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동물도 좌절하면 스트레스 받는다

식욕이나 본능적인 탐험욕 채워줘야


우리 속에 갇힌 짐승은 좌절감을 느낀다.


동물생리학자들은 가축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가두어 기르는 사육방식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속에 갇힌 돼지는 정말로 지루해서 빗장을 물어뜯을까.

돼지나 말을 가두어 길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갇힌 짐승이 때로 수시간씩 빗장이나 사슬을 물어뜯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생리학적 연구는 가축들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위'가 그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왔다. 그러면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일까.

학자들은 '갇힌 상태의 지루함'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해왔다. 빗장이라도 물어뜯어 스스로 자극을 만들어냄으로써 '지루함'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영국 에딘버러대학의 가축생리연구팀은 가축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의 원인을 새롭게 해석하고 나섰다. 그들에 따르면 '지루함'보다는 '좌절감'이 동물들의 기괴한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에딘버러 대학의 마이클 애플비와 알리스터 로렌스는 가축들이 몇시간씩 빗장을 물어뜯을 때는 대개 그들이 먹고싶은 만큼 먹지 못했을 경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돈업자들이 키우는 돼지의 경우 주인이 바라는 이상으로 살이 쪘다 싶으면 돼지들이 더 먹고 싶어하건 말건 가차없이 먹이의 양이 줄게 된다. 먹이가 충분할 때는 빗장물어뜯기같은 짓을 하는 돼지가 없다. 그러나 먹이가 줄어듦과 동시에 돼지들은 여러가지 이상한 행태를 보였고 주로 빗장 물어뜯기가 많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똑같이 배가 고픈 상황이 생겨도 놓아기르는 돼지들은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그 차이를 '먹이를 찾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유무(有無)'로 해석했다. 즉 놓아기르는 돼지는-돼지뿐만 아니라, 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먹이를 구할수 있건 없건 간에 일단 먹이를 찾아다닐 수는 있다. 그러나 갇힌 상태의 돼지는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없는 좌절감이 갇힌 가축들의 기괴한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결론적으로, 먹이를 조금 주려면 돼지를 놓아 길러야하고 가둔 상태로 기르려면 먹이 양에 제한을 두지말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곧 양돈업관계 신문 잡지에 보도됐고 많은 양돈업자들이 이를 받아들여 효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의회에까지 이 건이 상정돼 기존의 '한 우리안에 모아기르기 방식'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빗장 물어뜯기 같은 행동은 가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실험실이나 동물원의 동물들도 똑같은 짓을 해댄다. 동물원의 북극곰은 하루종일 우리 안을 뱅뱅 맴돌고 실험실의 쥐는 쉬지 않고 쳇바퀴를 돌린다. 일군의 동물생리학자들은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기존의 '지루함'이론을 정교화하고 있다. 캐나다의 동물복지학자인 이안 던칸씨는 '지루함이란 모험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라고 해석한다. 한예로 나이든 어미돼지들은 먹는 일을 빼곤 하루종일 누워있는데 반해 새끼돼지들은 배고픔이 채워져도 쉴새없이 여기저기를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적어도 원숭이등 영장류의 경우는 이런 '탐구심'이 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그러나 날 때부터 길들여 길러지는 가축들에도 이런 본능적인 탐구욕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동물생리학자들도 의구심을 갖는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연구로 미루어보면 가축들도 장기간 갇힌 상태가 되면 '정상'이 아닌 상태가 된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프랑스 국립 농업연구소의 신경생리학자인 로버트 단처같은 이는 가축들이 빗장 물어뜯기같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수시간씩 할 동안엔 뇌에서의 신경기능이 마비된다고 주장한다.

동물이 인간처럼 '지루함'이나 '좌절감'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연구로 유럽에서의 가축사육방식이 기존의 가둬기르기에서 방목형태나 그와 유사한 대안형태로 변화하리라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199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 진로 추천

  • 수의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 심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