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뉴맥캔들’이라는 향초가 탄생했다. 이 초에 불을 붙이면 애플사의 컴퓨터인 맥을 처음 구입했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향을 맡은 사람은 갖고 싶었던 전자기기를 손에 얻었을 때처럼 들뜨고 설렌다. 뉴맥을 만든 미국의 컴퓨터액세서리기업 트웰브사우스사는 민트향과 복숭아향, 바질향, 라벤더향, 만다린향, 샐비어향을 적당히 조합했다고 공개했다. 그러니까 맥에서 나는 향을 비슷하게 따라했을 뿐, 실제와는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만약 실제 냄새를 마음대로 저장해 원하는 곳에서 그대로 풍길 수 있다면 어떨까. 이와 반대로 불쾌한 냄새를 없앨 수는 없을까. 문자와 소리, 영상의 뒤를 이어, 이제는 냄새가 차세대 데이터로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꽃이나 동물, 음식 등 사물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는 휘발성 분자가 공기 중에 활발히 떠다니기 때문이다. 이런 분자들은 고농도에서 저농도로 확산하기 때문에 사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냄새가 진하게 난다. 또 고체보다는 액체나 기체일수록 휘발성 분자가 공기 중으로 날리기 쉬우며, 냄새가 잘 난다.
휘발성 냄새 분자가 공기를 타고 콧속으로 들어와 점액에 녹아들면 후각세포를 자극한다. 흥분한 후각세포는 냄새에 대한 정보를 전기신호로 바꿔 후신경을 통해 대뇌로 전달한다. 사람의 코에는 후각세포가 500만 개가 넘으며, 수용체의 종류도 약 400가지나 된다. 수용체마다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 들러붙는 냄새 분자가 각각 다르다. 수용체가 각각 결합한 분자의 종류(냄새의 종류)와 특정 분자와 결합한 수(냄새의 농도)에 따라 뇌에서 최종적으로 느끼는 냄새가 달라진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냄새는 약 4000가지다.

▶Enter: 수백 년 된 책 냄새를 분석하다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은 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색이 변하기 마련이다.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겠지만, 냄새도 시간에 따라 크게 변한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유물보존연구소의 세실리아 벰비브르 연구원은 문화재에서 나는 냄새를 분석하고 기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가 분석한 장소는 런던 남동쪽 세븐오크스에 있는 ‘놀하우스’와 런던 시내에 있는 세인트폴대성당의 도서관이다.

놀하우스는 방이 365개나 되는 대저택으로 15세기부터 한 가문이 대대손손 살아왔다. 지은 지 300년이훌쩍 넘은 세인트폴대성당의 도서관에는 오래된 가구와 책이 가득하다. 여기는 다른 도서관과 달리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사람 수를 제한하고 있다. 그만큼 실내 향기가 바깥 공기와 섞이지 않고 그대로 보존돼 있다. 벰비브르 연구원은 놀하우스에서 19세기에 만들어진 가죽장갑과 포푸리, 일기장을, 도서관에서는 책 몇 권을 가져왔다. 수많은 물품 중 이것들을 고른 이유는 가죽이나 포푸리에서는 원래 냄새가 많이 나며, 오래된 종이에서는 특유의 향이 나기 때문이다.
그는 각 물건에서 나는 냄새를 모았다. 냄새는 공기 중으로 확산하는 휘발성 분자이므로 마치 물이 가득한 수조에 잉크방울을 떨어뜨렸을 때처럼 무작위로 퍼진다. 이 때 물건 옆에 탄소막대만 세워 둬도 냄새 분자가 날아와 붙는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종이 냄새처럼 은은한 냄새를 잡기 힘들었다. 그래서 밀폐된 곳에 물건과 탄소섬유를 함께 넣어두는 ‘헤드스페이스 기술’을 사용했다. 저장한 분자는 가스크로 마토그래피와 질량분석장치로 걸러 정확한 성분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특히 책과 일기장에서 재미난 점을 발견했다. 다른 재료와 달리, 종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의 구성성분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수백 년 된 책에서는 식초의 시큼한 향을 내는 아세테이트 분자가상당량 나왔다. 또 빵에서 고소한 향을 내는 푸르푸랄과 달콤한 계피향인 벤젠알데이트, 바닐라향인 바닐린, 방금 막 뜯은 풀 냄새처럼 싱그러운 헥산올 등이 나왔다. 다양한 냄새 분자가 한 데 어우러져 ‘오래된 책 향기’를 자아냈다.
새 책에서는 왜 이런 향이 나지 않을까. 벰비브르 연구원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오랜 세월 동안 종이가 삭으면서 섬유소가 분해돼 이런 성분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책이라도 종이재질에 따라,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향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문화재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학자들은 대개 글의 내용과 시대별 양식에만 초점을 둔다. 그러나 벰비브로 연구원은 냄새도 귀중한 자료로서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Ctrl+S: “하나, 둘, 셋 찰칵! 냄새 다 찍었습니다”
아련한 추억을 향기와 함께 기록할 방법은 없을까. 스마트폰으로 즐거운 장면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듯이말이다.
영국의 센트럴세인트마틴 예술대에서 미래섬유를 연구하고 있는 에이미 래드클리프 연구원은 2013년, 냄새를 찍는 카메라인 ‘마들렌’을 만들었다. 원래 향기가 나는 미래섬유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다가 냄새를 천에 배게 하는 방법을 떠올렸다고 한다. 마들렌을 이용하면 인위적으로 합성하거나 전혀 다른 물질로 흉내 내지 않고도 실제 냄새를 재현할 수 있다.
마들렌은 헤드스페이스 기술을 이용해 실제 물건으로부터 냄새를 분리하고 고농도로 압축해 저장한다. 이 기기에는 유리로 만든 깔대기(마들렌 돔)가 링거줄로연결돼 있다. 냄새를 ‘찍고’ 싶은 물질을 마들렌 돔으로 덮으면 기기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링거줄을 타고 와 돔을 메운다. 냄새 분자는 수증기와 함께 돔 안을 가득채운 뒤, 다른 링거줄을 거쳐 유리관으로 만든 메모리캡슐로 들어간다. 분자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다공성 고분자수지에 들러붙어 원래보다 농도가 짙은 액체방울로 응축된다. 이 메모리캡슐은 분리해 휴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마들렌은 상용화되지 못했다. 냄새를 찍는 과정이 번거로운데다 휴대하기 불편해서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마트폰처럼 간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냄새를 마음대로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등장할 날이올 것이다.


▶Delete: 냄새로 냄새 잡는 ‘스멜캔슬링’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의 탈리바이스 박사팀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냄새를 발견해 2012년 12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그 냄새는 놀랍게도 바로 ‘무취’였다.
연구팀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냄새분자 86개를 선택했다. 그 중에 4개씩, 10개씩, 15개씩…, 40개씩, 43개씩 골라 희석한 뒤, 동일한 양만큼 섞었다. 그 결과 모두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심지어 다양한 종류를 섞을수록,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람의 코는 다양한 냄새 분자 중에 농도가 짙은 것 위주로 냄새를 맡는데, 연구팀이 만든 향에서는 모든 분자가 똑같은 양만큼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자연에서 들리는 편안한 잡음인 백색소음에 착안해 이 냄새에 ‘백색냄새’라는 이름을 붙였다(DOI:10.1073/pnas.1208110109).
이 연구 결과는 하나의 냄새를 다른 하나, 또는 여러개의 냄새로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착안해 미국 일리노이대와 IBM 토마스왓슨센터 연구팀은 악취를 없애는 ‘스멜캔슬링’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악취에 대적할 냄새를 더해 백색냄새를 만들어 코가 더 이상 악취를 느끼지 않게 하는 게 목표다. 이 기술은 갠지스강처럼 악취가 심각한 환경을 개선하거나, 쓰레기처리장과 정화조에서 작업할 때 냄새로 인한 어려움을 줄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