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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악인의 승리 VS. 선인‘들’의 승리

협력의 공식 시즌2 - ➏ 다수준 선택


혈연 선택의 창시자 윌리엄 해밀턴에 당돌한 편지를 보낸 조지 프라이스. 그는 집단 선택에서도 작동하는 자신의 이론을 소개하며 해밀턴을 자극했다. 하지만 곧 두 사람의 이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보자. 여기 ‘선한’ 사람이 있다. 착하고, 이타적이고, 너그럽다. 한편 ‘악한’ 사람도 있다. 나쁘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 이제 문제가 나간다. 선인 한 명과 악인 한 명이 망망대해 무인도에 함께 떨어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은 뻔하다. 악인이 선인을 대놓고 착취하는 바람에 선인은 곧 상어 밥이 될 것이다.


자연 선택, 개체와 집단에 어떻게 작용할까
다음 문제다. 선인들로만 이뤄진 집단과 악인들로만 이뤄진 집단이 있다. 두 집단이 각기 다른 무인도에 도착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시나 답은 뻔하다. 선인들의 집단은 서로 힘을 합쳐 무인도를 탈출하거나, 적어도 화목한 공동체를 이룰 것이다. 악인들의 집단은 매일 다투기만 하다가 함께 멸망할 것이다.

만약 악인 한 명이 혼자 헤엄쳐서 선인들만 사는 섬으로 건너왔다면 어떨까.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악인이 선인들을 착취해 처음엔 큰 성공을 거두겠지만, 악인의 얌체 짓을 남들도 다 따라 해서 결국 이 섬은 악인들로 모두 채워질 것이다. 어쨌거나, 이 사고 실험은 큰 울림을 준다. 일정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이타적인 성향은 진화할 수 있다! 착한 사람들의 집단은 나쁜 사람들의 집단을 이긴다. 문제는, 착한 사람들만 있는 집단 내부에 이기적인 얌체가 독버섯처럼 생겨났다면 전부 다 망하기 쉽다는 것이다. 집단 내에서, 나쁜 사람은 착한 사람을 이긴다.

지금껏 우리는 이타주의자로만 구성된 집단은 이처럼 내부에 얌체가 출현하면 와르르 무너지기에 개체 간의 선택에 비교하면 집단 간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에 따르면, 집단 선택은 물론 가능하지만 어떤 형질이 이미 개체 선택으로 잘 설명되는 마당에 굳이 집단 선택까지 끌어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 선택은 개체 선택보다 약하다고 대충 얼버무리면 곤란하지 않을까. 자연 선택이 개체와 집단 사이에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 밝힐 수는 없을까. 프라이스 방정식이 그 일을 해냈다.


선택은 여러 수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윌리엄 해밀턴은, 조금 과장해서, 집단 선택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학자였다. 그런 사람에게 조지 프라이스는 자신이 발견한 방정식이 집단 선택에도 적용된다고 한껏 호기를 부렸다. 해밀턴은 독자적으로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결국 해밀턴은 1969년 12월에 마침내 자신이 그 해법을 찾았노라고 프라이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해밀턴이 보낸 논문의 초고를 읽고, 프라이스는 당황해 하며 말했다.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결과들이 많군요. 흥미롭지만, 한 번 더 읽어봐야 되겠습니다. 나중에 꼭 함께 논의하시죠.” 그러나 이 두 사람이 그 문제를 함께 논의한 적은 없었다. 프라이스에게 다른 일이 점점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해밀턴이 찾은 해법을 들여다보자. 지난 회에 보았듯이, 프라이스 방정식은 어떤 형질의 평균값이 세대를 거치면서 증가할지는 그 형질이 개체의 적합도를 높이는가에 달려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어디까지나 부모에서 자식들로 그 형질이 충실하게 전달된다는 가정하에서만 성립된다. 만일 어떤 이유로든지 자식들이 부모의 유전자를 정확히 물려받지 못한다면, 예컨대 키가 180cm인 부모가 낳은 자식들의 평균키가 난데없이 190cm라면, 우리는 이처럼 유전정보가 한쪽으로 치우침에 따르는 변화도 고려해줘야 한다. 그래서 정확한 프라이스 방정식은 아래와 같은 식이 된다고 했다.
 
 형질의 평균값 변화 = 선택에 의한 변화 + 전달에 의한 변화 
 
대부분의 경우, 자식들은 부모의 유전자를 무작위적으로 공평하게 물려받는다. 이를테면, 혈액형이 A형인데 그 유전자형이 이형접합으로 AO인 남자가 만드는 정자들 가운데 대략 절반은 A, 나머지 절반은 O를 물려받는다. 이렇게 형질이 충실하게 전달된다면, 프라이스 방정식에서 우변의 두 번째 항을 편안하게 생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부모가 정자/난자를 만들 때 어떤 대립유전자를 물려주는가가 정자/난자의 생존에 영향을 끼치면 두 번째 항은 생략할 수 없다. 형질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전달되었기에 이 점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달에 의한 형질 변화량을 나타내는 두 번째 항이 프라이스 방정식을 집단 선택에 적용하는 열쇠다. 지금껏 우리는 개체들과 각 개체에 속한 정자/난자들에 초점을 맞췄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높낮이 조절 손잡이를 한 단계 더 올려보자. 집단들과 각 집단에 속한 개체들이 보이는가. 원래의 프라이스 방정식은 집단 내에서 한 개체가 지니는 어떤 형질값의 진화를 다룬다. 그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올려서 여러 집단의 집합 내에서 한 집단이 지니는 어떤 형질값의 진화를 나타낼 수도 있다.

이때, 형질의 평균값 변화 = 선택에 의한 변화 + 전달에 의한 변화에서 우변의 첫 번째 항은 한 집단이 지니는 형질의 평균값이 그 집단의 평균 적합도(어느 집단에 속하는 개체들이 얻는 적합도의 평균)를 증가시키는가를 나타낸다. 즉, 집단 간 선택을 의미한다. 우변의 두 번째 항은 한 집단이 지니는 형질의 평균값이 그 집단이 생산한 자식들 사이에 무작위적이지 않게, 즉 불공평하게 분포함에 따르는 변화이다. 즉, 집단 내 선택을 의미한다. 프라이스 방정식은 선택은 여러 수준에서 동시에 일어나며, 집단 간 선택이 집단 내 선택을 능가할 때 그 형질의 평균값이 세대를 거치며 증가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타적 행동의 탄생, 비밀은 집단 간 선택
어리둥절할 독자를 위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이웃을 만나기만 하면 무조건 비용을 감수하며 이득을 주는 협력자들과, 남들로부터 받기만 하는 무임 승차자들이 존재한다고 하자. 협력자의 전체 빈도는 50%이고, 따라서 무임승차자의 전체 빈도도 50%라고 가정한다. 전체 개체군은 여러 소집단으로 나뉘어 그 안에서만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어떤 집단에서는 협력자가 50%를 넘고, 어떤 집단에서는 협력자가 50%보다 적을 수 있다.

협력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집단은 협력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집단보다 전체적으로 더 많은 자식을 만든다. 곧, 착한 사람들이 많은 집단은 악한 사람들이 많은 집단을 이긴다. 바로 우변의 첫 번째 항, 즉 집단 수준에서 이뤄지는 선택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집단 내의 개체 수준에서 무임승차자는 협력자를 착취해 번성한다는 점이다. 한 집단의 협력자 빈도가 50%라면, 이 집단이 만드는 자식들 사이에 협력자는 반드시 50% 미만이고 무임승차자는 반드시 50%를 초과한다. 곧, 집단 내에서 나쁜 사람은 착한 사람을 이긴다. 우변의 두 번째 항, 즉 집단 내에서 개체 수준의 선택이다.

찰스 다윈은 1859년에 낸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이 개체뿐만 아니라 집단 수준에서도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마블링이 잘 된 1++등급의 소는 자기 자신은 인간에게 잡아먹히지만 혈연 집단에게는 인간에게 길러지는 이점을 주었기에 마블링이 좋은 육질이 인위 선택되었다고 설명했다. 백여 년이 지난 후, 프라이스는 다윈의 이론을 아름다운 수식으로 요약했다. 선택이 집단 내부에서보다 집단 사이에 더 강하게 작용한다면, 이타적 행동은 진화할 수 있다.

잠깐, 그렇다면 해밀턴의 혈연 선택 이론은 어쩌란 말인가? 필자가 지금껏 혈연 선택론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더니, 갑자기 태세 전환해 실은 집단 선택론이 진짜 승자라는 건가? 사실, 혈연 선택론과 다수준 선택론은 수학적으로 동등하다. 이타적 행동의 진화라는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할 뿐이다. 이 얘기는 아껴뒀다가 나중에 하자.


해밀턴과 프라이스, 의기투합하다
자연 선택이 개체와 집단 사이에 어떻게 작용하느냐는 문제 외에도 프라이스가 해밀턴에게 내준 ‘숙제’는 더 있었다. 프라이스는 브라질에서 연구를 하던 해밀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수식을 쓰면 혈연 선택 이론의 결과를 더 분명하게 도출할 수 있다고 힌트를 준 바 있다. 런던에 돌아와 1869년 7월에 프라이스와 통화한 다음, 해밀턴은 우선 이 문제에 매달려 짧은 논문을 완성했다. 프라이스 방정식으로 해밀턴의 규칙을 더 명료하게 도출하고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악의적인 행동도 이에 따라 설명한 논문이었다.

해밀턴과 프라이스는 의기투합하여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 ‘네이처’에 도전했다.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두 사람의 논문은 모두 ‘네이처’에 게재되었다. 프라이스의 ‘선택과 공분산’은 1970년 8월, 해밀턴의 ‘진화 모델에서 이기적 행동과 악의적 행동’은 그해 12월에 출판되었다. 프라이스 방정식이 완벽하게 새로운 성과임을 내세우려는 듯이, 프라이스의 논문은 참고 문헌을 단 한 편도 인용하지 않은 희한한 논문이었다.



+ 더 읽을거리
Wilson, D. S. (2007). 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 Delta, New York, NY.
에드워드 윌슨, 이한음 역, 2013, 『지구의 정복자』, 사이언스북스.
조지 윌리엄스, 전중환 역, 2013, 『적응과 자연선택』, 나남.
Hamilton, W. D. (1995). Narrow roads of gene land: The collected papers of WD Hamilton, Volume 1: Evolution of Social Behaviour.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p.318).
Price, G. R. (1970). Selection and Covariance. Nature, 227, 520-521.
Frank, S. A. (1998). Foundations of social evolu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Okasha, S. (2006). Evolution and the levels of sele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West, S. A., Griffin, A. S., & Gardner, A. (2007). Social semantics: altruism, cooperation, mutualism, strong reciprocity and group
selection. Journal of evolutionary biology, 20(2), 415-432.
Hamilton, W. D. (1970). Selfish and spiteful behaviour in an evolutionary model. Nature, 228(5277), 12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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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전중환 교수
  • 일러스트

    정재환
  • 에디터

    윤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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