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혜정 씨, 천체투영관은 오늘도 선선한가요? 떠나오고 나서 천체투영관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처음 과학관에 갔을 때 면접까지 시간이 남아서 티켓을 샀었죠. 그런데 열 명이 채 차지않아 상영이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멋진 공간에서 멋진 상영물을 틀어주는데 사람들은 왜 오지 않을까요? 저도 모르게 그때 너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나봐요. 환불을 하고 오면 혜정 씨가 몰래 제일 짧은 걸 하나 틀어주겠다 했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혼자 그 아름답고 둥근 천장 아래, 맨 뒷자리에 앉아 우주 여행을 했지요. 십 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혜정 씨의 친절함과 오래된 우주의 친절함이 꽤 닮아 있다고 생각하며, 과학관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길 바랐습니다. 상영이 끝나자 혜정 씨가 눈으로 웃으며 물었던 게 기억나요. “대학생이에요?” 제 면접 복장이 그렇게까지 부적절했던 건지, 아니면 혜정 씨의 나이 가늠이 유난히 형편없었던 건지 모르겠어요. 대충 학생인 척할 수도 있었지만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아, 오늘 학예관 면접…….” 하고 흐리게 대답하고 났을 땐 혜정 씨도 저도 잠시 굳고 말았네요. 얇은 여름 셔츠와 갈색 면 스커트 차림으로 갔는데도 다행히 취직이 결정되었고 우리는 점심을 함께 먹는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친절한 혜정 씨와 먹는 점심은 언제나 즐거웠다고, 꼭 말하고 싶었어요.

여전히 혜정 씨에게만은 거짓말을 하기 싫어요. 제가 과학관에 보낸, 아파서 그만둔다는 사직서는 가짜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왜 갑자기 휴가 이후 돌아가지 않았는지, 제대로 설명하려면 대학 때 동아리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속했던 동아리는 ‘넥스트 핫 싱(Next Hot Thing)’이란 이공계 전공자들의 연합 동아리였어요. 동아리 이름이 너무 부끄러워요. 그 이름을 지은 선배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어요. 90년대 말 실패한 아이돌 그룹 이름 같지만, 서로 다른 과 학생들이 모여 미래지향적인 연구와 발명을 하는 동아리였죠. 실상은 더 번듯한 동아리에서 떨려 나오거나 애초에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괴짜들만 모여 있었어요. 애완용 초파리 박람회를 개최한다든가(아무도 애완용으로는 키우고 싶어 하지 않죠!) 자동 디스코 땋기 기계를 만든다든가(여기 머리카락을 빌려주었다가 다 뽑힐뻔했어요!) 솔잎 음료수로 달리는 자동차를 시연한다든가(1미터도 채 움직이지 못했죠!) 『수강신청을 돕는 해킹』이라는 소책자를 인쇄한다든가(폐부 위기였고요!)…… 그런 활동들을 했습니다. ‘넥스트 유즈리스 싱(Next Useless Thing)’이나 ‘넥스트 스투피드 싱(Next Stupid Thing)’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을지도요. 부끄러우니 이제 NHT라 부를게요.

NHT 전에는 늘 운동부였어요. 조정부도 하고 수상스포츠부도 하고 검도부도 했었죠. 취향이 늘 목과 어깨가 두터운 남자였어요. 키가 크지 않아도 실팍한 느낌을 주는 그런 타입요. 그런데 지나치게 남자다운 남자들과의 연애는 늘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잘은 몰라도 과도한 남성 호르몬은 성공적인 연애를 방해하는 것 같아요. 조금 지쳐 있는 마당에, 축제에 나온 NHT의 텐트 아래에서 그 사람들이 케이크를 먹으며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걸 봤어요. 주사위를 던지며 수달 같은 소리를 냈죠. 성별에 상관없이 그저 좋은 생물들 같았어요. 나한텐 저런 집단이필요해, 싶었달까요? 그렇게 예감인지 확신인지에 넘쳐 가입했습니다.

처음에는 여학생들도 없지 않았는데, 한 학기 만에 모두 탈주하고 열한 명의 선배 오빠와 저만 달랑 남게 될 줄이야……. 아, 이거 그거다, 영락없는 『백조 왕자』.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죠. 설마 이 열한 명의 저주를 다 풀어줘야 하는 걸까? 오빠들을 바라보며 떨떠름해 했던 대학 생활이었어요. 그때의 사진첩에는 주로 피자나 치킨이나 골뱅이무침을 앞에 두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오빠들이 가득해요.

그런데 열한 명이 있으면, 한 명쯤은 마음에 들어오게 되어있잖아요. 오빠 11이 그랬어요. 왜 11이냐면 제일 조용해서. 항상 열한 번째로 말하는 사람이어서. 오빠 11의 이름은 이기준. 기준 오빠였어요. 지질학과 사람이었고, 고생물학자가 꿈이라 주말에도 방학에도 내내 필드워크를 다녔죠. 키는 큰데 엄청 말라서 몸무게는 저랑 비슷했을지도 몰라요. 얼굴은 부드럽고 긴타원형이었지만 몸은 직선만 그릴 줄 아는 아이가 그린 것처럼 온통 직선이었어요. 그 직선이 좋았습니다. 언제나 주머니가 많은 바지를 입고 비스듬히 서 있던 모습이 기억나요.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화석 때문일까요?

기준 오빠는 필드에 다녀오면 작은 화석을 하나씩 제게 선물했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유경아, 이거 가질래?” 하고 대수롭지않게 말예요. 자세히 봐야 화석 같은 돌멩이들이었어요.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기념품점에서 2만 원이면 살 수 있는 흔한 화석. 고사리 이파리가 살짝 보일락 말락 한 것들 혜정 씨도 본 적 있죠? 저는 빈 초콜릿 박스에 그 화석들을 모았어요. 박스가 다 차기 전에 기준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것만은 확실하네요.

아니, 역시 화석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우리 둘의 기분 좋은 의례이긴 했지만요. 좀처럼 말다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좋아했어요. 농담으로라도 비열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배려해주고 신경 써주는사람이라 좋았어요. 오빠는 자주 아팠는데, 그래서인지 제가 조금이라도 아픈 날이면 귀신처럼 알아채곤 했었어요.

오빠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았더라면, 좋아한다고 더 일찍 말했을 텐데.

대학원에 막 들어간 참이었어요. 오빠가 유년 시절에 앓았던 암이 재발해 학교를 그만둔 것은. 우리 모두와 연락을 끊고 사라진 것은.

그리고 동아리는 와해되었어요. 그 말 없는 사람이 우리를 이어 붙이는 접착제였던 거예요.


끼룩끼룩 꽥꽥 하던 다른 오빠들은 사회에 진출하고 자리를 잘 잡아갔어요. 학계에 반쯤, 기업에 반쯤 가고 한 사람은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죠. 그러곤 우수수 결혼도 했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제가 너무 미숙할 때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렇지, 오빠들도 사회의 멀쩡한 일원인 거겠죠. 괴짜들은 갑자기 번듯해졌습니다.

오빠들의 결혼식에 갈 때마다, 2주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어요. 적게 먹고, 옷을 사고, 피부 관리를 하고, 머리를 했죠.

어쩌면, 기준 오빠가 올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오지 않았습니다. 네 번쯤 그 짓을 하고 나니 오빠가 오지 않을 거란 걸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을 붙잡고 기준 오빠의 소식을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거든요. 나만 오빠의 안부를 이렇게 간절히 궁금해하는 걸 들키기 싫었어요. 그저 건강하기를 바랐지요.

국내에서의 취직이 실패해 호주의 해양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프로젝트 때문에 배도 타다가, 귀국하여 과학관으로 오게 된 건 혜정 씨도 잘 아는 이야기죠. 네, 그동안 저는 기준 오빠를 만나지도 소식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늘 생각했어요. 기준 오빠는 저의 기준이 되어버렸던 거예요. 누굴 만나도 그때 오빠가 내 손에 작은 돌멩이들을 쥐여줄 때의 친밀감과 충족감을 느낄 수는 없었어요. 펭귄 수컷처럼 돌을 선물하던 남자 때문에 제 나머지 연애들은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른 오빠 한 명의 이름을 밝혀야겠군요. 저에게 오빠 5, 아니면 오빠 6에 불과했던 김남선 씨에 대해서요. 네, 그 김남선입니다.

한국의 엘론 머스크, 리처드 브랜슨……. 뭐 다들 그렇게 말은 하지만 남선 오빠가 창업 자금을 미국 군수산업계에서 번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죠. 그 이후의 업적은 사실 기행에 가까웠고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기행에 기행을 거듭하는 사람요. 열한 명 중에 제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남선 오빠가 이메일로 자신의 집에 초대했을 때, 처음에는 응할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집이 남아공에 있다고 했거든요. 애들 어학연수 삼아 몇 년 머무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거길 왜 가겠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남선 오빠가 다시 초대를 해왔습니다. 비행기도 일등석으로 끊어준다고 했고, 다른 오빠들은 다 와 있다고 했지요.

다?

전부?

그 말은 기준 오빠도 가 있다는 이야기? 그제야 솔깃했어요.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방식으로 기준 오빠와 남선 오빠는 절친했거든요.

그리하여 제가 휴가를 낸 것입니다.


공항에 무장 경호원이 마중을 나와서 조금 긴장했지만, 남선 오빠의 집은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걸 집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보단 공원을 낀 광활한 주택 단지가 통째 오빠거였으니까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연못가의 하마를 조심해. 그 녀석 성격이 고약해.”

말도 안 되는 인스트럭션이었습니다. 하지만 연못을 크게 돌아 메인 정원에 도착하자, 정말 다른 오빠들이 다 와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도 함께요. 어른들은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있고 아이들은 끝없는 정원을 지치지도 않고 뛰어다녔지요.

저는 눈으로 기준 오빠를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기준인 좀 이따 만나게 해줄게.”

남선 오빠가 소근거렸을 때의 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시답잖은 안부인사와 대화들을 견디며 그 ‘좀 이따’를 기다렸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미니 기차가 왔습니다. 유원지에 다니는그런 것이요. 와인을 몇 잔 걸친 오빠들과 저는 그 미니 기차에 타고 집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가는 거예요?”

제가 물었습니다. 정원에 두고 온 트렁크가 신경 쓰였지요.

“우리 뭐하는지 너 구경시켜주러.”

도착한 곳은 광산 입구였습니다.

“폐광을 헐값에 샀어. 망간 광산이야.”

“폐광을 왜 샀어요?”

“아, 사람이 못 캐서 폐광된 거지. 우리 회사 기술로는 년당 15톤씩 더 캘 수 있어.”

그리고 그곳에는 제어실이 있었습니다. 우주기지처럼 보이는, 흰 이동건물이었는데 규모가 작지 않았죠. 다른 오빠들은 이미 다 와본 듯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제어해.”

“뭐를요?”

그러자 남선 오빠가 작업대 한쪽을 가리켰습니다. 금속성의 무언가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지요. 저는 가까이 가서 그것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오파비니아?”

“디자인만 그래.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가서 효율적으로 채굴해.”

“왜 하필 오파비니아예요?”

그렇게 묻고 나서 저는 대답이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기준 오빠가 제일 좋아하던 화석이니까요.

“우리가 여기서 표면적으로 하는 사업은 망간 채굴이고…… 엘리베이터를 타자.”

열한 명이 탈 수 있을 만큼 엘리베이터는 컸습니다. 그리고 깊이 깊이 내려갔지요. 와, 뭘 얼만큼 판 거야, 저는 그때까지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오빠들이 쭈뼛쭈뼛하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기본 모드가 쭈뼛쭈뼛인 사람들이니까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여러 개의 방을 지났습니다. 철문도 있었고 유리문도 있었지요.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왜 여기다 또 회사를 차렸나 가볍게 궁금해했어요. 다른 오빠들이 뒤로 빠지는 건 깨닫지 못했고요. 저는 남선 오빠와 함께 복도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하고 있는 일은,”

그렇게 말하며 남선 오빠가 그 창문 없는 문을 열었을 때, 저는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주저앉고 만 것입니다. 거기 기준 오빠가 있었습니다. 내 사랑. 내 얼어 있는 사랑.


저는 무릎으로 일어나 어떻게 걷는지 잊은 것 같은 쇼크 상태의 몸을 끌고 탱크 형태의 생명 유지 장치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얼굴만 보였습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창백한 얼굴. 잠든 얼굴.

“기준이를 살리는 거야. 여기서 기준일 살릴 거야. 상태가 너무 나빠지기 직전에 이곳으로 데려왔어.”

“그게 언제?”

혀도 말하는 걸 잊었는지 존댓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4년쯤 됐나?”

“나한테는 왜 말 안 했어?”

“살릴 가능성이 더 높아지면 말해주려 했어.”

“이제는 높아졌어?”

“응. 대안이 여러 개 준비됐어. 그리고 그중 하나를 고르는 걸, 기준이가 너한테 위임했어.”

“뭐라고?”

남선 오빠는 캐비닛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서류 봉투를 하나 꺼냈습니다. 대충 살펴보니 일종의 계약서였지요. 아주 두꺼운 계약서. 정말로 최종 결정은 저에게 위임되어 있었습니다. 매 장 접은 뒷면과 마지막 장에 볼펜으로 한 사인이 있었습니다. 이게 기준 오빠의 사인인가? 낙서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저 쭉 그은 선이었거든요.

“우리가 네 팀으로 나뉘어서 어떻게 기준이를 살릴지 연구했어. 그리고 각자 방향을 잡았지. 네가 결정해주면 돼.”

남선 오빠가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늬들.”

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지요.

“응? 니들?”

“늬들, 여기서 이러고 있었니? 기준 오빠로 프로젝트 하고 있었던 거니?”

입구에 서 있던 다른 오빠들이 스르륵 복도로 나갔습니다.

“기준이가 동의한 거야.”

“그랬을 리가 없어. 이건 사인이 아니잖아. 대충 그은 선이잖아. 얼마나 아플 때 물어본건데? 변호사는 있었어?”

“있었지.”

“오빠 회사 변호사 말고, 기준 오빠 변호사
있었냐고?”

“아, 그쪽은 없었지.”

남선 오빠가 잠깐 숨을 골랐습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물어봤어. 널 다시 보고싶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기준이가 그러고 싶다고 분명하게 말했어. 그런 다음 사인했다고.”

“나가.”

저는 제가 마치 그 방의 주인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제가 위임받은 권리가 대체 무엇인지 몰라도요.

“잠깐.”

후퇴하는 남선 오빠를 다시 불러세웠습니다.

“의자.”

곧 긴 의자와 담요가 그 방으로 배달되어 왔습니다. 저는 그 길지만 불편한 의자에 모로 누워 기준 오빠를, 오빠가 든 탱크를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프레젠테이션 들을래?”

다음 날 아침 남선 오빠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문서.”

4년 동안 이 모든 것을 숨긴 것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저는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축약도 누락도 없는 문서들을 원했습니다. 한 페이지도 빠짐없이 전부를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 그것들을 읽었는데 그래도 20분의 1도 읽지 못했습니다. 복귀일에 복귀하지 못하고 휴가 연장 신청을 낸 건 그래서였습니다.

자기들이 뭐라고 남의 목숨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남아공 탄광 지하에서 말예요. 제가 아는 기준 오빠는 이런 일에 동의했을 리 없다고 끝없이 의심하면서도, 그렇다고 기준 오빠를 깨워 다시 죽게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비공식적인 프레젠테이션이 계속되었습니다. 총네 팀이 따로따로 찾아와 그간 자기들이 해왔던 일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죠. 남선 오빠를 제외하고 두 명 팀이 세 팀, 세 명 팀이 한 팀이었습니다.

첫 팀은 미국 엔지니어들과 기계 의수, 의족과 인공 피부를 개발하고 있었더군요. 근전신호로 움직이는 팔다리는 기대 이상으로 정교했습니다. 저는 기준 오빠의 골육종이 퍼진 위치를 확인하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허벅지 가운데를 잘라야 했습니다. 갈비뼈도 들어내야 했고요. 언젠가 함께 계곡물에 발목을 담그고 있었던 때를 생각했고 그러자 발이 차가워졌습니다.

“성능이 좋은 건 알겠어. 그런데 암이 또 재발하면? 그럴 수도 있잖아. 이미 한 번 재발했는데.”

“응, 그럴 수 있지.”

오빠 1의 눈이 흔들렸습니다.

“척추라든지 다른 부위면? 장기들은 어쩔 거야? 이미 폐와 간이 거의 망가진 형국인데…….”

“그래서 네가 우리 팀으로 결정해주면 인공 장기도 개발할거야.”

오빠 2가 믿음이 가지 않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저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돌려보냈습니다.


오빠 3, 4, 5가 독일 의사들과 하고 있던 것은 유전자 치료였습니다. 저는 제 전공이 아닌 것에 대해 읽다보니 질문이 많았습니다.

“벡터를 뭐 쓴다고?”

“아데노바이러스…… 근데 너 너무 갑자기 반말 쓰는 거 아니냐?”

오빠 5가 불편해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적이 뭐야? 어느 유전자를 바꾸려는 거야?”

“암 유전자의 비활성화를 노리고 있어.”

“이 치료 받은 사람, 몇 명이나 돼? 도리어 백혈병이나 다른 종양이 발생할 수도 있잖아?”

“90년대부터 2000명 정도, 60퍼센트가 악성 종양 환자였어. 부작용은 없을 거라 확신해.”

“어떻게?”

“임상시험을 거쳤으니까.”

그때 저는 오빠들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FDA와 EGE와 수많은 다른 기관들을 피해서…… 그리고 윤리를 피해서. 더는 묻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어요.

“우리 팀은 나노 엔진을 개발했어.”

오빠 6, 7이 일본 과학자들과 개발한 나노 엔진의 우수한 점을 장황하게 늘어놨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나노 엔진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뼈는 뼈보다도 우수한 폴리머로 대체할 거야. 그 부위만 정교하게.”

“장기는?”

“지극히 국소적인 항암 치료를 하는 거지.”

“근데 이건 엔진이지 로봇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우리 프로젝트를 골라주면 더 연구해서……”

몇 년이 더 걸릴 것이고, 몇 년이 더 걸리는 게 정상이지요. 하지만 제가 처한 상황은 정상에서 아주 멀었어요. 저는 고개를 살짝 흔들고 말았습니다.

오빠 8, 9는 앞의 세 팀보다도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더군요. 중국 팀이 태연한 얼굴로 프레젠테이션을 함께했습니다.

“뇌 구조와 전기 신호를 복제할 거야.”

“그럼 몸은?”

“몸이 왜 필요해? 이 모든 것은 결국 인류가 이 거추장스럽고 암이나 피워내는 몸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 아니야?”

“일단 설명이나 해봐.”

“냉동이 중요해. 피를 비롯해 수분 한 방울 없이 뇌를 냉동 처리한 다음……”

“됐어. 나머지는 내가 읽을게.”

“네가 사랑하는 게 기준이의 몸이야? 정신 아니야?”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 각지고 나약한 몸을 제가 사랑하긴 했어도, 사실 오빠와 대화만 할 수 있다면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빠들을 믿지 않아. 그 기술이 온전해지려면 적어도 3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해.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봐. 벌써 완벽히 준비가 되었다고.”

오빠 8은 억지로 눈을 부릅떴으나 9는 시선을 돌렸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다 듣고 나니 왜 남선 오빠가 저를 이 일에 끌어들였는지도 확실해졌습니다. 남선 오빠는 오빠들에 대한 저의 불신을 신뢰했던 거지요. 말하고 나니 참 이상합니다.

저는 3주를 더 고민했습니다. 정말 고민만 했습니다. 정원의 하마를 구경하면서요. 가까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눈으로 하마를 쫓았고 하마도 언제나 저를 의식하고 있었어요. 표정이 읽히지 않는 하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며, 하마를 이해하면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란 듯이 고민했습니다.

“마음을 정했어?”

남선 오빠가 뒤에서 다가와 물었습니다. 투박한, 하마도 기절시킬 수 있을 만큼 크고 두꺼운 머그를 들고서요. 저는 그것을 받아들었습니다. 알 수 없는 맛의 허브 차였습니다.


“1팀에게 허벅지를 맡겨. 그 다리는 어떻게든 살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2팀, 3팀을 합쳐 방향을 재설정해. 내가 원하는 건 4세대 유전자 가위야.”

“4팀은?”

“대기하다가 기준 오빠가 수술대 위에서 죽을 것 같으면 바로 착수하라고 해.”

“수고했어.”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4세대 유전자 가위를 만들어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약간 변형한 3.5세대 유전자 가위로도 충분했어요. 기준 오빠의 골육종과 전이된 암에 걸맞은 면역 세포를 만들었고, 면역세포의 활동을 저해하는 단백질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한쪽 다리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기계 의수로 대체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기준 오빠의 의식을 깨우지 않은 채로 진행했습니다.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은 겪지 않도록요.

마침내 오빠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저는 그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오빠의 눈꺼풀이 움직이는 걸 보며 느낀 감정은 공포에 가까웠답니다. 기준 오빠가 눈을 뜬 다음 모든 게 미친 착오였다고 말한다면, 이런 걸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저는 뒤로 물러섰고, 남선 오빠가 그런 저의 팔꿈치를 잡았습니다.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게요.

기준 오빠가 눈을 떴습니다.


의료인 중 한 명이 안약을 넣어주었어요. 그러고도 한참을 초점을 찾지 못하던 눈이 드디어 초점을 찾았습니다.

의아함.

의아함 말고 다른 표정은 떠오르지 않았는데 방에 있는 사람을 훑어보던 그 눈이 저에게 와서 멎었어요. 오빠들이 제 등을 밀었습니다. 무신경한 인간들.

저는 다가가서 기준 오빠 곁에 앉았습니다. 오빠가 말을 하고싶어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좀 걸릴 거예요. 너무 오래 안 써서.”

누군가 알려주었습니다.

“뭐라고요?”

당황해서 좀 화가 난 듯이 말해버렸는데, 그 순간 기준 오빠가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내가 뭐에 서명했다고?”

“내가 씨발 이럴 줄 알았어. 이 개새끼야, 기억 못한다잖아?”

기준 오빠는 계약서에 서명한 걸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저는 남선 오빠의 멱살을 잡았으며, 공항에 저를 데리러 왔던 무장경호원들에게 곧바로 제압을 당했습니다. 기준 오빠는 음, 안 보는 사이에 유경이가 화가 많아졌구나, 하고 허탈하게 웃었어요.

자기 일인데 화도 안 나는지 속없이 웃는 게 미우면서도…… 공격성이 저토록 없는 사람이어서 좋아했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뭐, 내가 기억 못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남선 오빠는 또 다시 국제적인 전문가들을 불러들여, 기준 오빠의 길고 긴 재활을 지원해주었습니다. 화가 나다가도 고맙긴 고마웠으므로 꾹 누를 수 있었어요. 덕분에 한동안은 평화가 지속되었지요.

그러니까, 특약에 대해 듣기 전까진요.

“특약? 무슨 특약?”

제가 물으니 남선 오빠가 도리어 놀라는 표정을 하지 뭐예요.

“너 계약서 읽어봤잖아. 못 봤어?”

우리 셋은 웬만한 책 두께는 훌쩍 넘기는 계약서를 다시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46페이지에 작고 작은 주석으로 별첨 문서를 확인하라고 되어 있었지요.

“별첨 문서라니?”


“같은 폴더에 들어 있었을 텐데.”

봉투 속에서 구겨진 낱장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기준 오빠의 치료에 든 비용을 일부나마 정산할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남선 오빠가 원하는 곳에서 일정 기간 파견 근무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어디 가서 일하면 되는데?”

기준 오빠가 침착하게 물었습니다. 저는 그게 어디든 따라가서 함께 빚을 갚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요.

“에우로파.”

남선 오빠가 대답했을 때, 유럽을 엄청나게 나쁜 발음으로 말한 것이길 제가 얼마나 바랐던지요.

“유럽 어디?”

“아니, 알아들었잖아. 에우로파.”

네, 그 에우로파입니다. 혜정 씨도 잘 아는 에우로파. 목성의 위성이지요. 얼음으로 덮여 있고요. 얼음 아래에는 바다가 있는 그곳요.

“언제까지고 여기 살 수 없잖아. 지구는 끝났어. 먼저 가 있으면 곧 따라갈게.”

“뭐라고? 거기가 어딘데 우리더러 가서 죽으라는 거냐? 백 년은 일러!”

“아냐. 내가 다 준비해놨어. 설명을 다 들으면 화가 안 날 거야. 두 사람은 타기만 하면 돼……”

흥분해서 남선 오빠를 발로 차려고 시도하다가 다시 경호원 두 사람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지만, 그 정도면 정상적인 반응 아니었을까요? 남선 오빠는 얼른 저를 피해 도망쳤습니다.

그날 기준 오빠가 저를 가볍게 안고, 귀 뒤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습니다.

“너는 오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널 한 번 더 본 것만으로 그 추운 곳에 가서 죽을 수 있어.”

저는 기준 오빠의 기계로 교체되지 않은 허벅지 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오빠의 목에 고개를 기대었더니, 더 이상은 하루도 이 관계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멀고 추운 세계에 우리 둘이……. 지질학자와 해양생물학자 둘이……. 남선 오빠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우면서도, 동시에 완벽한 계획이란 걸 인정해줄 수밖에 없었지요.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기준 오빠와 함께 그곳에 가리란 걸요.

EM드라이브로 움직이는 우주선도, 그곳에 가면 설치하게 될 바이오스피어-5도 자동이어서 우리는 길지 않은 훈련만 받으면 되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기준 오빠의 다리 부품이 중력의 변화와 상관없이 작동한다고 설명되어 있던 제안서를 이해했습니다.

어금니를 꽉 물었지요.

우주선의 문이 닫힐 때 저는 남선 오빠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너 그러다 망한다? 그렇게 원칙도 윤리도 없이 막 살다가 망한다?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지구가 끝난 거다?”

끝까지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더라고요. 재수 없어. 저는 고함을 지르다가 조금 울었습니다. 기준 오빠가 장갑 낀 손을 뻗어 제 손을 잡아주었어요.

이제 격렬했던 흔들림은 다 끝났습니다. 선내에서 4년 동안 둥둥 떠다닐 일만 남았습니다. 그나마 8년에서 10년이었는데 줄어든 거라네요. 울음을 그치고 이 이메일을 씁니다. 혜정 씨, 보고 싶을 거예요. 저는 원래 사람들을 안 좋아하는데, 열한 명 중의 한 명 정도만 좋아하는데, 혜정 씨는 그 한 명 쪽이에요. 혜정 씨를 좋아해요. 좋아했어요. 함께 점심을 먹을 때가 하루 중 제일 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해도 됩니다. 천체투영관에서 태양계 파트를 틀어주실 때, 목성과 목성의 위성들을 설명하실 때 말해도 됩니다. 저기에 친구가 산다고. 갈릴레이의 위성 중 하나에 친구가 산다고요.

우리가 다시 만나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정세랑

🎓️ 진로 추천

  • 천문학
  • 항공·우주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