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물질상태 플라즈마. 2만℃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성질을 이용해 물리학과 재료공학의 발달 뿐 아니라 핵융합 발전이 가능해지고 있다.
인류의 고민거리인 에너지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길은 없을까. 이 숙제를 풀 한가지 방법을 미래의 에너지원이라는 핵융합이 있다. 그런데 핵융합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나오는 말이 플라즈마(Plasma)이다. 플라즈마란 무엇일까.
플라즈마의 어원
플라즈마라는 말은 원래 '틀에 넣어 만든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그 뜻이 변하여 젤리같이 말랑말랑한 상태의 물질을 의미하여, 세포의 원형질이나 우리 몸속의 혈장 등을 가리켜서 플라즈마라고 부른다. 아마도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이 젤리를 만들때 틀에 넣어서 만들기 때문에 말뜻이 변화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플라즈마라는 말을 물리학 용어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물리학자 '랑뮈어'(Langmuir)로서, 전기적인 방전으로 인해 생기는 양이온과 전자들의 집단을 플라즈마라고 불렀다. 1928년의 일이다. 1970년에는 '알펜'(Alfven)이라는 사람이 이 분야의 업적을 인정 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또 이제는 영원한 에너지 문제해결의 기본이 되는 학문으로 까지 발전되어 가고 있으니, 플라즈마 물리학이 얼마나 새로운 분야이고 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왜 '랑뮈어'가 양이온과 전자의 집단을 끈적끈적한 액체상태에 비유해 플라즈마라고 불렀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보통의 중성입자로 구성된 기체에서는 기체의 입자들간의 간격이 거의 영이 되어야만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서 상호간에 힘을 미치고 거리가 조금만 떨어져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거의 모든 입자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학교 운동장에 50명 가량의 장님들을 지팡이도 주지않고 흩어져 움직이게 하면 서로 닿는 위치에 있는 일부만 제외하고는 상호간에 아무 상관없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전하를 띤 플라즈마 입자들 사이에는 전장이 존재해서 쿨롱의 법칙에 따라 서로간의 전기적인 힘이 멀리서도 미친다. 그러므로 플라즈마에서는 모든 입자가 다른 많은 입자들과 동시에 힘의 작용을 주고 받기 때문에 플라즈마 입자들은 젤리와 같이 접착력 있는 운동을 하게되고, 이러한 성질을 발견한 '랑뮈어'는 플라즈마라는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것은 운동장에 흩어져있는 모든 장님들을 이제는 고무줄로 서로 묶어 놓아서 그들의 움직임이 응집성이 있는 상태가 된 것에 비유되겠다.
제4의 물질상태
이와같이 일반적으로 전하를 띤 입자들의 집합체를 플라즈마라고 하고 그 물리적인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 플라즈마 물리학이다. 전하를 띤 입자들로는 흔히 전자를 잃어버린 상태의 양이온, 전자를 더 얻은 상태의 음이온, 자유전자, 고체내부의 양공(전자로 차 있어야 할 전자띠 내부에 전자의 결핍이 생겨 양전기를 띤 전자처럼 움직이는 일종의 구멍) 등이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플라즈마에서는 양이온과 자유전자가 기체처럼 퍼져있으며 양과 음의 총 전하수는 거의 같아서 전체적으로는 전기적인 중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텔레비젼 브라운관 내부의 전자총이나 입자가속기에서와 같이 전자나 양이온만으로 구성된 플라즈마도 있다.
독자들 중에는 '플라즈마는 제4의 물질상태'라는 말을 읽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질중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는 제1의 물질상태 고체이다. 이것이 열을 받아서 에너지를 더 주입 받음에 따라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커져서 제2의 물질상태인 액체로 상태의 전이를 일으킨다. 그 다음에는 제3의 물질상태인 기체로 되고, 또 더 큰 에너지를 받으면 분자가 원자로 분리되고 전자가 원자로부터 결함을 끊고 분리해 나와서 이온화된 입자들의 집단인 플라즈마 상태로 변환한다.
기체로 부터 플라즈마로의 변환은 다른것과는 달리 서서히 일어나므로 열역학적인 의미에서는 상전이라고 부를 수가 없으나, 플라즈마의 물리적인 성격이, 다른 세개의 상태와는 너무나 다르므로 '제4의 물질상태'라는 말을 흔히 쓴다.
옛날 사람들이 플라즈마 물리학을 별로 연구하지 않았던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은 이미 매우 식어서 그 에너지 상태가 낮은 편이다. 그래서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존재하는 플라즈마는 그저 번개불빛이나 극광현상 같은 신비하고 가까이 접할 수 없는 것으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주구성물질의 99% 가량이 플라즈마상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것이 플라즈마이다. 당장 우리가 지구로부터 멋어나기 시작하면 고공에 있는 공기부터 이온층이라는 플라즈마 상태로 존재하기 시작해서 플라즈마의 세상으로 바뀌고 만다. 지난 봄에 우리의 잠을 설치게 했던 핼리혜성의 아름답고 긴 꼬리도, 우리의 생명원천인 태양을 비롯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도, 그리고 우주공간을 채우고 있는 희박한 성간기체 입자들도 거의 모두가 플라즈마 상태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플라즈마 상태에 있지 않은 예외적인 1%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플라즈마 물리학의 역사
역사적으로 보면 플라즈마 물리학은 19세기 말엽부터 기체방전을 설명하기위해 시작되었으며 '제4의 물질상태'라는 말도 이때에 '크룩스'(Crookes)라는 물리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후 20세기에 들어서 플라즈마라는 말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랑뮈어'에 의해 처음으로 쓰여지고 '통크스'(Tonks), '랑뮈어' 등의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해서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어 20세기 중엽에 텔레비젼이나 전축 등의 급격한 보급을 가능케한 3극 진공관같은 기술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한편 '스피처'(Spitzer), '알펜' 등의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라즈마 물리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많은 업적을 남기고 마침내 1970년에 그 공로가 인정되어 '알펜'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졌다.
1952년경에는 인류의 숙원인 영원한 에너지문제 해결이 플라즈마 핵융합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의 강대국들은 이 분야를 장기적인 국책과제로 정해서 플라즈마 물리학에 막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그에따라 급격한 학문의 발전을 보기 시작했다.
그 중점적인 지원의 예로 미국에서는 2차대전 때 원자폭탄은 연구하기 위해 결성했던 대규모 국책 연구계획인 '프로젝트 셔우드'(Project Sherwood)의 목적을 폴라즈마 핵융합으로 돌려서 지금까지 계속 매년 봄에 회합을 가지고 있으며 필자도 매년 참석해 왔었다. 누가 먼저 성공하느냐에 따라 강대국의 서열이 바뀌게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이 연구계획은 빠른 속도로 각국으로 번져서, 이제는 대부분의 중·선진국들이 인류 공동의 숙제에 다같이 도전하고 있다.
수년전에는 플라즈마 물리학을 이용하면 더욱더 효율적인 입자가속기를 만들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도시만한 크기로 자꾸만 커져가는 입자 가속기의 건설로 골치를 앓던 물리학계는 당연히 이 문제를 활발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현재 미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속칭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는 거대하나 우주 방어계획에 플라즈마의 이용이 주된 과제의 하나로 들어있어 앞으로 급격한 발전을 볼 것으로 기대 된다.
2만℃의 세계
물질이 플라즈마 상태에 있자면 대부분의 경우 그 온도가 최소한 2만℃ 가량은 되어야 한다. 상상할 수 없이 높은 온도이다. 우리는 이렇게 고온의 물체가 우리몸 가까이에 있다면 우리몸이 타버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주변에는 플라즈마를 쉽게 만들수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쓰는 형광등만 하더라도 그 내부는 양이온과 전자로 분리되어 있는 플라즈마상태이고 그 온도는 최소한 2만℃ 정도가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즉각 "형광등에 손을 가져가도 그렇게 뜨겁게는 느껴지지 않던데?" 하며 반신반의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뜨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형광등 내부의 플라즈마 입자들의 밀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렇게 높은 온도의 입자들이라도 몇개 안되는 갯수가 유리벽을 때리기 때문에 실제로 유리벽에 전달되는 에너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 현상은 사우나탕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알몸으로 1백℃ 이상의 뜨겁고 건조한 사우나 실에 들어가도 피부를 데지 않는다. 그러나 사우나실 내부에 수증기가 차면 어떻게 될 지는 부엌에서 채소를 찜통에다 요리해본 사람이면 금방 알 수 있으리라. 사우나실에 "젖은 수건을 갖고 들어가지 마시요"라는 표시가 있는 이유를 우리는 이제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찜통의 밑바닥에 물을 넣지 않고 채소를 찌면 왜 익지 않는지도 이제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온도가 10만℃ 이상이 되면 대부분의 물질은 플라즈마 상태로 변한다. 현재 핵융합실험에 사용되는 플라즈마의 온도는 약1억℃ 가까이 된다. 이는 태양의 내부온도 보다도 10배가량 더 높은 무시무시한 온도이다. 이 정도로 고온이 되면 밀도가 낮더라도 형광등이나 컴퓨터 화면에서와 같이 유리같은 물질로 플라즈마를 가두어 놓을 수가 없다. 1억℃의 입자에 직접 닿으면 닿은 분자들은 그대로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플라즈마를 가두는 다른 방법을 상상하게 되었다.
플라즈마를 가두는 방법들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플라즈마 입자들은 전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전자기적인 힘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플라즈마에다 외부에서 비교적 강한 자장을 걸어주면 플라즈마 입자들은 자기력선에 수직한 방향으로는 자유운동을 하지 못하고 자기력선을 축으로 해서 작은 반경으로 빠른 속도의 자기회전운동을 하게되고 자기력선을 따라서만 자유운동을 하게 된다. 이는 마치 빨래줄에 주판알을 끼워놓은 상태와 같으며 자기력선이 빨래줄의 역할을 하고 주판알은 플라즈마 입자의 역할을 한다.
물리학자들은 플라즈마 입자들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강한 자기장을 걸어 고온의 플라즈마를 감금시키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오늘날 많은 핵융합 실험 장치들이 자기(磁氣) 그릇으로 만들어져 1억℃가까이 되는 입자들이 물질벽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다.
다음으로는 물리학자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플라즈마 입자들의 운동을 계산하는지 알아보자. 한개 혹은 두개의 물체에 대해 운동방정식을 세우고 계산하는 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듯이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세개 이상의 물체간의 상호작용을 기술하기는 무척 어려워지며, 이를 다체문제라고 부른다. 플라즈마 입자들의 갯수는 보통 1㎤당 ${10}^{8}$~${10}^{18}$정도이며 모두가 서로 전자기적인 힘을 미치면서 행동하므로 모든 입자들을 일일이 따라 다니며 계산하기는 현대의 기술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경우를 이해하기 위해서 통계학을 이용하며 이러한 분야를 통계물리학이라 부른다.
일일이 모든 입자들의 행동을 계산하는게 아니라 '어느 위치에서는 입자가 이렇게 행동할 확률이 얼마이다'라는 것을 계산하는 것이다. 혹은 더욱 간단히 평균치만 따져서 '어느 지점에서는 평균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가'하는 것을 고찰하기도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유체역학이라는 물리학 분야를 이용한다.
이렇게 편리한 기술방법을 사용해도 종이 위에서의 해석학적인 계산이 너무 복잡하고 풀지 못할 경우가 많아져서 아예 그럴바에야 처음부터 입자 하나하나의 운동을 컴퓨터로 계산하는 물리학자들도 있다. 물론 ${10}^{18}$개(1조개의 1백만배)의 입자를 모두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수백개 정도로 줄인 간략화시킨 플라즈마를 계산한다. 이때 초대형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점 연구분야
플라즈마 물리학자들이 현재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 몇개만 든다면 플라즈마의 효과적인 가열방법, 플라즈마 내부에서의 입자 및 에너지 수송현상(Transport Phenomena), 입자-파동 상호작용 및 불안정현상, 그리고 플라즈마 난류(Turbulence)현상 등이다. 가열방법으로는 가정에서 쓰는 전열기처럼 플라즈마 내부에 전류를 흘려준다든가 전자레인지처럼 전자파를 사용한다든가 레이저나 입자선속(粒字線束)으로 직접 에너지를 전달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는데 특히 대형의 핵융합장치를 위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송현상은 플라즈마를 한 곳에 모아두는 것을 방해하는 내부적인 작용이다. 이 현상 때문에 우리가 실험실에서 매우 좋은 착안을 하여 플라즈마를 한 곳에 가두어 두는 방법을 고안해 내더라도 플라즈마는 스스로 새어나가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셈이다.
어디에 갇혀있지 않으려는 것은 물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만물공유의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수송현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원리를 최대한으로 이해해서 수송현상에 의한 입자 및 에너지의 손실을 최소화 시키자는 게 이 연구의 주목적이다.
입자-파동 상호작용 현상은 플라즈마 입자가 전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플라즈마 내부에서 전자파는 하전입자와 작용하여 그 에너지를 서로 교환한다는 것이다. 하전된 입자가 움직이면 전장과 자장의 움직임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전자파로 퍼져나간다.
수많은 하전입자의 움직임으로 인해 플라즈마 내부에는 각양각색의 전자파가 존재하고 이렇게 생성된 전자파는 그 강도가 무척 미약하다. 그러나 그중의 어떤 전자파는 조건이 맞으면 짧은 시간에 매우 큰 강도로 자랄 수가 있다. 이것을 가리켜 파동의 불안정현상이라 하며, 어린이들은 이러한 원리를 몸으로 이용하여 그네를 탄다. 몸의 움직임이 적합하게 되면 그네의 진동 진폭은 점점 커지는 것이 그것이다.
이 파동의 불안정성 현상은 대부분의 플라즈마 실험에서는 입자들의 지나친 '그네타기 현상'으로 해로운 것이지만, 또 많은 경우에는 그것을 이용하여 고강도의 전자기파를 만들어 낼 수도 있으니 유익하기도 하다. 부엌의 마법사 전자레인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치는 태양풍도 태양표면에 존재하는 플라즈마파의 불안정성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플라즈마 난류현상은 위에서 소개한 불안정한 전자파가 여러형태로 섞여서 서로 난무하여 플라즈마를 큰 폭으로 무질서하게 흔드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찌게를 데울 때에 골고루 더워지게 하기위해 휘저어 주는데 이는 찌게 입자들을 흔들어 줌으로써 찬 부분과 더운 부분이 자주 닿게해 열전도가 빠르게 해주고자 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플라즈마 난류현상은 큰 에너지 수송현상을 가져와서 플라즈마 내부의 온도를 높이는 데 큰 방해를 하기 때문에 플라즈마 핵융합 실험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플라즈마 핵융합의 매력
플라즈마 물리학의 응용분야중 가장 큰 관심거리는 역시 플라즈마 핵융합에 있다. 우리가 현재까지 알고 있는 연료자원은 모두 그 양이 유한하여 우리가 다 쓰고 나면 인류의 자손들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까마득한 훗날 일을 왜 지금부터 걱정해야 하느냐고 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먼 훗날 얘기가 아니다.
당장 다가올 우리의 아들, 손자 세대에서는 이미 자동차 같은 데에는 그 귀한 휘발류를 쓰지 못하고 액화된 석탄같은 것을 공급받을 것이다. 연료값은 매우 비싸질 것이고 석탄같은 연료자원이 변변치 못한 국가들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비싼값을 지불하고 연료를 수입하게 되어 경제적으로 상당한 곤란을 받을 것이다.
플라즈마 핵융합이 성공한다면 가장 원시적인 연료가 바닷물속에서 뽑아낼 중수소이다. 바닷물은 사용해도 자연적으로 보충이 계속되는데, 1갤론의 보통 바닷물로 3백갤론의 휘발유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낸다면 우리 인류는 에너지 걱정을 할 필요가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까운 일본, 인도 및 중공을 비롯한 세계 열강들이 플라즈마 핵융합을 장기적인 국책으로 삼아서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플라즈마 핵융합을 한 문장으로 기술하자면 희박한 기체상태의 이온들에 열을 가해서 그 열에너지로 핵사이의 밀치는 힘을 이기고 서로 융합을 하게 하여 그때 생기는 질량 손실을 에너지의 형태로 얻어내는 것이다.
이런방식으로 일어나는 핵융합은 수소폭탄처럼 폭발적으로 진행될 수가 없다. 폭발적이기는 커녕 서서히 일어나는 것도 어려우니까 아직도 플라즈마 핵융합이 성공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플라즈마 핵융합을 전문용어로는 제어된 열핵융합(Controlled Thernomuclear Fusion)이라고 부른다.
현재 추구되고 있는 플라즈마 핵융합의 방법으로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 방법이 수소폭탄의 작용원리와 비슷한 충격 핵융합법(Inertia Fusion)이다. 이는 핵융합 연료기체가 든 작은 구형의 연소통에 고에너지의 레이저나 입자선속(Particle Beam)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쏘아서 에너지 충격파가 연료를 연소통의 중심부로 압축가열시켜 고밀도의 플라즈마를 만들어 핵융합을 얻는 받법이다.
인공태양을 만든다
두번째 방법은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자기그릇속에 가두어진 플라즈마를 높은 온도로 가열시켜서 핵융합이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자기핵융합'(Magnetic Fusion)이라 불리어진다. 이는 태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나 지구상에 인공의 태양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태양과 다른 점은 태양을 이루고 있는 플라즈마는 워낙 총 질량이 커서 중력에 의해 강한 결속이 되어 있지만(태양보다 질량이 무척 작은 지구 표면에서도 우주선을 쏘아 올리자면 얼마나 힘든가?), 우리의 실험실에 있는 플라즈마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장과 같은 것을 이용하여 서로 결속을 시킨다는 점이다.
현재 충격 핵융합법보다 자기 핵융합법이 훨씬 더 발달해 있으며 그중에서도 '토카막'(Tokamak)이라는 실험장치가 가장 앞서 있다. '토카막'은 도우넛 모양으로 생겨서 표면의 자력선은 도우넛에 실을 감는 것처럼 도우넛 표면을 빙글빙글 계속 돌아다닌다. 이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플라즈마입자들은 자기력선을 따라서 빨래줄에 꿰인 주판알처럼 움직이니까 입자들을 외부로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자기력선이 계속 플라즈마 내부에서만 돌아다녀야 한다는 사실과, 위상수학에 의하면 3차원 공간에서는 도우넛형이 이것을 만족시킨다는 두 사실에서 착안된 것이다.
1960년대에 소련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운행된 이 실험장치는 곧 미국과 여러나라로 번져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는 집채만한 외형을 가진 '토카막'이 몇개씩 존재한다.
현존하는 세계 3대 '토카막'을 들라면 영국의 JET(Joint European Tokamak, 유럽 공동'토카막'), 일본의 JT-60, 미국의 TFTR을 들 수 있겠다. 영국의 JET는 플라즈마연소실 내부가 높이 4m이고 도우넛형으로, 한 바퀴 도는 자장은 25kG(킬로가우스)이다. 이보다 작은'토카막'실험장치들은 세계 각 주요 대학 및 연구소에 수없이 많다.
아직까지는 핵융합 반응으로 나오는 에너지가 플라즈마를 가열시키는데 드는 에너지 보다 약간 더 많아서 에너지의 수지결산이 맞지 않는다. 이렇게 에너지의 수지결산을 맞추자면 약 1억℃의 플라즈마를 밀도×저장시간=${10}^{14}$초/㎤이 되게 가열저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저장시간이 약0.8초일 때 밀도가 3×${10}^{13}$/㎤이 되어 밀도×저장시간=2.4×${10}^{13}$초/㎤로 계산될 정도로 발전되어 있으면 1~2년내에 에너지의 수지결산을 맞출 계획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에너지 수지결산이 맞았다고 해서 인류의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물리학적인 측면에서의 문제해결이고 그 다음에는 여러가지 공학적인 문제가 남아있어서 플라즈마 핵융합 발전소의 상업적인 건설은 물리학적인 성공이후에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또한 '토카막'이라는 실험장치가 물리학적인 면을 성공시키는 데는 가장 적격일지 몰라도 공학적이나 상업적인 면으로는 부적격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이유로 이미 '토카막' 이후의 핵융합 장치도 활발히 연구 되고 있다.
강대국의 국력경쟁
장래의 에너지 강국은 곧 장래의 힘의 대국이 되기 쉬운 관계로 웬만한 국가들이면 모두 이 인류공동의 숙제에 도전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주요대학마다 플라즈마 물리학 연구소가 있어서 핵융합 및 기초적인 플라즈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에너지부는 그 나름대로 연구소를 두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토카막'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수개의 대규모 플라즈마 연구소를 두어 수천명의 과학자를 동원하고 있다.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미국의 플라즈마 분야 예산의 증가율은 석유값에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는 석유값이 내린 상태이니 미국의회에서는 에너지 개발보다는 다른 분야의 시급한 곳에 예산을 늘리고 있어서 에너지 개발은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지난 79년의 에너지 파동때에는 플라즈마 분야의 예산이 급증했었다. 미국이 플라즈마에 쏟는 돈의 규모는 현재 자기 핵융합 한 분야만해도 약3억달러 정도이니 석유값이 내렸어도 그 액수는 대단하다.
에너지 자원이 결핍되어 앞으로 점점 커질 액수의 에너지 자원 수입으로 고심하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은 플라즈마 핵융합을 더욱 절실하게 추구하고 있다. 세계 제1, 2위의 '토카막'이 유럽과 일본에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현재 다음 세대의 기계에 해당하는 '핵융합시범장치'가 고안중에 있어 곧 주도권을 재확인할 것으로 판단된다.
플라즈마 물리학의 무한한 이용분야
우리나라에서도 두개의 소형 '토카막'이 서울대학교와 에너지연구소에서 제작 되고 있으나 아직은 재정적인 지원이 다른 분야에 비해 거의 없는 상태이다.
현재 플라즈마 핵융합이 플라즈마 물리학의 최강의 도전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다른 응용분야를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다. 그 예로서 플라즈마를 이용한 동위원소의 분리 및 우라늄 농축, 우주 탐험선에 사용될 플라즈마 추진장치, 보다 효과적인 발전을 위한 자기유체 발전기(MHD발전기), 고집적회로제작에 필요한 플라즈마 에칭, 고출력의 레이저 발생을 위한 레이저 플라즈마연구, 천체및 성운의 형성 연구 등의 수많은 분야를 들 수 있다. 또 최근에 발견된 플라즈마 입자가속기는 입자물리학의 연구에 매우큰 희망을 가져다 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플라즈마 물리학의 발달은 그 자체의 발달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부수적인 업적을 남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론 분야로는 비선형물리학이나 다체물리학, 전산물리학 분야에서 보인 플라즈마 물리학자들의 눈부신 활약은 그 분야의 폭발적인 진보를 가져와 어떤물리학자들은 플라즈마 물리학이 '이론의 혼돈상태'를 가져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실험적으로는 대규모 핵융합장치에 쓰일 고강도 자기장의 형성에 필요한 초전도 코일기술의 발전, 1억℃의 온도와 고강도의 자기장이 내는 힘에 견딜물질의 개발을 위한 재료공학의 발달, 가열방법의 발달, 막대한 에너지를 플라즈마에 주기 위한 세계 최고 에너지의 레이저광선 및 고밀도 입자선속기 기술의 발달, 고용적의 진공 기술의 발달 등에 기여한 업적은 헤아릴 수 없다.
플라즈마 물리학의 연구를 한다는 것은 우리도 인류 첨단의 과제에 도전한다는 학문적인 우월성의 발로가 된다. 아울러 인류공동의 숙제를 푸는데 참여한다는 국가적인 책임감을 진다는 뜻도 된다.
뿐만 아니라실 용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핵융합발전의 성 공적인 실현에 대비해 그 분야의 기초적인 기술을 키운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국내 에서의 활발한 연구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