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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뉴스] 천경자 ‘미인도’ 진위 논란… 과학은 알고 있다?

가녀린 몸에 큰 눈망울, 굳게 다문 입술, 풍성한 머리칼과 화려한 꽃 장식, 어깨 위의 나비….

‘미인도’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답게 화려하면서도 수수한 멋이 있다. 하지만 25년간 진위 논란에 시달렸다. 천 화백이이 작품을 두고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왠지 낯설다. 다른 작품과 달리 시커먼 코끝과 뚜렷한 인중, 힘이 없어 보이는 눈빛.

화가는 ‘미인도’를 매몰차게 부정했지만, 당시 국내 그림 전문가들은 천 화백 본인이 그린 것이 맞다고 결론지었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못 알아보는 부모가 있을까! 천 화백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이 작품의 진위여부는 아직도 가려지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프랑스의 미술감정업체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멀티스펙트럴 인스티튜트(LTMI)’에 의뢰했다. 그리고 LTMI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미인도’의 진위를 밝히러 왔다.


그림을 2억4000만 개 조각, 1650층으로 나눠 분석
LTMI의 장 페니코와 파스칼 코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흰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방’ 등 여러 명화를 분석했다. 그들은 자체 제작한 다중스펙트럼 카메라를 활용한다. 이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는 1mm2를 525개 조각(픽셀)으로 쪼갤 만큼 정밀하다. 게다가 그림 층을 1650개 이상으로 얇게 해체해 관찰할 수 있다.

이렇게 세밀하게 관찰하는 이유는 화가마다 그림을 그릴 때 선을 긋거나 붓질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면서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게 쪼개고 겹겹이 쌓인 층을 한 층씩 분석해보면 붓질은 물론, 물감이 가린 스케치도 볼 수 있다. 눈대중으로 얼굴형이나 피부색, 눈코입의 모양과 위치는 따라할 수 있어도 미세한 붓 터치와 선 스타일, 색채 표현은 따라 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들은 문제의 ‘미인도’ 뿐만 아니라 천 화백이 그린 아홉점의 작품을 동일한 방법으로 분석해 비교했다. 다중스펙트럼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디지털화한 뒤, 화가가 전체적으로 빛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관찰했다. 또 눈의 흰자위에 입힌 하얀 안료의 두께를 측정해 붓질의 스타일을, 눈의윤곽선 각도를 재 선의 스타일을 알아냈다. 총 일곱 가지 사항을 관찰했다.

그 결과 미인도를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모든 사항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유일하게 미인도만이 눈에 띄게 다른 결과가 나왔다.

예를 들어 눈의 윤곽선을 그릴 때 코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과, 눈꺼풀 위쪽에서 한 번 꺾이는 부분의 점 두 개를 선정했다. 각 점을 좌표로 나타낸 뒤, 두 점을 잇는 획을 연장했을 때 그릴 수 있는 원의 지름을 계산했다. 화가가 곡선을 그릴 때 습관으로 배어 있는 손동작을 보기 위해서였다. 만약 한 사람이 그렸다면 눈을 그릴 때 곡선을 긋는 스타일이 같을 것이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그림은 각 점에서 곡선을 연장했을 때 생기는 원의 지름이 200픽셀 안팎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미인도만 눈에 띄게 다른 결과(434.65픽셀)가 나왔다. 장페니코 LTMI 사장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미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지름이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며 “천경자 화백이 평소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선을 그었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미인도는 확실히 가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도 끝내지 못한 논란
그러나 지난해 12월 19일, 검찰은 LTMI가 분석한 과정을 신뢰하기 어렵다면서 미인도가 진품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명암을 대조한 표준편차값을 구하는 방식이나 눈동자 흰자위의 두께가 진품끼리는 서로 비슷하다는 전제가 타당한지 의문이 있으며, LTMI에서 사용한 계산식을 따라해 보면 진품인 ‘테레사 수녀’도 진품일 가능성이 4%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페니코 사장은 “우리가 사용한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검찰에서 사용한 방식으로는 미인도가 진품일 가능성이 0.0000000006%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연구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다”며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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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사진

    사진 L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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