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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 사는 에일린 달레산드로 씨는 미국 보스턴에서 환경화학을 전공한 과학자다. 작년 5월 졸업하고 한국에 왔지만, 지금은 과학자가 아닌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꿈은 바다에 사는 고래를 연구하는 것이지만, 다시 미국에 공부를 계속 하러 갈 때까지 잠시 접기로 했다. 그는 ‘수염고래와 이빨고래를 구하자’라고 적은 피켓을 든 채 지난 4월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함께하는 과학행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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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과학기술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지난 4월 22일 오후 2시(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시카고, 호주 시드니,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등 전세계 600여 개 도시에서 ‘과학행진(March for Science, 한국 행사명 ‘함께하는 과학행진’)’을 열고, ‘과학은 침묵하지 않는다(Science Not Silence)’ 등의 구호와 함께 거리를 행진했다. 세계의 과학기술인이 오로지 과학과 과학자를 주제로 거리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서울과 부산에서 국내외 과학기술인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과학행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환경과 과학 연구 예산을 삭감하는 등 반과학적인 정책을 펼친 데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탄생했다. 처음에는 미국 내 시위로 기획됐지만, 곧 세계 여러 나라의 과학기술인들이 연대의 뜻을 보이며 각지에서 자체적으로 동시 행사를 기획해 세계적인 규모로 거듭났다.
서울 ‘함께하는 과학행진’ 소수자 과학자 목소리 높여
서울에서 열린 ‘함께하는 과학행진’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뜨락’에서 열린 1부 행사와, 다 함께 광화문 광장 일대를 걷는 행진으로 이뤄졌다. 1부 행사에서는 과학기술인들이 직접 과학자로서의 삶을 전하는 ‘과학 버스킹(길거리 연설)’과 다양한 과학문화 부스 전시가 진행됐다.
특히 과학 버스킹에서는 주류 과학자 외에 여성, 외국인 등 소수자에 속하는 과학자들이 여럿 연사로 나서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애인 물리학자로서의 삶을 담담히 들려준 정현희 숭실대 초빙교수는 “오늘만 해도 지금 이 행사장(뜨락)에 오기 위해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길을 찾아 몇 번을 헤매야 했다”며 “불편한 몸이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 지금까지 해낼 수 있었다. 나 같이 불편한 사람도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과학자들이 함께 만들면 좋겠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박조은 씨는 “아이 둘 낳고 육아휴직을 받을 때도, 복직할 때도 고용노동부와 상담하거나 근로감독관을 찾아가야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아 결국 회사를 옮겨야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육아휴직을 요구해 현실을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텍 화학과 대학원생 지은경 씨는 “아직도 여성으로서 이공계 중점대학에 와서 어려움이 많다”며 “과학에서 다양성을 늘려가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과학적인 세태 비판도 이어져
비과학적인 세태나 정책에 대한 일침도 있었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백신음모론을 옹호하는 비과학적인 책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며 “예방접종 거부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협하기 때문에 (바로잡을 수 있도록) 과학기술인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생태학자인 피오트르 야브원스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미국은 환경 분야에서 리더십을 잃었다”며 “한국에 있는 과학기술인들도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킹 행사가 끝난 뒤에는 참가자 전원이 “국정 운영은 과학적으로!”, “연구는 자율적으로!” 같은 구호와 함께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함께하는 과학행진은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가 공동주최하고 브릭, 동아사이언스, 대덕넷 등이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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