 팽창주의 동맹이 정권을 잡았죠. 팽창주의 정권은 은하계의 안정을 위협하거나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는 불멸자들을 모두 잡아들이기로 했어요. ‘정보량은 평등해야한다.’ 이게 바로 새 정권의 핵심 정책이죠.”
노마는 눈썹 주변을 긁으면서 하품을 했다.
“변방 유원지 행성에 사는 노인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정권이 바뀐들 유원지 장사가 망할 것도 아니고.”
쿄시로가 갑자기 킬킬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요, 장사가 제일 중요하지. 우리도 장사꾼이라 그 마음을 잘 알죠.”
노마가 물었다.
“그래요? 무슨 장사를 하십니까?”
쿄시로가 대답했다.
“돈을 받고 고객이 원하는 사람을 찾아주는 장사예요. 요즘은 새로 들어선 정부에게 의뢰를 받아서 은하 곳곳을 뒤지고 있죠. 그러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고요.”
마크가 손을 들어 쿄시로의 말을 막았다.
“너스레는 이 정도로 해두는 게 좋겠군요. 이제 장사를 접을 때가 됐어요, 아저씨. 아니, 불멸자라고 불러야 하나? 입자 프린터 제어장치를 끄고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 겁니다.”
노마가 허리를 곧게 펴자 쿄시로가 경계 태세를 취하며 모자의 챙에 손을 얹었다. 제니는 경품으로 받은 곰 인형 뒤에 손을 숨기고 있었다.
마크가 눈과 입을 가리고 있는 전자마스크에 음성으로 지시를 내리자 그의 등 뒤에서 드론 모듈 여섯 기가 튀어나와 공중에 자리를 잡았다.
노마는 상대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려는 것처럼 천천히 두 손을 들고 말했다.

“정말 내가 테러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나?”
마크가 위협적인 투로 대답했다.
“당신이 테러를 일으키든 유원지에서 평생 가게나 운영하든 그건 상관없어. 우린 당신을 잡아가고 돈만 받으면 되니까.”
노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두 번만 입 밖으로 꺼냈던 얘기를 시작했다.
“너희에게 의뢰를 한 팽창주의자들은 역사가 오래된 집단이야. 출발점은…. 그래, 은하 연방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근원을 추적해보면 지구에서 출발했으니 팽창주의자들 역시 지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옛 지구엔 나치라는 집단이 있었고, 극우파라는 용어가 있었어. 그 줄기를 이어가는 게 바로 팽창주의자들이야. 시대에 따라서 용어나 호칭은 바뀌었겠지만 그자들이 하는 짓은 변하지 않았지. 그자들은 세력을 잡기 위해서 끔찍한 범죄도 마다하지 않아.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뻔뻔하지. 팽창주의자들은 어찌 그렇게 똑같은지, 일단 권력을 잡으면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해. 과거를 세탁하고, 권력을 잡으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일반화를 시도하지.”
마크가 말했다.
“아까 했던 얘기를 그대로 돌려줘야겠군. 우린 정치 얘기에 관심이 없어. 당신을 잡아가면 새 정부는 테러범을 무력화시켰다고 홍보할 테고, 우린 돈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아주 쉽고 깔끔한 사업이지.”
노마는 마크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 마음에 드는 명칭은 아니지만, 나를 포함한 ‘불멸자’들이 정보량 소유에 제한을 받지 않는 건 맞아. 우리는 그 권리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지.”
쿄시로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 권리로 유원지 행성에서 곰인형이나 찍어내고 있나?”
노마가 노려보자 쿄시로는 입을 다물었다.
“우린 모든 것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어. 옛 지구의 나치와 이스라엘과 일본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화성 군부가 목성 콜로니에 어떤 독을 풀었는지, 요로나 구역에서 갑자기 발생한 초신성 폭발을 누가 사주했는지, 현 팽창주의자들이 대행성 병기를 몇 기나 불법으로 제작했는지…. 역사는 반드시 남아야 해. 사실 그대로. 역사를 삭제하려는 시도는, 불멸자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어. 우리 두뇌는 마이크로웜홀을 이용해서 은하계 내에 파편화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한 데 잇고있거든. 우리를 파괴하면 고대역사는 뿔뿔이 흩어지고, 끝내 사라질 거야. 그게 바로 팽창주의자들이 노리는 거지. 너희는 그렇게 야비한 범죄를 돕고 있단 말이야.”
마크가 노마에게 물었다.
“혹시 알파센타우리 B행성에 모여 있는 용병단의 활약도 기록하고 있나?”
노마는 눈을 세 번 깜빡거리고 나서 대답했다.
“구 연방 정부의 행정관 세 명을 암살했고, 쿠마 섹터의 폭탄테러에 관여되어 있고, 연방 정부군에 사살된 단원은 총 여덟 명이군.”
마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젠장, 우리 영업장부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구먼. 이봐, 늙은이. 난 딱 한 가지 원칙이 있어. 우리 사업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사람들은 반드시 죽인다는 원칙. 무릇 장사란 뒤가 깔끔해야 하거든. 따라서….”
불멸자를 찾아온 용병 세 사람은 동시에 무기를 꺼내어 노마를 겨누고 발사했다. 쿄시로가 쓰고 있는 모자에서 나노 미사일들이 가느다란 궤적을 그리며 노마에게 날아들었고, 제니가 품안에서 꺼낸 플라스마 채찍은 수십 갈래로 뻗어나오며 노마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노마가 손가락 끝을 움직이자 사격장에 경품으로 놓여있던 해바라기 인형들이 꽃잎을 활짝 폈다. 쿄시로가 발사했던 나노 미사일들은 꽃잎으로부터 펼쳐진 역장에 걸려 허공에서 멈췄다. 노마는 그와 동시에 다른 손을 뻗었다. 제니가 품에 안고 있던 곰인형이 폭발하며 그녀의 상반신과 함께 흩어졌다. 그러자 잘 성장한 히드라처럼 달려들던 보라색 채찍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마크는 무릎과 팔꿈치에서 강력한 공기를 분사하며 뒤로 날아갔다. 그가 남겨둔 드론 모듈 여섯 기는 일제히 노마를 공격했다. 노마는 금속 의자를 집어 들고 그 속에 숨겨진 방어막을 펼쳐 공격을 튕겨냈다. 그가 방어막 너머로 손가락을 권총처럼 뻗자 사격장에 있던 곰인형과 곤충인형의 눈에서 발사된 고진동 탄환들이 드론 모듈 여섯 기를 모조리 파괴했다.
“빌어먹을 늙은이! 정보량을 역사 보존에 전부 쓴다는 건 거짓말이었군!”
노마는 지지 않고 소리쳤다.
“불멸자란 별명이 괜히 붙었다고 생각하나?”
노마의 말은 허풍이었다. 이론상으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정보량에 한계는 없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정보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팽창주의자나 용병단들의 추적에 노출되기 쉬웠다. 그래서 노마는 역사 보존에 사용하고 남는 호신용 정보량을 최소화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 싸우나 한번 보자고!”
멀찍이 물러난 마크의 등 뒤에서 검정색 가변형 차량이 떠올랐다. 차는 공중에서 여덟 조각으로, 열여섯 조각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조각으로 분리되었다. 노마는 마이크로 웜홀을 열고 병기사 항목을 조회해 보았다. 노마가 불러낸 것은 팽창주의 동맹이 이번 전쟁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군체형 다중 인공지능이었다.
노마는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전투의 승패는 사용가능한 에너지와 정보량에 달려 있었다. 마크가 사용하는 군체 인공지능의 가용정보량은 노마가 호신용으로 할당한 정보량의 세배에 달했다.
마크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표정을 보니 이게 뭔지 알아냈나보군, 역사가 양반. 이 정도 무기라면 불멸자를 얕봤다는 얘기는 안 들어도 되겠지?”
군체 인공지능들은 노마를 완전히 포위했다. 노마는 살인 말벌에 둘러싸인 아기새처럼 절망했다. 단 한 마리의 공격만 직격해도 노마를 중심 노드 삼아 연결되어 있던 역사 정보는 산산이 흩어질 터였다. 노마는 빠져나갈 길 없는 최후를 앞두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불멸자는 몇이나 될까? 불멸자들은 팽창주의 세력이 역사를 삭제하고 다시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서로 연락을 끊고 각자 임무를 수행했다. 한 명이 죽고 그가 모은 데이터베이스가 와해되더라도 다른 불멸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했을 당시 남아 있던 불멸자는 노마를 포함해 총 넷이었다. 그 뒤로 흐른 시간은 옛 지구의 기준을 따르자면 675년이었다.
마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우리 용병단의 범죄 기록을 지울 시간이군.”
군체 인공지능들이 동시에 에너지를 모았다. 노마는 그 에너지의 강도를 피부로 느끼면서, 부디 자신이 마지막 불멸자는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만약 내가 마지막 불멸자라면, 단 하나의 역사를 우주에 남겨야 한다면, 난 무엇을 남겨야 할까?
고대 역사에 관한 링크가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노마는 찰나의 순간에 두뇌를 스치고 지나간 직감을 행동에 옮겼다. 그 직후 파괴적이고 단단하고 적의를 잔뜩 품은 에너지가 노마의 주변을 종횡으로 찢었다.
노마는 눈을 뜨고, 입자 단위로 분해되기 직전 잔뜩 찡그린 마크의 맨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를 따라 군체 인공지능들 역시 증발하고 있었다.
마크와 전쟁병기를 파괴한 에너지 무기의 잔열은 얼마 전 유원지에 새로 자리 잡은 자이로드롭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일 점심을 같이 먹으려면 오늘은 살아남아야지.”
노마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며 물러섰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유청은 긴장이 풀렸는지 숨을 몰아쉬며 노마에게 다가섰다.
노마가 물었다.
“넌 누구지?”
유청이 조금씩 평소 같은 미소를 되찾으며 말했다.
“네가 아직 생각해내지 못한 질문까지 전부 답해줄게. 난 네 편이야. 이 유원지를 조금씩 매입하고 자이로드롭을 새로 만든것도 바로 이 순간 때문이었어. 이제 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아마 너와 같이 떠돌이 생활을 해야겠지.”
노마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잖아.”
“질문이 잘못돼서 그래. 이 유원지에 3개월 동안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유를 잘 생각하고 다시 물어봐.”
노마는 암흑물질 소용돌이를 떠올리고는 질문을 바꿨다.
“넌 어디서 왔지?”
유청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부터 720년 뒤의 미래에서. 난 팽창주의자들의 후예가 은하계를 완전히 장악한 미래에서 왔어. 나치와 이스라엘과 일본의 만행을 기록한 역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미래에서. 암흑물질과 중력자 소용돌이가 이중나선형으로 시간을 관통한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에, 역사를 지키고 팽창주의자들의 궁극적인 승리를 막으려고 온 거야. 네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 덕분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지.”
내가 남긴 기록? 노마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고대 역사의 잠재적인 종말을 앞두고 자신이 죽는 시각과 장소를 마이크로웜홀의 링크 속에 남겨두었다. 유청은 그 기록을 좇아 고대 역사를 살리기 위해 시공을 건너왔던 것이다.
*
노마는 사격장을 매각했다. 유청도 <;우주의 모든 유원지>;와 롤러코스터와 자이로드롭을 팔아 정보화폐를 손에 넣었다. 급하게 전환하느라 두 사람 모두 적잖이 손해를 봤지만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불멸자가 암살을 피해 살아남았다는 소식은 빛의 속도에 따라 우주로 퍼져나갈 터였다. 두 사람은 다른 은신처를 찾아 떠나야했다.
노마는 용병단 암살자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사건을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했다. 그리고 우주선 화면 속에서 점점 멀어지는 앤트워프 행성을 보며 유청에게 물었다.
“네가 과거로 날아와서 역사를 바꿨으니 팽창주의자들도 궁극적으로 패배할까?”
유청은 앤트워프 행성과 그 너머에 있는 암흑물질 소용돌이를 애써 외면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알 수 없지. 내가 알고 있는 미래는 이제 네가 살아남은 이 우주의 미래가 아니니까. 과거를 바꾸는 바람에 분기가 생겨 버렸거든. 내가 이 우주에 대해서 아는 건 단 한 가지밖에 안 남았어.”
노마가 물었다.
“그게 뭔데?”
“네가 마지막 불멸자라는 사실.”
노마는 유청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간단하면서도 두렵고 무거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고대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이제 그가 바로 역사였다.
마크가 위협적인 투로 대답했다.
“당신이 테러를 일으키든 유원지에서 평생 가게나 운영하든 그건 상관없어. 우린 당신을 잡아가고 돈만 받으면 되니까.”
노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두 번만 입 밖으로 꺼냈던 얘기를 시작했다.
“너희에게 의뢰를 한 팽창주의자들은 역사가 오래된 집단이야. 출발점은…. 그래, 은하 연방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근원을 추적해보면 지구에서 출발했으니 팽창주의자들 역시 지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옛 지구엔 나치라는 집단이 있었고, 극우파라는 용어가 있었어. 그 줄기를 이어가는 게 바로 팽창주의자들이야. 시대에 따라서 용어나 호칭은 바뀌었겠지만 그자들이 하는 짓은 변하지 않았지. 그자들은 세력을 잡기 위해서 끔찍한 범죄도 마다하지 않아.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뻔뻔하지. 팽창주의자들은 어찌 그렇게 똑같은지, 일단 권력을 잡으면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해. 과거를 세탁하고, 권력을 잡으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일반화를 시도하지.”
마크가 말했다.
“아까 했던 얘기를 그대로 돌려줘야겠군. 우린 정치 얘기에 관심이 없어. 당신을 잡아가면 새 정부는 테러범을 무력화시켰다고 홍보할 테고, 우린 돈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아주 쉽고 깔끔한 사업이지.”
노마는 마크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 마음에 드는 명칭은 아니지만, 나를 포함한 ‘불멸자’들이 정보량 소유에 제한을 받지 않는 건 맞아. 우리는 그 권리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지.”
쿄시로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 권리로 유원지 행성에서 곰인형이나 찍어내고 있나?”
노마가 노려보자 쿄시로는 입을 다물었다.
“우린 모든 것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어. 옛 지구의 나치와 이스라엘과 일본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화성 군부가 목성 콜로니에 어떤 독을 풀었는지, 요로나 구역에서 갑자기 발생한 초신성 폭발을 누가 사주했는지, 현 팽창주의자들이 대행성 병기를 몇 기나 불법으로 제작했는지…. 역사는 반드시 남아야 해. 사실 그대로. 역사를 삭제하려는 시도는, 불멸자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어. 우리 두뇌는 마이크로웜홀을 이용해서 은하계 내에 파편화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한 데 잇고있거든. 우리를 파괴하면 고대역사는 뿔뿔이 흩어지고, 끝내 사라질 거야. 그게 바로 팽창주의자들이 노리는 거지. 너희는 그렇게 야비한 범죄를 돕고 있단 말이야.”
마크가 노마에게 물었다.
“혹시 알파센타우리 B행성에 모여 있는 용병단의 활약도 기록하고 있나?”
노마는 눈을 세 번 깜빡거리고 나서 대답했다.
“구 연방 정부의 행정관 세 명을 암살했고, 쿠마 섹터의 폭탄테러에 관여되어 있고, 연방 정부군에 사살된 단원은 총 여덟 명이군.”
마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젠장, 우리 영업장부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구먼. 이봐, 늙은이. 난 딱 한 가지 원칙이 있어. 우리 사업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사람들은 반드시 죽인다는 원칙. 무릇 장사란 뒤가 깔끔해야 하거든. 따라서….”
불멸자를 찾아온 용병 세 사람은 동시에 무기를 꺼내어 노마를 겨누고 발사했다. 쿄시로가 쓰고 있는 모자에서 나노 미사일들이 가느다란 궤적을 그리며 노마에게 날아들었고, 제니가 품안에서 꺼낸 플라스마 채찍은 수십 갈래로 뻗어나오며 노마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노마가 손가락 끝을 움직이자 사격장에 경품으로 놓여있던 해바라기 인형들이 꽃잎을 활짝 폈다. 쿄시로가 발사했던 나노 미사일들은 꽃잎으로부터 펼쳐진 역장에 걸려 허공에서 멈췄다. 노마는 그와 동시에 다른 손을 뻗었다. 제니가 품에 안고 있던 곰인형이 폭발하며 그녀의 상반신과 함께 흩어졌다. 그러자 잘 성장한 히드라처럼 달려들던 보라색 채찍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마크는 무릎과 팔꿈치에서 강력한 공기를 분사하며 뒤로 날아갔다. 그가 남겨둔 드론 모듈 여섯 기는 일제히 노마를 공격했다. 노마는 금속 의자를 집어 들고 그 속에 숨겨진 방어막을 펼쳐 공격을 튕겨냈다. 그가 방어막 너머로 손가락을 권총처럼 뻗자 사격장에 있던 곰인형과 곤충인형의 눈에서 발사된 고진동 탄환들이 드론 모듈 여섯 기를 모조리 파괴했다.
“빌어먹을 늙은이! 정보량을 역사 보존에 전부 쓴다는 건 거짓말이었군!”
노마는 지지 않고 소리쳤다.
“불멸자란 별명이 괜히 붙었다고 생각하나?”
노마의 말은 허풍이었다. 이론상으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정보량에 한계는 없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정보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팽창주의자나 용병단들의 추적에 노출되기 쉬웠다. 그래서 노마는 역사 보존에 사용하고 남는 호신용 정보량을 최소화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 싸우나 한번 보자고!”
멀찍이 물러난 마크의 등 뒤에서 검정색 가변형 차량이 떠올랐다. 차는 공중에서 여덟 조각으로, 열여섯 조각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조각으로 분리되었다. 노마는 마이크로 웜홀을 열고 병기사 항목을 조회해 보았다. 노마가 불러낸 것은 팽창주의 동맹이 이번 전쟁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군체형 다중 인공지능이었다.
노마는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전투의 승패는 사용가능한 에너지와 정보량에 달려 있었다. 마크가 사용하는 군체 인공지능의 가용정보량은 노마가 호신용으로 할당한 정보량의 세배에 달했다.
마크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표정을 보니 이게 뭔지 알아냈나보군, 역사가 양반. 이 정도 무기라면 불멸자를 얕봤다는 얘기는 안 들어도 되겠지?”
군체 인공지능들은 노마를 완전히 포위했다. 노마는 살인 말벌에 둘러싸인 아기새처럼 절망했다. 단 한 마리의 공격만 직격해도 노마를 중심 노드 삼아 연결되어 있던 역사 정보는 산산이 흩어질 터였다. 노마는 빠져나갈 길 없는 최후를 앞두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불멸자는 몇이나 될까? 불멸자들은 팽창주의 세력이 역사를 삭제하고 다시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서로 연락을 끊고 각자 임무를 수행했다. 한 명이 죽고 그가 모은 데이터베이스가 와해되더라도 다른 불멸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했을 당시 남아 있던 불멸자는 노마를 포함해 총 넷이었다. 그 뒤로 흐른 시간은 옛 지구의 기준을 따르자면 675년이었다.
마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우리 용병단의 범죄 기록을 지울 시간이군.”
군체 인공지능들이 동시에 에너지를 모았다. 노마는 그 에너지의 강도를 피부로 느끼면서, 부디 자신이 마지막 불멸자는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만약 내가 마지막 불멸자라면, 단 하나의 역사를 우주에 남겨야 한다면, 난 무엇을 남겨야 할까?
고대 역사에 관한 링크가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노마는 찰나의 순간에 두뇌를 스치고 지나간 직감을 행동에 옮겼다. 그 직후 파괴적이고 단단하고 적의를 잔뜩 품은 에너지가 노마의 주변을 종횡으로 찢었다.
노마는 눈을 뜨고, 입자 단위로 분해되기 직전 잔뜩 찡그린 마크의 맨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를 따라 군체 인공지능들 역시 증발하고 있었다.
마크와 전쟁병기를 파괴한 에너지 무기의 잔열은 얼마 전 유원지에 새로 자리 잡은 자이로드롭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일 점심을 같이 먹으려면 오늘은 살아남아야지.”
노마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며 물러섰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유청은 긴장이 풀렸는지 숨을 몰아쉬며 노마에게 다가섰다.
노마가 물었다.
“넌 누구지?”
유청이 조금씩 평소 같은 미소를 되찾으며 말했다.
“네가 아직 생각해내지 못한 질문까지 전부 답해줄게. 난 네 편이야. 이 유원지를 조금씩 매입하고 자이로드롭을 새로 만든것도 바로 이 순간 때문이었어. 이제 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아마 너와 같이 떠돌이 생활을 해야겠지.”
노마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잖아.”
“질문이 잘못돼서 그래. 이 유원지에 3개월 동안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유를 잘 생각하고 다시 물어봐.”
노마는 암흑물질 소용돌이를 떠올리고는 질문을 바꿨다.
“넌 어디서 왔지?”
유청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부터 720년 뒤의 미래에서. 난 팽창주의자들의 후예가 은하계를 완전히 장악한 미래에서 왔어. 나치와 이스라엘과 일본의 만행을 기록한 역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미래에서. 암흑물질과 중력자 소용돌이가 이중나선형으로 시간을 관통한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에, 역사를 지키고 팽창주의자들의 궁극적인 승리를 막으려고 온 거야. 네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 덕분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지.”
내가 남긴 기록? 노마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고대 역사의 잠재적인 종말을 앞두고 자신이 죽는 시각과 장소를 마이크로웜홀의 링크 속에 남겨두었다. 유청은 그 기록을 좇아 고대 역사를 살리기 위해 시공을 건너왔던 것이다.
*
노마는 사격장을 매각했다. 유청도 <;우주의 모든 유원지>;와 롤러코스터와 자이로드롭을 팔아 정보화폐를 손에 넣었다. 급하게 전환하느라 두 사람 모두 적잖이 손해를 봤지만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불멸자가 암살을 피해 살아남았다는 소식은 빛의 속도에 따라 우주로 퍼져나갈 터였다. 두 사람은 다른 은신처를 찾아 떠나야했다.
노마는 용병단 암살자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사건을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했다. 그리고 우주선 화면 속에서 점점 멀어지는 앤트워프 행성을 보며 유청에게 물었다.
“네가 과거로 날아와서 역사를 바꿨으니 팽창주의자들도 궁극적으로 패배할까?”
유청은 앤트워프 행성과 그 너머에 있는 암흑물질 소용돌이를 애써 외면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알 수 없지. 내가 알고 있는 미래는 이제 네가 살아남은 이 우주의 미래가 아니니까. 과거를 바꾸는 바람에 분기가 생겨 버렸거든. 내가 이 우주에 대해서 아는 건 단 한 가지밖에 안 남았어.”
노마가 물었다.
“그게 뭔데?”
“네가 마지막 불멸자라는 사실.”
노마는 유청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간단하면서도 두렵고 무거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고대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이제 그가 바로 역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