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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겨울잠과 잠을 동시에 자는 여우원숭이?

날씨가 춥고 먹이가 부족한 겨울이 되면 많은 동물이 겨울잠을 잔다. 곰, 다람쥐, 박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류의 사촌인 영장류 중에도 겨울잠을 자는 종이 있다.
바로 마다가스카르 섬에 사는 여우원숭이다.


일년 365일 영장류
생각만 하는 필자 같은 학자들도 접할 때마다 놀라는 사실이 있다. 영장류가 겨울잠을 잔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마다가스카르 섬에 사는 살찐꼬리난쟁이 여우원숭이를 연구해 알게 된 사실이다. 마다가스카르 섬은 기후와 식생이 독특해서,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영장류가 많이 존재한다.

동물의 겨울잠은 그냥 잠과는 다르다. 잠은 충전의 시간이다. 음식을 먹지는 않지만, 낮에 사용할 에너지를 충전하는 신체 대사기능을 활발히 수행한다. 만약 잠을 자지 않으면 머리는 멍해지고 온 몸은 힘이 없어진다. 휴대전화로 치면 방전된 상태다.

겨울잠은 반대다. 몸의 대사기능이 거의 멈춘 가사(假死) 상태다.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고 조금씩 아껴 쓸 뿐이다. 호흡량이 적고, 심박동도 느리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행위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인류는 동물의 겨울잠을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우주, 군사, 의학 분야에 응용하기 좋기 때문이다. 예컨대, 화성처럼 먼 우주를 여행할 때 동면이 유리하다. 신체 대사기능이 떨어지면 노화도 진행이 매우 느려져서, 이론적으로는 영화 스‘ 타트랙’의 설정처럼 늙지 않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 전쟁에서 큰 상처를 입은 병사나 장기이식을 기다리며 죽어가는 환자, 그리고 현재 의학기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린 환자를 동면상태로 유도하면, 이후 완치가 가능할 때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지방 쌓는 곰, 설탕 쌓는 여우원숭이
곰은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 회귀하는 연어를 사냥해 살은 거의 먹지 않고 지방이 많은 껍질만 먹는다. 이렇게 몸에 지방을 축적해서 겨울을 준비한다. 여우원숭이는 어떨까. 1999년 독일 영장류센터와 튀빙겐대 연구팀이 마다가스카르 섬 서부에 사는 원숭이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겨울 혹한이 아니라 4월 말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건기를 버티기 위해 잠을 잔다. 마다가스카르 섬은 열대우림의 기후 특성을 보인다. 우기 동안에는 여우원숭이가 좋아하는 꽃, 과일, 작은 동물 같은 먹이가 풍부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이런 먹이가 급격히 줄어든다.
겨울잠 자는 영장류인 살찐꼬리난쟁이 여우원숭이(왼쪽). 
마다가스카르 섬 서부에 주로 살며, 나무 구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잔다.
마다가스카르 섬 동부에 서식하는 또 다른 여우원숭이 종은 땅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겨울잠을 잔다(오른쪽).
서부와 달리 동부의 토양은 맨손으로 팔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기 때문이다.
 나무 구멍에 비해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포식자 눈에 띌 위험도 적다.

 
연구팀은 살찐꼬리난쟁이 여우원숭이 36마리에게 무선 송수신기를 단 뒤, 약 4년에 걸쳐 행동 반경과 몸무게 변화, 섭취하는 식물종을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여우원숭이들은 겨울잠을 시작하기 전 2~3주 만에 몸무게를 두 배로 늘렸다(약 300g 증가). 여우원숭이는 보통 11월에 번식을 시작해서 61~64일간의 임신 기간을 거친 뒤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2월이 활동량이 가장 많은 시기다. 그리고는 젖을 떼자마자 몸을 불려 동면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활동량은 절반으로 떨어진다.

섭취한 음식의 영양성분을 조사해 보니, 지질이 많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설탕 함량이 높았다. 대비가 끝난 여우원숭이들은 나무 구멍 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최대 7개월 동안 겨울잠을 잔다.


다 같은 겨울잠이 아니다!
독일 필립스대, 뷔르츠부르크대, 함부르크대 공동 연구팀은 겨울잠을 자고 있는 야생 여우원숭이들을 찾아 조사했다. 그 결과, 여우원숭이가 선택한 나무 구멍의 보온성에 따라 겨울잠 패턴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서식지의 건기는 기온이 가장 낮을 때가 9.3℃, 가장 높을 때가 35.9℃ 정도다. 일교차가 25℃ 이상일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만약 나무 구멍의 보온이 잘 돼 내부의 온도 변화가 거의 없으면 여우원숭이의 체온도 25℃ 정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체온이 35~36℃까지 올라갔다. 마치 추운 겨울에 자동차를 한 번씩 시동을 걸어줘야 고장이 나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 체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반면 보온이 잘 안 되는 나무 구멍에서는 여우원숭이의 체온이 외부 기온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했다. 원숭이는 분명 뜨거운 피를 가진 정온 동물인데, 파충류처럼 체온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겨울잠 자고 있는 원숭이들을 서로 다른 나무 구멍에 옮겨주면 또 그 나무 구멍의 환경에 적응해 겨울잠 패턴이 달라졌다는 점이다(2004년 ‘네이처’ 발표).

곰곰히 생각해보면 여우원숭이 입장에서는 체온을 바꿔야만 한다. 능력이 아무리 특출한 원숭이라도 매번 단열이 잘 되는 나무 구멍을 고를 수는 없다. 따라서 환경에 따라 겨울잠 패턴을 바꿀 수 있도록 진화하는 편이 생존에는 더 유리했을 것이다. 그래야 어떤 나무 구멍에서도 겨울을 버텨낼 수 있다.

 

"보온이 잘 된 곳에서 겨울잠을 자는 여우원숭이의 경우 일주일에 한번 체온을 올릴 때 수면신호가 나타났다. 심지어 렘수면과 비(非)렘수면이 모두 나타났다. 즉, 여우원숭이는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도 때때로 인간의 수면에 해당하는 잠을 가끔씩 자고 있었던 것이다"


 
2013년 5월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는 서부 여우원숭이 외에 마다가스카르 섬 동부 지역에 사는 또 다른 여우원숭이 세 종도 겨울잠을 잔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이들 여우원숭이는 나무 구멍이 아닌 땅속에서 겨울잠을 잤다.

마다가스카르 섬의 동쪽은 서쪽과 환경이 매우 다르다. 해발 1600~1700m로 고도가 높아 평균 기온이 낮다. 비록 잠시지만 기온이 0℃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아무리 더운 시기라도 30℃를 넘지 않는다. 이렇게 서늘하기 때문에 동부의 여우원숭이는 기온 변화가 심하지 않은 땅 속에 굴을 파고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땅굴 속 기온은 약 15℃로 유지된다. 동부 여우원숭이들은 땅속 10~40cm 깊이에서 3~6개월 정도 동면하며, 그 동안 체온은 15℃보다 약간 높게 유지된다. 물론 일주일에 한번씩은 체온을 34~35℃로 높인다.

서부 여우원숭이보다 동부 여우원숭이들은 훨씬 좋은 환경에서 겨울잠을 자는 셈이다. 나무 구멍에서 자는 서부 여우원숭이들은 포식자에게 쉽게 노출돼 동면 중에 종종 잡아 먹힌다. 물론 이런 적응의 차이도 환경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부는 바닥이 너무 딱딱해 도구 없이는 땅을 팔 수 없는 반면, 동부는 토양이 스폰지처럼 부드러워 사람이 맨손으로도 땅을 팔 수 있을 정도다.


겨울잠 자는 동안 잠을 잔다?
앞에서 말했듯, 동물의 겨울잠과 인간의 잠은 다르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정말 잠을 전혀 자지 않고 몸을 단지 가사 상태로 만드는 걸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듀크대와 독일 함부르크대 공동 연구팀이 여우원숭이에게 온도 센서와 원격 송수신장치를 붙여 겨울잠을 자는 동안 뇌파를 측정했다. 그 결과, 보온이 잘 된 곳에서 겨울잠을 자는 여우원숭이의 경우 일주일에 한번 체온을 올릴 때 수면신호가 나타났다. 심지어 렘수면(빠른 안구 운동을 동반하는, 꿈 꾸는 잠)과 비(非)렘수면이 모두 나타났다. 즉, 여우원숭이는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도 때때로 인간의 수면에 해당하는 잠을 가끔씩 자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들의 신비로운 겨울잠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의 느림보원숭이도 짧지만(약 63시간) 몸을 가사 상태로 만들어 환경 변화에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우리 사촌들의 재주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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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허재원 선임연구원
  • 에디터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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