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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슈퍼박테리아 비상, 그런데… 한국엔 재래식 무기만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이후 국내에서 수집한 대장균과 폐렴막대균 등 장내세균 9300주 중 세 개의 세포주가 콜리스틴 항생제에 죽지 않았다고 지난해 11월에 발표했다. 콜리스틴은 뛰어난 항균작용으로 ‘인류 최후의 항생제’라고 불리는 약제다. 이형민 질병관리본부 의료감염관리TF 팀장은 “당시 수도권 병원 두 곳과 경북지역 병원 한 곳에서 보관했던 세균주에서 콜리스틴 내성 유전자(mcr-1)를 발견했다”며 “이 병원들은 환자가 진단받은 장소일 뿐이고 실제 환자가 어느 지역에 사는지, 보유하고 있던 균이 병원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등은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균이 특정 지역에만 예외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 반세기 전에 발견한 항생물질인 콜리스틴은 독성 때문에 사용이 제한됐으나, 세균과 만난 횟수가 다른 약제에 비해 적었던 만큼 항균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어왔다. 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다는 건, 어지간한 항생제에 다 내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치료가 어려운 다제내성균, 이른바 ‘슈퍼박테리아’가 나올 가능성도 더 커졌다. 문제는 한국에 이들 다제내성균을 억제할 강력한 최신 항생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성을 갖추면서 세균은 점점 강력하게 변하는데, 재래식 무기로만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슈퍼박테리아에 쓸 최신 항생제… 한국엔 없다
한국은 슈퍼박테리아 천국이다. 대한감염학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그람양성균에 쓰이는 페니실린계 항생제인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은 4만 1608건, 사실상 한국 병원에 있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은 2581건이 발견됐다.

이들 균에 적용할 수 있는 최신 약제는 따로 있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에 쓰이는 답토마이신은 반코마이신이 효과가 없을 때 사용한다. 2003년도에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일부 장내 세균은 항생제 효능을 무력화시키는 효소를 만드는 전략을 쓰는데, 이 세균을 죽이는 최신 항생제는 세프타롤린이다. 그런데 대한감염학회에 따르면, 이 두 가지를 포함해 텔라반신, 피닥소마인신 등 6종의 최신 항생제가 한국에 없다.
 

이형민 팀장은 “최신 항생제가 없는 것은 해외 제약사가 우리시장에 공급하지 않은 것으로 제도상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단가다.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에서 먹고 있는 항생제는 비싸도 1000원”이라며 “외국 제약사가 개발한 항생제는 한 알에 30만 원 이상인데 한국에선 그 값을 받을 수 없다. 의료 수가가 안 맞아 수입조차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 센터장은 “어떤 균에 감염됐는지 확인하는 데까지 현재 2~3일이 걸리는데 급한 환자는 그 사이 목숨을 잃을 것”며 “최신 항생제가 있다면 일단 투여할 수 있어 안심할 수 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는 환자가 복용한 적이 없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국내항생제를 신속하게 찾아 투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약 개발이 최우선 아냐… 항생제 남용 말아야
새로운 항생제 개발도 쉽지 않다. 세균의 DNA 합성, 단백질 합성, 세포벽 합성을 동시에 다 막는 새로운 항생물질을 발견하면 세균과의 싸움에서 장시간 우위를 선점할 수 있겠지만, 이런 물질은 발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질을 찾아도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밝히기까지 추가적인 시간을 합하면 평균 10년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최소 1000억 원 이상이 드는 항생제 개발에 성공해도 2년 안에 내성균이 생겨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투자를 꺼린다. 이 때문에 미국은 개발비용을 줄이고 신물질 적용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독성만 없는 것이 확인되면, 임상 단계를 줄이는 등의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적인 항생제 연구지원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류 센터장은 “최근에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연구비로 1년에 30억 원씩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는게 전부”라면서 “이 돈으로 현재 한국의 가장 많은 세균 10개를 뽑았고, 그것을 빠르게 검출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카바페넴 내성 슈퍼박테리아인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 등을 신속하게 진단할 수 있는 물질을 찾는 중이다.

‘무기 수입’도 ‘무기 개발’도 어렵다면 ‘방패’라도 잘 간수해야 한다.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는 게 대표적인 방법이다. 2015년 WHO가 발표한 항생제 내성 약제 사용량 통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과 이탈리아가 1위로 31.5DDD(의약품 규정 1일 사용량)를 기록했다. 이는 하루에 국민 1000명 당 31.5명이 항생제를 처방 받는다는 의미다.

이 팀장은 “조금만 아파도 약을 먹는 습관도 문제지만 아프다가 조금 괜찮아졌다 싶으면 스스로 약을 중단한다. 이건 몸속에 내성균 생산공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며 “의사와 의견을 조율해 시기와 복용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 더 읽을거리
‘내성이 생기지 않는 새로운 항생제’ doi:10.1038/nature14098
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 마틴 블레이저 저, 처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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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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